貫友 (? ~ [[96년]]) [[후한]]의 인물. 거연도위(居延都尉)를 지냈으며, [[93년]]에 교위였던 섭상(聶尙)이 죄에 연루되어 면직되자 후임으로 교위가 되었다. 관우는 [[미당(강족)|미당]](迷唐)[* 삼국시대 곽회에게 격파된 강족의 수령 [[미당]](迷當)과는 동명이인. 이름의 한자는 다르다.]을 덕과 감화로 다스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며,[* 전임자였던 섭상은 다른 전임자들이 미당을 공격했음에도 이기지 못한 것을 보고 덕과 감화로 다스리려 했으나, 미당은 이를 배반하여 섭상이 파견한 역사(譯使)들을 찢어죽이고 다시 노략질을 일삼았다.] 미당이 반란을 일으키자 역사(譯使)를 보내서 여러 종족을 이간질시키고 재화로 유인해 모두 사이가 멀어지게 했다. 이 틈에 관우가 군대를 보내 변경 밖으로 나가 대유곡과 소유곡에서 미당을 공격해 800명을 참수하거나 포로로 잡았고, 보리 수만 곡(斛)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봉류대하(逢留大河)를 끼고 성(城)과 오(塢)를 쌓고, 큰 배와 다리를 만들어 군대를 건너가게 한 뒤 미당을 치려고 하였다. 그러자 미당은 부락을 이끌고 먼 곳에 있는 사지하곡(賜支河曲)에 의지하며 살게 되었다. [[96년]]에 병으로 사망했고, 한양(漢陽)태수를 지냈던 사충(史充)이 후임으로 교위가 되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관우, version=1964)]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의 관료]][[분류:9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