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금령총 유리잔1.jpg]] [목차] == 개요 == 1924년 [[금령총]]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신라]]의 [[유리]]잔 2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금령총 유리잔2.jpg]]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일본인 우메하라(梅原末治) 등이 [[금령총]]을 발굴·조사하던 중 발견한 신라시대 유리잔으로,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소형방제경(小形髣製鏡), 주형토기(舟形土器), 그림이 그려진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금동제신발, 은제허리띠, 띠드리개, 금동장안장틀(金銅裝鞍橋), 발걸이(鐙子), 금동장고리자루칼, 금은장소도(金銀裝小刀), 금동제합(金銅製盒), 쇠솥, 각종 그림이 그려진 칠기(漆器), 유리잔 등 약 만여점의 고신라시대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제작 연대는 같이 출토된 다른 유물들과 마찬가지로 대략 6세기 초엽(서기 500년대 초)으로 추정된다. [[파일:금령총 유리잔3.jpg]] [[신라]]시대의 이국적인 유리그릇은 [[천마총]], [[황남대총]]만이 아니라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등에서도 나왔다. 모두 많은 껴묻거리(부장품)를 묻은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형식의 신라시대 왕릉급 무덤들이며, 현재 이들 고분에서 나와 복원된 유리용기만도 20여점이 넘는다. 이러한 유리그릇들의 상당수는 [[서아시아]]나 [[지중해]] 주변에서 온 것으로 분석된다. [[로마 제국]]기에 성행한 ‘로만글라스’의 후기 모델(4~5세기 말)이거나 로만글라스를 장식적 측면에서 업그레이드한 서아시아 [[사산조 페르시아]](3~7세기)의 ‘사산글라스’다. [[파일:금령총 유리잔4.jpg]] 금령총 유리잔을 비롯한 이러한 [[유리]] 작품들은 학술적으로 [[신라]]와 [[지중해]], [[서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문물교류를 실증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 신라인들이 사용하던 유리잔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 외부 링크 == *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bullpen&id=2656354|신라왕릉 출토 페르시아글라스 수입품들]]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32&aid=0002906091|경향신문 : 1500년 전 신라 유리잔…빛깔만큼 신비로운 동서문명 교류 역사]] * [[http://egloos.zum.com/dwban22/v/4981269|금령총 출토 유리잔]] * [[https://terms.naver.com/imageDetail.nhn?docId=794478&imageUrl=https%3A%2F%2Fdbscthumb-phinf.pstatic.net%2F2644_000_1%2F20190629040109756_JV4KRBYZL.jpg%2F96f1e2c3-b4c0-49.jpg%3Ftype%3Dm935_fst_nce%26wm%3DY&mode=entry&clickArea=relatedImage&cid=46619&categoryId=46619|네이버 지식백과 : 금령총 출토 유리잔]] [[분류:신라의 공예]][[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분류:경주시의 문화재]][[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분류:금령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