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바그라티온 왕조 군주)] [include(틀:역대 로마 카이사르)] ||<-3><#7F00FF> '''{{{#FFF 조지아 왕국 4대 군주}}}''' [br] {{{+2 {{{#FFF '''გიორგი | 기오르기 2세'''}}}}}} || ||<-3> [[파일:기오르기 2세.jpg|width=300]] || ||<|3><#7F00FF> '''{{{#FFF 제호}}}''' ||<#7F00FF> '''[[한국어|{{{#FFF 한국어}}}]]''' ||기오르기 2세 || ||<#7F00FF> '''[[조지아어|{{{#FFF 조지아어}}}]]''' ||გიორგი || ||<#7F00FF> '''[[라틴어|{{{#FFF 라틴어}}}]]''' ||George II || ||<-2><#7F00FF> '''{{{#FFF 가족}}}''' ||[[바그라트 4세]](아버지)[br]알라니아의 보레나(어머니)[br][[알라니아의 마리아]](누이)[br]마리암(누이)[br]엘레니(아내)[br][[다비트 4세]](아들) || ||<-2><#7F00FF> '''{{{#FFF 생몰 년도}}}''' ||미상 ~ 미상 || ||<|4><-2><#7F00FF> '''{{{#FFF 재위 기간}}}''' ||1072년 11월 24일 ~ 1089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지아 왕국]] 4대 군주. [[셀주크 제국]]의 지속적인 침략과 귀족들의 준동에 시달리다 아들 다비트 4세를 왕으로 옹립하고 퇴위했다. == 생애 == 조지아 왕국 3대 군주 [[바그라트 4세]]와 알라니아의 보레나 사이의 아들로 출생했다. 누이로 [[알라니아의 마리아]], 마리암이 있었다. 1049년 조지아 동부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귀족 리파리트 4세가 자신이 [[셀주크 제국]]과의 전쟁 도중 포로로 잡혔을 때 영지를 몰수한 바그라트 4세에게 복수하고자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이 수도 쿠타이시로 쳐들어오자, 바그라트 4세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어머니 바스푸라칸의 마리암과 함께 [[동로마 제국]]으로 망명했다. 리파리트 4세는 쿠타이시에 입성한 뒤 그를 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섭정을 맡았다. 1053년 동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으며 조지아로 복귀한 바그라트 4세는 리파리트 4세와 7년간 전쟁을 벌인 끝에 1060년 리파리트 4세의 추종자들이 주군을 체포하여 자신에게 바친 덕분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왕위에서 물러났고, 바그라트 4세는 반란군에게 억지로 옹립된 아들을 용서했다. 1072년 11월 24일 아버지가 사망한 뒤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그는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노벨리시모스(nobelissimos)와 세바스토스(sebastos)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러나 1073년 니니아 크불리스제, 이바네 리파리티스제, 그리고 스바네티의 바르단 등 여러 귀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이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지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다가 타협안을 마련했다. 귀족들은 그에게 충성을 서약했고, 그는 영지를 추가로 수여했다. 1073년, 셀주크 술탄 [[알프 아르슬란]]이 조지아로 쳐들어와 카르틀리를 초토화시켰다. 알프 아르슬란은 카르틀리에 총독을 임명하고 돌아갔다. 이에 그는 반격을 개시해 총독을 무찌르고 카르틀리를 겨우 탈환했다. 또한 [[다비트 3세]]가 [[바실리오스 2세]]에게 양도한 이래 조지아와 동로마 제국간의 분쟁의 근원이 됐던 타오 상류 일대를 동로마 총독 그리고리오스 파쿠리아노스로부터 공식적으로 돌려받았다. 이는 [[만지케르트 전투]] 후 셀주크의 지속적인 공세에 직면한 제국이 조지아의 도움을 얻기 위한 조치였다. 이때 제국은 그에게 [[카이사르(칭호)|카이사르]] 칭호를 수여하며 제국의 동쪽 국경을 방비하는 임무를 맡겼다. 1076년, 셀주크 술탄 [[말리크샤 1세]]가 조지아를 침공하여 여러 마을과 도시를 파괴했다. 이후 1079년부터 대대적인 침공이 가해지면서 조지아 전역이 쑥대밭으로 변해버렸다. 결국 그는 막대한 공물을 말리크샤에게 바치고 충성을 서약해야 했다. 이후 조지아 동부의 카케티아 왕국을 복속시키기 위한 원정에 착수할 때 셀주크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카케티아 요새 공략이 실패로 돌아가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철수해야 했고, 그를 도우러 왔던 투르크 전사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조지아 각지를 약탈했다. 카케티아 왕 아그사르탄 1세는 말리크샤 1세를 찾아가 [[이슬람교]]로 개종하겠으니 조지아의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해 승낙을 받아냈다. 1088년, 대규모 지진이 조지아를 강타하면서 막대한 희생자와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가뜩이나 투르크인들의 지속적인 침략으로 인해 파탄 지경에 놓여 있던 민심이 이로 인해 폭발 직전까지 이르자,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1089년 아들 [[다비트 4세]]를 왕으로 세우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분류:바그라티온 가문]][[분류:조지아 국왕]][[분류:카이사르]][[분류:조지아의 정교회 신자]][[분류:퇴위한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