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85호}}}]]''' || ||<-2> {{{#fff {{{+1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br]{{{-1 金銅辛卯銘三尊佛立像}}}}}}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삼성미술관 리움,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삼성미술관 리움]] (한남동) || || '''{{{#fff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불상 || || '''{{{#fff 수량/면적}}}''' || 1구 || || '''{{{#fff 지정년도}}}''' || 1962년 12월 20일 || || '''{{{#fff 제작시기}}}''' || [[삼국시대]] || || [[파일: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2004 중요동산문화재 입체영상화(3D)구축사업 11.jpg|width=100%]] || ||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 [목차] [clearfix] == 개요 == '''{{{+3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br]{{{+1 金銅辛卯銘三尊佛立像}}}''' 금동 신묘명 삼존불 입상.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은 황해도 곡산군[* 일제강점기에 발견되어 서울로 이송되었다.]에서 출토된 삼존불상으로, 같은 형태의 삼존불상 중 크기가 제일 크다. == 명문 == >景四年在辛卯比丘道□[* [[빠짐표]]. ] 共諸善知識邦婁 賤奴阿王阿据五人 共造無量壽像一軀 願亡死父母生生心中常 値諸佛善知識等値 遇彌勒所願如是 願共生一處見佛聞法數 == 갤러리 == 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ccbaAsno=1111100850000|국보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金銅辛卯銘三尊佛立像)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 검색]] || [[파일: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2004 중요동산문화재 입체영상화(3D)구축사업 11.jpg|width=100%]] || ||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한국어 위키백과: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0850&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70023&cid=40942&categoryId=33375|두산백과: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 국보 제85호 ==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850000,11&pageNo=1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金銅辛卯銘三尊佛立像)]] >1930년 황해도 곡산군 화촌면 봉산리에서 출토되어 현재는 리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불상으로 높이 15.5㎝이다. 하나의 커다란 광배(光背)에 본존불과 좌우보살상을 조각한 형태의 삼존불(三尊佛)로 현존하는 같은 형식의 불상 중에서 가장 크다. > >좌우의 보살상은 본존불보다 훨씬 작게 만들어 광배의 끝에 겨우 매달린 듯 보이는데, 이는 본존불을 한결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본존불의 가슴과 광배의 오른쪽 끝에 약간의 흠집이 있을 뿐,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 >본존불은 얼굴이 풍만하고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두껍게 표현되어 있으며, 옷자락은 양 옆으로 펼쳐지면서 발목까지 덮고 있다.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내려서 손끝이 아래로 향하면서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광배는 불상과 분리되며 본존불의 등 뒤에 달려있는 뾰족한 촉(觸)으로 고정시켜 준다. > >배(舟) 모양의 광배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표현하였고, 그 안에 연꽃무늬, 덩굴무늬, 인동초무늬를 새겼다. 머리광배와 몸광배의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그 사이에는 작은 부처를 조각하였다. 광배의 아래쪽 끝부분에 새겨진 두 협시보살은 큼직한 얼굴에 원통형의 빈약한 체구를 지니고 있다. 가슴에는 X자형의 옷자락이 새겨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본존불에 비해 솜씨가 서툴러 보인다. > >광배 뒷면에는 다섯 사람이 모여 그들의 스승과 부모를 위해 이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글에 나타난 사람 이름이나 불상의 양식으로 보아 고구려 불상으로 보이며, 글에 나타난 ‘신묘(辛卯)’는 고구려 평원왕 13년(571)년으로 추정된다. > >전체적인 불상 형태는 큼직한 얼굴과 손, 추상적인 신체 표현 등에서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국보)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강인한 기품이 줄어들고 유연하면서 세련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금동 불상]][[분류:입불상]][[분류: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