||<-2> {{{+1 '''김영룡'''}}}[br]'''金榮龍''' || ||<|2> '''출생''' ||[[1937년]] (86세) || ||[[경상북도]] [[상주군]] [br] (現 경상북도 상주시) || || '''본관''' ||[[김해 김씨]] || || '''국적''' ||[[대한민국]] || || '''현직''' ||대한민국 공군 예비역 중령 || || '''부모''' ||아버지 김0태 어머니 ? ? ? ([[1895년]] ~ 불명.)|| || '''배우자''' ||차숙희 || || '''자녀''' ||아들 [[김부겸]] || || '''친인척''' ||차손녀 [[윤세인|김지수]]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대한민국 제47대 [[국무총리]]인 [[김부겸]]의 아버지이다. 본관은 [[김해 김씨]]이다. == 생애 == [[1937년]],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상주농잠고를 졸업해 공군하사관에 지원하였다. 당시 장기하사관을 대상으로 야간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한 제도가 있었는데, 김영룡은 사천비행장에 근무하면서 해인대학[* [[경남대학교]]의 전신이다.]을 졸업하였다. [[1954년]], 고등학교 2학년일 당시 차숙희와 결혼하였고 3년 후인 [[1957년]]에 김부겸을 낳았다. 결혼을 빨리 한 이유로는, 김영룡의 어머니가 42살에 그를 낳았고 부모님이 환갑때 결혼하였으며 김영룡이 독자였기에 손자를 빨리 보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1968년]], 공군간부후보생으로 임관하여 [[소위]]로 임명되었다. 이후 K2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대구 봉산동 대구경찰국장 관사 방 한칸을 빌렸고 그곳에서 김부겸을 비롯한 가족 5명이 살았다. 이후 아들 김부겸이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하자 2학년 때 과가 나눠지니까 법대에 가서 [[판사]], [[검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권유하였으나 김부겸은 정치학과를 희망하였다. [[1977년]], 아들이 시국사범으로 구속되고 [[5.18 민주화운동]]에 연루되어 수배자가 되자 김영룡 본인도 국군보안대에 끌려가 현역 중령의 신분으로 열흘 넘게 조사를 받았고 그 소식을 들은 김부겸은 자수하였다. 김영룡은 당시 학생 운동을 하는 자식의 아버지는 모두 옷을 벗기라는 명 때문에 해임될 가능성이 있었으나, 중학교 동기인 5관구사령부 법무참모가 계엄사령관을 통해 그를 구명해줬다. 또한 진급심사 때마다 성적이 좋아 진급누락 같은건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2000년]] 김부겸이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군포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자 선거운동을 도움과 동시에 유세장에 방문하여 아들의 연설을 들었고, 이후 아들이 대구로 출마할 때도 말렸다가 230곳 되는 노인정을 방문하는 등 아들을 도왔다고 한다. == 참고 항목 == *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40404.010370755530001|‘軍服父情’…대구시장 선거 김부겸 예비후보자의 아버지 김영룡씨가 말하는 ‘내 아들 김부겸’]] [[분류:1937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