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한국마사회 회장)] [목차] [clearfix] == 개요 == [[1924년]] [[2월 20일]]~[[1987년]] [[7월 17일]]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제10대 [[한국마사회|마사회장]]. [[1982년]] [[건국훈장]] 대통령표창 수여. == 생애 == 1924년 2월 20일 [[평안북도]] [[용천군]] 신도섬 출생. [[1945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베이징|북평]], [[텐진|천진]] 현지 공작원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는 베이징에서 첩보, 보안 임무를 맡았고, 당시 [[박정희]] 등과 연이 닿았다 한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1615043|당시 증언]] [[1947년]] [[국민혁명군|중국군]] 52경비사령부 소좌(소령)[* 오기나 혼동으로 보이는데, 당시 국부군의 영관급 계급은 교관급이란 호칭이었다.]으로 근무하다가 귀국하였다. 광복 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사업을 하다가 [[박정희]] 소장과 연이 닿아 [[5.16 군사정변]]에 참여하였다. 쿠데타 전 자금 모집책으로 활동했으나 [[1961년]] [[5월 12일]] 방첩대에 체포되었으나, 허위진술을 하여 쿠데타 정보를 누설하지 않았다. 다만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8/08/18/1998081870294.html|당시 부장검사의 증언]]에 따르면 체포 직후 모든 것을 밝혔으나 바로 체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 한국산업진흥회장으로 국제산업박람회를 개최하였다. [[1963년]] [[한국마사회]] 회장으로 취임해 [[1970년]]까지 제임하였다. 그 후 한일식품공업 사장, 국일대반점 사장 등 개인 사업을 운영하였고, 1982년 건국훈장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1987년 7월 17일 별세하였다. [[분류:한국광복군/군인]]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 [[분류:1924년 출생]] [[분류:1987년 사망]] [[분류:한국마사회 회장]][[분류:용천군 출신 인물]] [[분류:실향민]][[분류:박정희 정부/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