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include(틀:제노사이드)] ||<-3> '''{{{+1 그리스인 대학살[br]Γενοκτονία των Ελλήνων της Μικράς Ασίας και της Ανατολικής Θράκης[* [[소아시아]] 및 동트라키아의 그리스인 대학살][br]Greek genocide}}}''' || ||<:><-3>[[제1차 세계 대전]][* 전쟁 시작 전부터 학살이 일어났고 전후에도 학살이 계속되었다.] 및 [[후기 오스만 인종 청소]]의 일부|| ||<:>'''발생 시기'''||<:><-2>[[1913년]]-[[1923년]]|| ||<:> '''발생 위치''' ||<:><-2>[[오스만 제국]] || ||<:> '''가해자''' ||<:><-2>[[터키국가운동]][br][[오스만 제국군]] || ||<|2><:> '''피해 내역''' ||<:>사망자 ||<:>30만명에서 90만명 사이 || [목차] [clearfix] == 개요 == [[1913년]]부터 [[1923년]] 사이에 [[아나톨리아]] 지역의 [[정교회|정교도]] [[그리스인]]을 상대로 발생한 [[인종 청소]] 및 대이주 사건. == 상세 == 헌데 [[그리스]]야 학살이라고 하지만 복잡하다. 우선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그리스가 연합군을 편들어 오스만 제국이랑 싸우며 벌어진 일이 있다보니 그리스인들은 그리스군이 승승장구하자 [[트라브존]]이라든지 여러 곳을 그리스가 되찾는다고 여겨 민병대를 조직하여 [[튀르키예인]]이나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했다. 이후 1차대전 승전국으로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여러 영토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에 반발해 [[튀르키예 독립전쟁]]이 벌어져 [[그리스군]]은 참패해 1차대전으로 얻은 튀르키예 내 본토 영토를 모조리 잃었다. 이러자 튀르키예는 이전에 벌어진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그리스인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다. 이러다보니 그리스도 피해자라고만 할 수도 없는 사항이다. [[분류:1910년대 사건사고]][[분류:1920년대 사건사고]][[분류:그리스의 역사]][[분류:그리스-튀르키예 관계]][[분류:오스만 제국의 역사]][[분류:튀르키예의 사건 사고]][[분류:학살 사건]][[분류:제1차 세계 대전/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