龔祿 (195 ~ 225) [목차]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로 자는 덕서(德緒) == 행적 == 익주 파서군 안한현 사람으로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종사아문장에 임명되었으며, 공록은 [[요주]]와 함께 2천 석의 지위에 있고 명성이 높으면서 요주, [[장억]]과 사이가 좋았다. 유비가 사망한 직후에 수족이 봉기를 일으켰는데, 월수태수 파서군의 공록을 보내 안상현에 주둔시키고, 멀리서 군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계한보신찬에 따르면 공록은 225년에 월수태수로 임명되었고 [[제갈량]]을 수행해 남쪽으로 정벌하러 갔다가 만족의 공격을 받아 이구승에게 살해당했다. 동생 공형은 경요 연간에 영군(領軍)이 되었다. 계한보신찬에 따르면 [[왕사(삼국지)#s-2|왕사]], [[마훈#s-1]], [[마제(삼국지)|마제]], [[이복]], [[이소(촉한)|이소]], [[이조(삼국지)|이조]], [[왕보(삼국지)|왕보]]와 함께 본성을 닦아 촉에 향기가 나도록 했다면서 왕사와 함께 지기가 있고 용감하다고 평가했다. [[분류:촉한의 인물]][[분류:난충시 출신 인물]][[분류:195년 출생]][[분류:225년 사망]][[분류:중국의 살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