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주청년동맹 관련 인물)] ||<-2>
'''{{{+1 김관철}}}[br]金觀喆'''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관철.png|width=100%]]}}} || ||<|2> '''출생''' ||[[1920년]][* 1954년 권총 위협사건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052800239102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05-28&officeId=00023&pageNo=2&printNo=9701&publishType=00010|기사]]에 34세로 나와 있다. 그에 따르면 1920년 생이 되는 셈. 다만 김두한이 당시 37세로 나와 있어 세는 나이일 가능성이 있다. 세는나이일 경우 1921년생.]|| ||출생지 미상[* [[평양]] 추정.]|| ||<|2> '''사망''' ||1987년 이후 추정 (향년 67세 이상)|| ||사망지 미상|| || '''신체''' ||179cm 혹은 190cm, 120kg|| || '''직업''' ||조직폭력배, 정치깡패|| [목차] [clearfix] == 개요 ==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의 인물. [[김두한]]의 부하인 깡패로 키 190cm[* 키가 179cm라는 설도 있으나 1987년 경향신문에 나온 밑의 사진에 나온 김관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키가 크고 나뭇잎까지 키가 닿고 어깨 넓이와 다리, 팔 길이를 보면 190cm가 현실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키가 179cm가 맞다고 해도 179cm든 190cm든 당시 기준으론 장신이었다.]에 120kg 체중의 거한이었다고 한다. 김두한의 보디가드로 얼굴이 황소만큼 크고 용감했다고 한다. [[김동회]], [[이상욱(조직폭력배)|이상욱]] 등 실제 우미관 패 생존자들의 인터뷰나 글에서 항상 일관되게 190cm 거인에다가 천하무적의 파이터로 표현된다. == 생애 == 평양 출생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장호근이 쓴 실화소설들에선 평양 출신으로 나온다. 이 장호근의 부친이 바로 상하이 독수리 장천용으로 장호근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친구인 시라소니를 삼촌으로 따랐다고 한다. [[야인시대]]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김두한의 수하로 우익 [[정치깡패]]로 활동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대한민청에서 김두한의 별동대 일원으로 활동하였고, [[정진룡]] 살인 사건 당시 김두한과 함께 법정에 서서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았다. 6.25가 끝날 무렵, 대부분의 정치깡패들이 그러했듯이 그럴듯한 직함 하나를 받아 밥벌이에 나서는데, 김관철의 소속은 건중친목회. 이 단체는 [[자유당(1951년)|자유당]]과 폭력배들이 결탁하여 미군의 불하 물자를 독점 입찰하여 폭리를 취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 하나 더하면 민중시보사 라는 정체불명 신문사의 업무부장을 맡았다고 한다. 그러나 건중친목회의 활동 중 이권 문제로 인해 깡패들 사이에 내분이 발생. 결국 [[김두한]]이 김관철에게 위협사격을 하는 막장 사태가 발생하였고, 이에 열받은 김관철이 김두한을 고소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제3대 국회의원 선거]] 불과 두 달 전에 일어난 탓에, 김두한은 국회의원 당선에는 성공했으나 이 사건의 여파로 감방에 갈 처지가 되어 버렸다. 김관철은 이후 김두한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였으나, [[친고죄]]가 아닌 탓에 김두한에 대한 기소는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이상할 정도로 시간을 질질 끌었고, 2년 뒤인 1956년이 되어서야 [[선고유예]]되었다.[* 불법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위협사격까지 했는데 상식적으로 선고유예가 가능할지 생각해 보자. 참고로 최소한 현재의 대한민국 기준이라면 절대로 선고유예가 나올 수 없다. 그만큼 그 당시 시대적 상황 자체가 지금과 달라도 한참 달랐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선 지금도 이 정도 죄질의 범죄는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죄질이 큰 범죄들에 대해서도 돈 있고 백 있으면 선고유예는 물론 아예 증거 불충분 등으로 무혐의 처리되거나 아예 기소조차 안 되는 경우도 많긴 한데 그만큼 중남미와 아프리카가 지금도 부패 수준이 심하다는 증거이자 50년대의 대한민국이 현재의 중남미나 아프리카 급으로 부패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김두한의 경우는 이 사건이 자유당의 정치공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두한의 말이 대체로 믿기 어렵거나 뻥이 많기는 한데, 당시 신문에도 왜 하필 당선되고 나서 이런 일을 터트렸냐거나 정치공학적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기사들도 있긴 했었고, 김관철이 김두한에 대해서 좋은 쪽으로 증언을 해 줬다거나, 선거운동도 같이 했다거나 하는 유리한 정상들이 있기도 하니 판단은 알아서 하길 바란다.] 이 사건의 여파로 김관철은 주먹 세계에서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주먹계에 은퇴하고 여러 술집과 카바레 등의 사업을 하며 살았다. [[파일:사본_-우미관 식구들 근황(1987).png]][* 빨간색 동그라미에 있는 인물이 김관철.] 그 후인 [[1987년]]에 [[경향신문]]에서 대한민청에 대한 연재기사를 냈을 때 김관철이 [[신영균(조직폭력배)|신영균]] 등 옛 대한민청 동지들과 함께 모여 사진을 찍은 것이 자료로 남아있긴 하다. 그리고 이로부터 멀지 않은 시점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대중매체에서 == === 드라마 [[왕초]] === 직접적인 등장은 없고 언급만 되는데, 1954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두한을 김관철이 살인 미수로 고소해 김두한은 경찰서에 가고, 자유당에 많은 무소속 의원들을 입당시키려는 김동식(아베)이 김두한에게 풀려나고 싶으면[* 김두한은 감옥가도 좋다면서 배짱을 부리지만, 문제는 교도소에 수감되면 의원직을 잃게 되는 상황이었다.] 자유당에 입당하라 한다. 이때 김두한을 연행한 경찰이 김동식의 수하 한철민(센세이) 종로경찰서 서장인데 한철민 역의 배우가 야인시대에서 [[김관철(야인시대)|김관철]]을 연기한 [[이정용(배우)|이정용]]이다. === 드라마 [[야인시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김관철(야인시대))] == 여담 == 김두한에 맞먹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싸움실력이 강하다고 추정되는 인물이다. 김관철은 엄청난 거구에 구마적에 준할 만큼 괴력의 소유자인 데다 단 한 번도 지는 걸 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이상욱에 의하면 김두한[* 김두한도 당대를 주름잡던 최고의 주먹이었지만, 무용담의 대부분이 본인 피셜이고 명성을 지키기 위해 실제 1대 1 맞짱에서 기습적으로 급소를 노리는 등 치사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룰이 있는 격투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권을 위해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생존을 다툰 싸움이니 딱히 비겁하다 보긴 어렵다.]과 김관철이 실제로 붙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모든 부하들이 보는 앞이고 의욕에 불타 있는 김관철과 달리 김두한은 이겨봐야 본전에 졌다가는 잃을 것이 많아서 술 한잔을 사주며 위기를 모면한 듯한 모습을 보인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각주] [[분류:일제강점기의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인물]][[분류:1920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잠적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