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촉서)] 句扶 생몰년도 미상 [목차] [clearfix]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한]]의 인물이며 자는 효흥(孝興)으로 익주 파서군 한창현 사람. == 생애 == 충성스럽고 용맹하면서 너그럽고 덕이 있었으며, 여러 차례 전공이 있어 공명과 작위가 [[왕평]]에 버금갔다고 한다. 247년에 좌장군이 되었고 탕거후에 봉해졌다고 하며, 또한 [[장익(삼국지)|장익]], [[요화]]가 대장군이 되자 당시 사람들은 전에는 왕평과 구부가 있더니 뒤에는 장익과 요화가 있다는 말을 했다.[* 장익이 정서대장군이 된 것이 248년이고, 이 해 왕평도 사망했다. 맥락상 구부도 이때쯤에 세상을 떠난 듯 하다.] 지위와 위상이 높았음에도 기록이 없어 도대체 뭘 했던 인물인지 알 길이 없는 촉한의 상장하면 흔히 [[진도(삼국지)|진도]]가 꼽히는데, 구부는 진도 이상으로 심하다. 진도야 군세가 매우 미약했던 소규모 군벌 시절 [[유비]] 때부터 활약한 인물이고 말년엔 대오전선 수비만 하다 죽었으니 진도 본인이 단독으로 일군을 이끌며 활약한 적은 실제로도 별로 없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구부는 촉한의 기틀이 잡힌 이후 활약한 인물이니 충분히 활약상이 기록에 남았을 법도 한데 기록이 거의 없다. 정말이지 촉한은 기록이 너무 부실하다. 게다가 구부는 탕거후로 '''촉한에 10명 뿐인 1등 후작까지 하사받은 인물'''이다. 물론 현후에 봉해졌다는 게 실질적인 능력과 위상을 보여주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촉한의 최고존엄이라 할 수 있는 제갈량이 2등 후작인 무향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쨌든 상당한 거물인 셈. 게다가 촉한 중기를 대표하는 명장 왕평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스쳐지나가는 형식이나마 분명히 사서에 기록돼 있으니 절대 군사적 실적이 적지 않았을 텐데 후세에 전해지는 구체적인 기록이 전혀 없어 아쉬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 미디어 믹스 ==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 || [[파일:구부.jpg|width=400]] || || [[삼국지 14]] 일러스트 || [[삼국지 1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일러스트는 오른손으로 허리에 대고 있으며 능력치는 통솔 74, 무력 72, 지력 67, 정치 53, 매력 60이다. 개성은 산전, 모집, PK에서는 보좌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할거, 정책은 군제개혁 Lv 3, 진형은 방원, 장사, 전법은 화시, 철벽, 진정, 친애무장은 [[왕평/기타 창작물#s-2.1|왕평]], 혐오무장은 없다. 평범한 무장이지만 보좌 개성이 있기 때문에 이번작 추가 신무장 중에서 젤 밥값을 한다. === [[진삼국무쌍 시리즈]] === [[진삼국무쌍 6]]에서는 성도 공략전에서 등장해 전편에서는 서쪽의 3개 진채 중에서도 중앙에 있는 진채에서 [[장빈]], [[포소]]와 함께 위치하고 있으며, 위군이 남쪽에 있는 촉군의 장수들을 모두 물리치고 운제로 촉의 진채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출격한다. 중편에서는 이간과 함께 남동쪽의 여러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잔도에서도 중앙에 있는 파군 북채에 위치하고 있다. [[진삼국무쌍 7]]에서는 이릉의 전투, 형주의 전투, 검각의 전투, 상용의 전투, 신야방위전, 성도의 전투, 파군평정전, 장판파 전투 조조군 시점, 이색무기획득전2, 이색무기획득전6에서 등장하며, 이릉의 전투 촉군 시점, 형주의 전투 촉군 시점, 검각의 전투, 상용의 전투, 성도의 전투 촉군 시점, 파군평정전 종회군 시점에서 아군으로 등장하고 나머지에서는 적으로 등장한다. === 소설 삼국지 유지경성 === [[손려]]가 [[손권]]에 대해 반란을 일으킬 때 [[제갈량]]의 명으로 광릉에 가서 위군과 [[장합]], [[손등(삼국지)|손등]]이 세 군대가 서로 싸우면 손등이 위군에게 붙잡히도록 획책하는 것을 수행하러 가며, 광릉에 군을 이끌면서 장합을 공격했다. 위군의 [[문흠]]에게 같이 장합을 공격할 것을 제안해 장합을 사로잡으려고 했다가 [[주환]]의 군대가 오자 철수한다. [각주] [[분류:촉한의 인물]][[분류:몰년 미상]][[분류:바중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