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립묘지)] [목차] == 개요 == '''국립민주묘지'''(國立民主墓地)는, [[대한민국]]에서 운영하는 [[국립묘지]] 중, 민주화 운동으로 순국한 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시설이다. 현재 국립민주묘지는 3개소가 운영중이다.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당시 활동/사망한 민주열사들을 안장하였으며, 이 세 운동을 알리기 위한 기념관, 탑 등의 시설이 부설로 설치되어 있다. [[1962년]], [[4.19 혁명]] 당시 사망자를 안장하기 위한 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해 [[1963년]] [[9월 20일]] 완공한 것이 최초이며, 이후 [[1967년]]에는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 당시의 열사들을 안장하기 위해 [[마산]]에 새로이 묘지를 조성했다. 이후 [[5.18 민주화운동]] 열사들을 안장하기 위해 [[1997년]] 새로 국립묘지를 조성했다. 참배시간 및 봉사활동 시간은 각각 다르다. 공통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참배 및 참배, 봉사활동 신청이 가능하며 봉사활동은 비석을 닦고 잡초를 뽑는 등의 환경정화활동을 한다. 묘지이기 때문에 복장에 주의를 요한다. 또한 광장 및 조형물과 기념관이 있어 휴양 및 교육시설로써의 기능도 있다. == 목록 == === 국립 4.19 민주묘지 === [[파일:img_268a485685117_df.jpg|width=697]] [[http://419.mpva.go.kr/|홈페이지]] [[1961년]],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 내각회의에서 4.19 기념묘지 조성을 의결하여 최초로 공원묘지 조성이 결정되었다. 직후 집권한 군사정권이 이를 추진하여 비교적 빠른 시기인 [[1962년]]에 [[서울]] [[북한산]] 기슭에 부지를 마련, 착공하였고 [[1963년]] [[9월 20일]] 완공했다. 이후 [[문민정부]] 시기에 들어와 그 의의와 정신이 재조명되어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졌다. [[1993년]] [[10월 20일]] 착공해 [[1995년]] 4월 17일 완공했으며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2006년]]에 제정된 시행령으로 국립4.19묘지’에서 국립4.19민주묘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소재. 4개 묘역이 있으며 안장능력은 585기. [[2017년]] [[8월 20일]] 현재 404기가 안장되어 있다. 제1묘역은 [[4.19 혁명]] 당시 사망자, 1묘역 일부와 제2묘역은 당시 부상자, 제3묘역부터는 4.19 혁명 유공자들이 안장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광장 등 휴양시설의 비율이 다른 민주묘지에 비해 높다. 원래 소유권은 [[서울특별시]]에서 갖고 있었다. 그러다 [[1995년]] 성역화공사 완공에 맞추어 [[국가보훈처]]에 관리를 이전했고, [[2015년]] 소유권을 국가보훈처로 양도했다. 평일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참배가 가능하며 국경일과 공휴일에는 쉰다. 봉사활동은 9시 반부터 오후 1시 반, 1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총 4시간씩 할 수 있다. 겨울에는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다. 고려대학교에서는 4.19혁명을 촉발한 계기가 된 [[고려대학교 4.18 학생 시위|4.18의거]]를 기념하기위해 매년 4월 18일에 고려대에서 4.19민주묘지까지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 대중교통으로 방문할 경우 인근에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우이신설선]] [[4.19민주묘지역]]이 있으며, 버스로는 [[서울 버스 104|104번]], [[서울 버스 1119|1119번]], [[서울 버스 1126|1126번]]. [[서울 버스 강북01|강북01번]]이 묘지 앞에 정차한다. === 국립 3.15 민주묘지 === [[파일:IMAGE_GM1EAAT0XG401_RTRMADP_3.jpg|width=697]] [[http://315.mpva.go.kr/|홈페이지]] [[1968년]] 조성했다. 본래는 추모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정식명칭 또한 3.15 성역공원이었다. 하지만 [[1998년]]부터 성역화 공사를 시작해 [[2003년]] [[3월 15일]] 완공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앞서 [[2002년]] 대통령령에 의해 민주묘지로 승격했다. [[마산시]] 구암동에 있었으나 마산시가 [[창원시]]와 통합하면서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소재가 되었다. 시설은 다른 민주묘지에 비해 조촐하다. 안장능력부터가 채 100기를 넘지 않으며(물론 3.15 의거 관련자가 많지 않았고 통계 등 자료 또한 빈약했던 데 이유가 있지만) 그마저도 안장기수는 2017년 8월 20일 현재 32기밖에 되지 않는다. 기념관, 기념사비가 있으며 광장은 다른 민주묘지에 비해 얼마 없다. 여러 특성으로 3.15 및 4.19 유공자 중 창원권 관련자들이 안장 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그 외 지역 출신인 경우에는 수유리 4.19 묘지에 안장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참배시간은 국립 4.19 민주묘지와 같으며 봉사활동은 9시부터 오후 1시, 1시부터 5시까지 총 4시간씩 할 수 있다. 4.19 민주묘지와 봉사활동 시간이 30분 차가 난다. 대중교통으로는 [[창원역]]에서 [[창원 버스 212|212번]], [[창원 버스 260|260번]], [[창원 버스 8|마을버스 8번]]을 이용하거나, [[마산역]]에서 [[창원 버스 162|162번]], [[창원 버스 262|262번]], [[창원 버스 263|263번]]을 이용하여 유성아파트 정류장에 내리면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 국립 5.18 민주묘지 === [[파일:16174432_415678092111210_2684856348781280610_n.jpg|width=697]] [[http://518.mpva.go.kr/|홈페이지]]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소재 국립민주묘지. [[1994년]] [[11월 1일]] 착공해 [[1997년]] [[5월 13일]] 완공했다. [youtube(OkuRWEnDsr8)] [[문민정부]]에 들어와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전두환, 노태우 등 관련자들의 형사처벌]]을 비롯하여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진상규명 등이 이루어지자 희생자들을 기념할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조성되었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3년 5월 13일에 김영삼 대통령이 "[[https://518.org/nsub.php?PID=0106&page=&category=&searchText=%EB%AC%B8%EB%AF%BC%EC%A0%95%EB%B6%80&searchType=all&action=Read&idx=4|5·18의 연장선에 선 문민정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담화문]]"을 살펴보면 "망월동 묘역을 민주성지로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묘역의 확장 등 필요한 지원을 다 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했으며 이후 실제로 망월동 묘역에서 [[국립민주묘지#s-2.3|국립 5·18 민주묘지]]로 희생자들이 이장되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189327|#]]] 다만 국립민주묘지로의 승격은 완공 이후인 [[2000년]] [[https://518.org/nsub.php?PID=0106&page=&category=&searchText=&searchType=&action=Read&idx=5|제2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기념식장을 찾아 기념식을 진행하면서 약속을 했고 [[2002년]] [[국민의 정부]] 말기가 돼서야 이루어졌다. 이 묘지를 만든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7년]] [[5월 22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처음으로 5·18 단체들의 초청을 받아 참배했다.[* [[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0705221829051#c2b|#]]] 애초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은 [[망월묘지공원]] 제3묘역[*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모두 일곱 차례 이곳을 찾았고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1993년 3월 18일에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이곳 묘역 참배를 시도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26642|다만 대학생들의 5·18 묘역 점거 시위로 무산됐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이날 광주와 전남을 순시하는 내내 서운해했다. 이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양김|DJ-YS]] 후보 단일화 무산과 [[3당 합당]] 등으로 그에게 애증을 가진 광주·전남지역 시·도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189327|#]]]에 묻혀 있었다. 진압 후 군부에서 사태를 빠르게 정리하기 위해 제대로 된 장례 절차도 거치지 않고 청소차에 시신을 실어서 매장시킨 것이다. 이후 망월동 공원묘지 옆에 새로 민주묘지를 조성하며 신원미상의 유골을 제외한 제3묘역의 유골 대부분을 이장했다. 당시 사망자를 매장했던 망월동 공원묘지 제3묘역은 [[이한열]] 열사 등 [[6월 민주 항쟁]] 사망자 및 기타 민주열사들이 묻혀 있다. 이 망월동 때의 기억 때문에 아직도 이 5.18 묘지를 '망월동 묘지'로 부르거나 묘지가 망월동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바로 옆이기에 지금도 여전히 망월동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건 외지인 뿐만 아니라 광주 현지 주민들도 마찬가지. 추모탑 뒤 묘역 중 제1묘역은 민주화운동 당시 사망자들이 안장되어 있으며, 제2묘역부터는 민주화운동 이후 사망자들이 안장되어 있다. 제10묘역은 민주화운동 당시 실종자들을 위한 가묘가 있다고 한다. 총 782기를 안장할 수 있는데, 포화 상태라 후문 쪽에 새로운 묘역을 조성한다는 듯하다. [[2017년]] [[8월 20일]] 기준 775기가 안장되어 있다. [[2022년]] 국가보훈처가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이하 5·18묘지)의 국립묘지 승격 20년을 맞아 새 청사진 마련에 나섰다.[[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62030600742962006|#]] 묘지 앞에는 추모탑과 광장을 조성하였으며 매년 5월 18일에 이 곳에서[* 2020년에 열린 제40주년 행사는 특별한 의미를 더하기 위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옛 전라남도청]] 앞 광장에서 행사가 열렸다.]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정부 주관의 추모행사를 연다. 봉사활동은 다른 민주묘지 홈피처럼 자세하게 나와 있지는 않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가능하며, 시간은 4시간인 듯하다. 참배는 연중무휴이다. 대중교통은 [[광주 버스 518|518번]][* 특히 이 노선은 노선 번호에서도 드러나듯 5.18 기념공원, 옛 전남도청, 금남로 등 5.18 민주화운동과 연관된 주요 사적들을 지나간다. 심지어 운수사인 [[대창운수]]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존재했던 회사로, 이 회사 소속 차량 수 대가 시위에 차출되기도 했었다.]이 묘지 앞 정류장에 정차한다. 여담으로 국립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부지자체는 광주광역시의 시유지였다. 그러나, 2009년경 광주시가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새로운 야구장 건설을 계획하면서]] 국유지였던 [[무등경기장]] 부지와 5.18 민주묘지 부지를 교환해서 부지도 국유지로 넘어갔다. 추모탑은 40m 높이로서 당간지주와 부활하는 생명을 받든 손을 형상화했다.[[https://www.mpva.go.kr/518/contents.do?key=436|#]] 민주화의 도시로 유명한 광주의 [[랜드마크]]로써 개표방송이나 지역뉴스 전환 시퀀스 등에 거의 반드시 나온다. [[K리그1/2021년|하나원큐 K리그1 2021]] 공식 인트로에 [[광주 FC]]를 상징하는것중 하나로 이곳의 추모탑이 등장했었다. 이곳에 [[전두환]]의 손자인 [[전우원]]이 2023년 3월 31일 [[전두환|할아버지]]의 [[5.18 민주화운동/학살|잘못]]을 사죄하러 참배했다. [[분류:국립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