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순창군 출신 인물]][[분류:1883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족장]]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김만룡 }}}'''[br]'''金萬龍'''}}}}}} || ||<|2> '''출생''' ||[[1883년]] || ||[[전라북도]] [[순창군]] || ||<|2> '''사망'''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직업''' ||독립운동가 || ||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구한말 의병투쟁에 참여하여 전북 일대에서 의병활동과 군수품을 모집한 독립운동가.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생애 == 1883년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구한말 일제의 침탈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신보현이 이끌던 의병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특히 그는 신보현 의병장의 지휘를 받으며 주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1908년 6월 20일과 21일에 동료 의병 100여명을 이끌고 화승총으로 무장하여 전라북도 순창군 일대에서 군량미를 모금하였다. 그러다가 일제에 의해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1909년 8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 후 김만룡의 행적은 기록의 부재로 인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