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북양정부 주요 파벌)] || '''{{{+2 交通係}}}''' || || {{{+1 Comunications clique}}} || ||<-3>
[[파일:양사이.jpg]] || || 교통계의 거두인 [[량스이]] || [목차] == 개요 == 북양정부의 주요 파벌 중 하나로 이름처럼 교통수단(철도)를 중심으로 하는 파벌이다. 철도 노동자와 기술자, 자본가들을 주요 지지층으로 삼고있었다. 대표적인 정치인으로는 [[량스이]]가 있다. == 역사 == === 호국전쟁 이전 === 이들은 [[청나라]] 시기 철도를 담당하던 체신부와 우편을 담당하던 통신 은행의 관료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신해혁명]] 이후 체신부의 후신 조직인 교통부와 통신 은행의 앞글자를 따 교통계라고 명명되었다.] 교통계의 창립자는 초대 국무총리 [[탕사오이]]였다. 하지만 교통계의 수장으로 군림한 사람은 량스이였다. 탕사오이가 [[위안스카이]]와 갈등 끝에 경질된 이후 교통계는 위안스카이와 직접 대항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여기고 그의 독재를 적극 옹호하기로 방향을 바꾼다. 그가 [[홍헌제제]]를 단행하여 황제가 되겠다는 희대의 --개소리-- 무리수를 둘때도 량스이와 교통계는 위안스카이의 제제를 적극 지지하였다. 결국 이 무리수는 [[호국전쟁]]이라는 내전으로 이어진다. === 호국전쟁 이후 === 호국전쟁의 결과 홍헌제제가 취소되자 홍헌제제의 주요 원흉으로 지목된 계임 총통으로 임명된 [[리위안훙]]은 량스이를 비롯 파벌 지도부에 대한 수배를 내렸으나 철도를 장악하고 있던 교통계를 완전히 내칠 수는 없었기에 그들에 대한 수배령을 하나둘 해지한다. [[돤치루이]]가 자신의 독재를 위해 설립한 신국회(안복 국회)에서도 [[안복계]]의 뒤를 이어 제1야당에 오를 정도의 위상을 가졌다.[* 제3당은 량치차오의 [[진보당(중국)|연구계]]였다.] 이렇듯 자신들에게 협조적이지 않으면서도 내칠 수 없는 이들을 대체하기 위해 군벌들은 노력했다.[* 대표적으로 [[직예군벌]]의 [[우페이푸]]는 코민테른과 접촉하여 철도노동자들이 자신을 지지하도록 하려했다. 이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일어난 일이 그 유명한 [[2.7 사건]]이다.] 그렇게 질긴 명줄을 이어가다 [[국민당의 2차 북벌]]로 끝을 맞이한다. 그들을 반동자본가로 낙인찍은 [[중국국민당|국민당]]에 의해 교통계는 해산되었고 그 재산은 친국민당 은행가 [[쿵샹시]]와 [[쑹쯔원]]에게 전부 넘어가게 되어 [[4대가족]]의 힘을 키우는데 사용되었다.[* 물론 쑹쯔원은 장제스와 사이가 그렇게까지 좋지 못했고 국부천대 이후엔 미국으로 망명을 간다.] [[분류:중화민국의 정당]][[분류:1912년 정당]][[분류:중국의 철도]][[분류:1928년 해체]][[분류:중화민국의 없어진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