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명예교수'''[br]'''{{{+2 김방한}}}[br]金芳漢 | Kim Bang-Han'''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686573850568.jpg|width=100%]]}}}|| ||<|2> '''출생''' ||[[1925년]] [[8월 17일]]|| ||[[전라남도]] [[목포시|목포부]][* [[강원도]] 순찰사였던 친조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9456|김성규]](金星圭, 1863. 12. 6 ~ 1936. 10. 29)가 [[https://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Z0_A41_11A_27A_00280|조정 권신들의 모함으로 파직되어]], 그 직후 가족들 전체가 당시 개항장이었던 [[전라남도]] [[목포시|목포부]]로 이사하였다고 한다.]|| ||<|2> '''사망''' ||[[2001년]] [[10월 18일]] (향년 76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 || '''본관''' ||[[신 안동 김씨]][* 승의랑공파 27세 한(漢) 항렬.]|| || '''직업''' ||[[교육자]] || || '''학력''' ||[[서울대학교/학부/인문대학|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2 ([[언어학과]] / [[학사]])}}}[br][[서울대학교/대학원|서울대학교 대학원]] {{{-2 ([[언어학과]] / [[석사]])}}}[br][[서울대학교/대학원|서울대학교 대학원]] {{{-2 ([[언어학과]] / [[박사]])}}}|| || '''부모''' ||아버지 [[김우진(작가)|김우진]], 어머니 정점효[* 하동 정씨 정봉현(鄭鳳鉉)의 딸.] || || '''형제자매''' ||누이 김진호(金辰浩) || || '''부인''' ||고창희[* 제주 고씨 고한승(高漢承)의 딸.] || || '''자녀''' ||김인동(金仁東)[* 출처 : [[파일:김우진 일가 족보 4.png]]][br]김의동(金義東)[br]김예동(金禮東)[br]김지동(金智東) || || '''약력'''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 교수[br][[하버드 대학교]] 객원교수[br]한국언어학회 회장[br]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언어학|언어학자]]. [[역사비교언어학]] 연구로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고대 한국어]] 및 [[몽골어]] 연구의 권위자였으며, [[반도 일본어설]]을 제안한 [[미국]]의 언어학자인 [[알렉산더 보빈]]에 앞서서, [[한반도]] 내에 [[한국어족]]계와 비 한국어계 언어가 공존했다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 생애 == [[1925년]]에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의 문리과대학에 진학해 졸업한 후에, 동 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6년에는 모교에서 언어학과 교수로서 교편을 잡았고, [[하버드 대학교]]의 객원교수를 하기도 했다. 한국언어학회 회장,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으며, 2001년에 숙환으로 인해 별세하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장례식장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 업적 == 그의 연구 성과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한반도]] 내에서 최소 두 개 이상의 [[어족]]이 공존했을 가능성을 처음 제안한 것이다. 그는 [[한국어|현대 한국어]]의 직계 조상격 언어로 [[고구려어]]를 지목했고, 나머지 언어는 비 [[한국어족]] 언어의 화자들이 고구려어를 포함한 [[부여]]계 언어들에게 동화되어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고구려어]]를 [[한국어|현대 한국어]]의 직계 조상으로 보는 학설은 이미 [[북한]]의 [[언어학|언어학자]]인 류렬 교수가 김방한 교수보다 먼저 제안한 바 있으나, 한동안 주류 언어학계는 북한 특유의 맹목적인 [[민족주의]]적 경향으로 인한 [[확증 편향]]으로 여겨서 이 가설을 거의 무시했다. 그러나 그와 [[알렉산더 보빈]]이 각자 독립적으로 [[삼국시대]] 당시의 지명과 관직명을 조사하고, 이를 주변의 다른 언어와 비교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고구려어 기원설을 다시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가설이 주류 학계에서 심도있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0년에 [[알렉산더 보빈]]에 의해 발표된 [[반도 일본어설]]과 많이 유사하지만, 반도 일본어설은 [[신라어]]와 [[백제어]]의 기층 언어를 [[일본어족]] 계통 언어로 본데 반해, 그의 학설은 한국어족도 일본어족도 아닌 제3의 [[어족]]으로 본다는 차이가 있다.[* 일단 그는 이 기층 언어의 정체를 [[니브흐어]](길략어, 길랴크어)와 동계라고 조심스럽게 [[https://www.joongang.co.kr/article/1437447#home|추정]]했다.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language&no=36265|링크]], [[https://gigglehd.com/gg/bbs/7617645|링크 2]]] 그는 이 기층 언어를 임시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727|원시 한반도어]]'라고 불렀고, [[신라어]]는 이 언어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고구려어 기반의 [[크리올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반도]]와 [[만주]] 일대의 지명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고구려어를 포함한 부여계 언어들은 [[퉁구스어족]]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고 보았다. [[고대 한국어]] 연구 이외에는 [[몽골어]] 연구에서 상당한 [[https://www.korean.go.kr/nkview/nklife/2017_1/27_109.pdf|성과]]를 거뒀고, 학문 외적인 측면에서는 [[국어국문학과|국문학]] 연구에만 치중되다시피한 [[대한민국|한국]]의 주류 [[언어학|언어학계]]에서 [[역사비교언어학]]의 위상을 확고히 한 공로가 있다. 그 이외에도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에 관한 저술을 남겼으며 언어학 개론서 《언어학의 이해》를 출간하기도 했다. == 저서 == * [[https://linguist.snu.ac.kr/snu__professor/%EA%B9%80%EB%B0%A9%ED%95%9C/|한국어의 계통]](민음사, 1983) * [[https://lib.seoul.go.kr/search/detail/CATLAZ000000027329|몽골어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분류:1925년 출생]][[분류:2001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언어학자]][[분류:몽골학자]][[분류:목포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재직]][[분류:인문과학 교수]][[분류:안동 김씨(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