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신라 상대등)] ||<-5><:> [[천마도|[[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width=60]]]] [br] '''[[상대등|{{{+1 {{{#ffffff 신라의 상대등(上大等)}}}}}}]]''' || || [[김유신]] || {{{+1 ←}}} || '''{{{#ffffff 김군관}}}''' || {{{+1 →}}} || [[진복]] || 金軍官 (? ~ 681년) [목차] == 개요 == [[신라]] 중대의 [[장군]], [[정치인]]. [[삼국통일전쟁]]의 주요 전쟁공신이지만 이후 [[신문왕]]에게 찍혀 [[김흠돌의 난]] 때 [[숙청]]되는 비운을 맞는다. 이름의 군관은 [[군인]]의 다른 말인 [[군관]]과 한자까지 같다. 평생 [[닉값|이름값]]은 확실히 해냈던 인물. == 생애 == [[661년]], 제2차 [[고구려-당 전쟁]]에 참전. 돌사성(突沙城)을 함락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663년]]에는 고구려와 백제부흥군 사이에 있는 신라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 [[한산주]]의 도독이 되었다. [[668년]], 고구려 정벌에 참전, [[평양성]]을 함락시키는 데 일조했다. [[670년]], 신라의 [[요동]] 선제공격으로 [[나당전쟁]]이 발발한 직후 옛 백제 땅에 [[당나라]]가 세운 통치조직 [[웅진도독부]]를 공격했다. [[문영]] 등과 함께 기습 공격해 12곳의 성을 빼앗고 7천여 당군의 목을 베는 대승을 거뒀다. 이렇게 고구려와 [[당나라]]를 상대로 전장에서 활약한 공로로 [[680년]]([[문무왕]] 20) 2월에는 신라 [[귀족]]의 정점인 [[상대등]]에 임명된다. 이제 김군관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되었나 싶었는데.. [[681년]], 문무왕이 승하하고 [[신문왕]]이 즉위한 직후인 8월 이찬 [[진복]]을 상대등으로 임명하고 군관을 병부령([[국방장관]])으로 강등시켰다. 곧이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8월 8일 [[김흠돌의 난]]이 일어났다. 반란은 진압됐고 소판 [[김흠돌]](金欽突), 파진찬 [[김흥원]](興元), 대아찬 [[진공(신라)|진공]](眞功) 등이 주모자로 처형되었다. 이들은 통일전쟁의 대표적 공신들. 김군관은 반란에 직접 가담한 건 아니었던 듯 하지만 반란계획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고, 결국 8월 28일 처형되었다. 다만 반역에 연루되었음에도 김군관의 혈족을 멸족시키지는 않았고 김군관의 아들 한 명만 자결시키는 정도로 끝냈다. 이렇게 김군관이 [[토사구팽]]당한 데는 통일전쟁을 통해 비대해진 무관 [[진골]]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 필사본 [[화랑세기]] == ||<-5><:> [[천마도|[[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width=60]]]] [br] '''[[풍월주#s-3|{{{+1 {{{#ffffff 신라의 풍월주(風月主)}}}}}}]]'''[br],,[[박창화|{{{#ffffff 박창화}}}]]{{{#ffffff 가 필사했다고}}} [[위서|{{{#ffffff 주장하는}}}]] [[화랑세기|{{{#ffffff 화랑세기}}}]]{{{#ffffff 의 기록}}},, || || 22대 양도공 김양도 || {{{+1 ←}}} || '''{{{#ffffff 23대 군관공 김군관}}}''' || {{{+1 →}}} || 24대 천광공 김천광 || == 창작물 == * [[대왕의 꿈]] : [[정욱(1973)|정욱]]: 다만 등장인물 소개에는 '풍월주 군관'이라 되어 있어서 김군관임이 분명한데 정작 방영된 드라마에서는 이름 자막이 한 번도 뜨지 않았다. 일부 사극 시청자들은 자막담당자가 '군관'이 사람 이름이 아니라 [[일반명사]] 단어인 '[[군관]]'으로 착각하고 자막을 내보내지 않은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도 이 때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착각하기 쉬운 게 이름자 자체가 그 '군관(軍官)'이랑 똑같기 때문. [[분류:신라의 상대등]][[분류:68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