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군구)]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군구]]에 대한 문서. == 역사 == [[중국사]]를 통틀어 [[난세]]에 [[군웅]] [[군벌]]들이 [[군웅할거|땅을 갈라 싸웠고]] [[중국대륙]] 시절의 [[중화민국]]도 군구를 설치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인민해방군|인민해방군]] 초기에는 군구별로 따로 노는 경향이 강했고 이점은 특히 인민해방군 초기에 두드러졌는데, 각 군구의 전신이었던 인민해방군 [[야전군]]들은 [[펑더화이]], [[린뱌오]], [[류보청]], [[천이]] 등등 전설적인 [[개국공신]] [[지휘관]]들이 지휘하고 있었다. [[야전군]] [[사령관]]들은 계급이 도입되었을 때 모두 [[원수(계급)|원수]]에 오를 정도였다. 이들은 자신의 [[부대]]를 [[1930년]] 초반부터 무려 20여년간 계속 지휘해 왔고, 수백 명에 불과하던 자신의 부대를 [[국공내전]] 말기에는 각각 [[백만대군|100만명이 넘는 대군]]으로 성장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한 야전군의 [[장교단]]은 [[중국 공산당]]이 파견한 [[정치장교]]마저도 모두 개인적인 [[인맥]]으로 뭉쳐있었다.[* 류보청의 [[정치장교]]였던 [[덩샤오핑]]이 계속 류보청을 옹호한 것이 유명한 예.] [[마오쩌둥]]은 항상 이들을 경계했고, 결국 [[문화대혁명]] 당시 이들을 모두 --[[너 고소|너]]-- [[숙청]]하거나 실각시켰다. 특히 펑더화이는 국공내전 및 [[한국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워낙 군 인맥이 두터웠기 때문에, 펑의 실각 후 군내에서 그 인맥들이 대부분 쫓겨나서 감방에 가거나 [[홍위병]]에게 [[코렁탕|치욕을 당하고 하방하여 뻘짓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군을 지배하던 국방장관 [[린뱌오]]가 [[쿠데타]]를 벌이려다 실패한 후([[린뱌오 사건]]), 그의 군맥이었던 공군 장성들의 대부분이 연루유무에 관계없이 숙청되었다. 실제로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건]] 당시, [[베이징]]을 지키는 베이징 군구의 병력이 출동하여 [[천안문]]의 [[대학생]] 시위대를 진압했어야 정상이지만, 베이징 군구 사령관이 출동을 거부하여 진압이 불가능해지자 다른 군구([[지난군구]])의 협력을 받아 진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베이징 위수구역 담당 제38집단군 사령관인 [[쉬친셴]](徐勤先) 중장은 진압명령을 받자 '''"'[[인민해방군]]은 [[인민]]에게 총부리를 돌릴 수 없다"''''며 출동을 거부했다. 그는 바로 지위해제된후 명령불복종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서방에서는 [[사형]]에 처해졌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5년형을 받고 이후 [[스자좡시]]로 거주지를 제한당했다고 한다. 사건 20여 년 후 홍콩언론인 <[[빈과일보]]>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가 인터뷰했는데, 그는 '''[[대인배|"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그때로 되돌아가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베이징군구가 출동하지 않은 것은 군구 사령관의 출동거부도 있지만 사실 [[사령관]]이야 교체하면 그만이라서 결정적 이유는 아니고, 당시 [[중국]]의 군구는 각자의 관할 지역에서 병력을 충원하다보니 베이징군구 소속 군인이면 어떤 식으로든 베이징에 연고가 있게 마련이라 공산당이 원하는 것만큼 강경하게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베이징에 별다른 연고가 없었던 [[선양]] 군구(위에는 [[지난]]군구라고 하지만 실제 출동한 병력은 선양군구였다) 소속병력을 베이징까지 불러와서 시위를 진압한 것. 다만, [[군구사령관]]이 아무리 강력했어도 원래 공산주의 국가들의 [[공산군]]이 다 그렇듯이 정치장교의 파워가 더 막강했기에 군구사령관이 진짜 군벌처럼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중화인민공화국]] 초반에 [[린뱌오]]나 [[펑더화이]] 레벨의 전설의 레전드급 건국공신일 때나 가능했고 군구지휘관의 권세와 위엄이 절정에 달했던 초반기에도 [[군벌/중화민국|청말 중화민국의 군벌들]]과는 달리 중공 중앙정부에서는 군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재는 중국군의 중앙집권화와 통제 수준이 높아지고 평화기가 길어졌으며 군구사령관을 포함한 장교진까지 순환근무를 하기 때문에 군구사령관의 파워는 영 예전과 같지 않다. == 특성 == 군구제는 중국 이상으로 [[국토]]가 넓은 [[러시아]]도 쓰는 것으로, [[국경선]]이 길면 구간별로 주적도 다르고 전장환경도 달라지기 때문에 나눠서 준비하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 [[소련]]은 그래도 [[동유럽]]이라는 [[완충지대]]가 있었지만, [[중국/외교/비판|중국은 건국 초기부터 주변국 상당수와 사이가 나빴고 나머지 국가들과는 건국 이후에 나빠졌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대비하여야 했다. 국공내전 말기에 '''500만 명'''의 대군을 보유하게 된 인민해방군은 각 성에 군구를 설치하고 병력을 나누어 배치했다. 군구제가 설치될 [[1950년대]]는 중국이 워낙 큰데다가 중국의 [[교통수단]]이 영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병력수송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는 각 [[성(행정구역)|성]]([[省]])에 군구가 설치되었으며 심지어 성 상위에 대행정구, 인민위원회, 군정위원회 등이 설치되는 등 당시 [[중국/행정구역|중국의 행정구역]]조차 [[계엄령]] 치하의 [[군정권]]이나 다름없었다. 국공내전 이후에도 [[6.25 전쟁]], [[중월전쟁]] 같은 해외전쟁이 있었고 [[중국 대륙]]내에서는 국민당지지 [[유격대]]나 잔당들이 출몰했고, 내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 성에 상주병력이 있어야 했다. [[1958년]]까지는 대륙 내에서 공산당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소멸했고, 이어 병력을 400만으로 감축하였으며, 중공의 내외 정세에 따라 각 성에 설치되었던 군구는 계속 여러차례 분할되고 통합된다. == 편제 : 7대 군구 == [include(틀:중국 인민해방군의 군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04px-China%E2%80%99s_Military_Regions.png]] [[파일:attachment/china_air_force_units_2008.jpg]] [[1985년]], 다시 군병력 100만을 감축하면서 13개 집단군을 재편, 크게 중국 영토를 7등분하여 중공군 최후의 군구 7대 군구를 설치, 각각의 지역에 군구에 2~3개의 집단군을 두는 식으로 군을 세분화시켜 놓았다. 중국의 7대 군구는 일곱 개로 [[선양군구]][* 현 [[랴오닝성]] [[선양(도시)|선양]].], [[베이징군구]][* 현 [[베이징 시]]], [[란저우군구]][* 현 [[간쑤성]] [[란저우]].], [[지난군구]][* 현 [[산둥성]] [[지난시|지난]].], [[난징군구]][* 현 [[장쑤성]] [[난징]].], [[광저우군구]][* 현 [[광둥성]] [[광저우]].], [[청두군구]][* 현 [[쓰촨성]] [[청두]].]였다. 난징군구는 [[대만]], 청두 군구는 [[인도]], 광저우 군구는 [[베트남]], 선양, 란저우, 베이징 군구는 [[러시아]]가 주적이고, 특히 선양군구는 유사시 '''[[한반도]]([[대한민국]], [[북한]])''' 북부에서 [[한국군]]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사태가 이 정도가 되면 [[미군]]도 당연히 참전하겠지만, 여기서부터는 선양군구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각 군구마다 전략적, 전술적 교리가 다르고 이에 따라 무기 체계도 다를 수밖에 없다. 대체로 육지로 맞닿지 않는 [[대만 섬]]의 [[중화민국]], [[일본]]을 상대할 [[난징군구]]는 [[J-10]], [[J-11]]과 같은 최신형 전투기와 방공함이 우선적으로 배치되고 있다. [[난징군구]]는 타 군구에 비해 전투력이 점점 올라갔다. 중국 전체 항공전력의 절반이 넘는 4세대급이 배치되어 있고 공군 최신 항공기들은 전부 이쪽으로 몰리는 듯하다. 청두 군구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인도군]]과 [[국지전]]을 치르는 정도가 목적이라서 [* [[중국-인도 국경분쟁|중국-인도 양국은 가끔씩 국경분쟁으로 자존심 싸움을 하기는 하지만]], 전면전 상황으로 번지는 것은 굉장히 꺼린다.[[2020년]]에도 화기를 쓰지 않은 격투로 수십명이 사망했지만 (인도군이 여러 중국군의 무기들을 공개하기는 했지만, 현지 [[상황]]을 보면 해발 6000미터 넘는 산악지역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추락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면전으로가지는 않았다.] 산악부대 (제52, 53 산악여단)와 헬기강습부대가 배치. '''[[선양군구]]는 유사시 [[한국군]]을 상대로 한 [[북한]] 지역에서의 공격 임무 수행이나 북한 [[정권교체]]''' 혹은 [[러시아군]]을 상대로 한 [[만주]]에서의 방어전에 투입되어야하며 최종적으로는 [[베이징군구]], [[지난군구]]와 합쳐 [[한반도]]와 [[러시아 극동]] 지역을 장악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기갑부대]]의 비율이 높다. 만약 [[북한]]에서 모종의 사태가 나면 중국에서 선양, 베이징, 지난 군구와 이에 배속된 [[중국 해군]] 함대가 출동할 것이라고들 한다. 실질적으로 이들이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60~80만 병력이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최대로 잡을 경우 이 3개 군구에 다른 군구 병력도 일부 차출하여 최대 8~10개 합성집단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대]] 이후 기준으로 한국 지상군 [[현역]] 병력의 두 배 정도.] 단 아무리 군구제를 하더라도 [[핵무기]]를 관장하는 [[로켓군]]은 당연히 중앙군사위원회의 직속 통제 하에 있다. 핵무기는 그냥 강력한 무기 정도가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쓰이는 정치적 카드인데, 이런 민감한 물건을 일개 [[야전사령관]]이 제 마음대로 발사하고 다니게 허락했다가 '''[[3차 세계대전|정말로 발사하면 어느 나라나 다 후폭풍 감당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중국군도 핵은 중앙정부 직속으로 철저히 통제하는 중이다. [[2015년]], 다시 군병력을 감축하면서 7대 군구를 [[전구(군사)|5대 전구]]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지리적인 특성상 서쪽 끝에 있는 서장군구, 신강군구는 육군 직할 군구로 존속하는 것으로 2016년에 다시 편제를 조정하였다.] == 같이보기 == * [[전구(군사)]] * [[중국 인민해방군]] * [[중국 인민지원군]]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군구, version=229, paragraph=4)] [[분류:중국군]][[분류:군사 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