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한민국의 화학자]][[분류:대한민국의 생물학자]][[분류:이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출신/전신 학교/공과대학]][[분류:서울대학교 재직]][[분류:오사카대학 출신]][[분류:1920년 출생]] [[분류:2003년 사망]][[분류:함흥시 출신 인물]][[분류:실향민]] 金舜敬 [[1920년]] ~ [[2003년]]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화학자]], [[생물학자]].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지 몰라도 학계에서는 '''[[이태규]] 박사와 함께 한국 화학의 아버지'''로 꼽힌다. [[1920년]] [[일제강점기|일본제국령 조선]]의 [[함경남도]] [[함흥시|함흥군]]에서 태어났다. 함흥농업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제 패망을 앞둔 [[1942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경성고등공업학교]] 응용화학과[* 1946년 [[경성제국대학]] 응용화학과와 합병되어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가 되었으며, 현재는 화학생물공학부로 남아있다.]를 졸업, 공부를 위해 [[오사카제국대학]] 화학과에서 유학한 뒤 이태규 교수의 조교로 일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으며 동료 교수들의 월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아 교편을 잡다가 [[6.25 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난가 학계의 존립을 위해 대한화학회 초대 간사장으로 취임, 과학기술연구의 보전을 위해 힘썼다. 전후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군론]](group theory)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