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고구려 태자)] [include(틀:고구려의 왕자)] || '''{{{#gold 작위 }}}''' ||<(> '''고구려의 태자(太子)''' || ||<:> '''{{{#gold 성씨}}}''' ||<(> 고(高) || ||<:> '''{{{#gold 이름}}}''' ||<(> 환권(桓權)[* 삼국사기, 신당서는 환권, 구당서에는 상권(相權)으로 기록되어 있다.] || ||<:> '''{{{#gold 아버지}}}''' ||<(> [[영류왕]] || ||<:> '''{{{#gold 숙부}}}''' ||<(> [[영양왕]][* 큰아버지.], [[대양왕|태양왕]][* 작은아버지.] || ||<:> '''{{{#gold 사촌}}}''' ||<(> [[보장왕]] || ||<:> '''{{{#gold 생몰연도}}}''' ||<(> ? ~ 642? || [목차] == 소개 == [[영류왕|영류태왕]]의 아들이자 [[고구려]]의 [[태자]]로 640년 2월 [[당나라]]에 [[사신(외교)|사신]]으로 파견되어 [[조공]]을 바치고 당은 답례로 폐백을 하사하고 [[진대덕]]을 답례사로 보낸 것을 빼곤 그 외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순리대로라면 영류왕에 이어 차기 고구려 왕에 올라야했지만, [[연개소문]]의 [[쿠데타]] 때 부왕인 영류왕이 처참하게 시해된 후 사촌인 [[보장왕]]이 옹립되었으므로 고환권도 그 때 같이 피살당했을 가능이 있다. 다만 고환권의 증손자인 [[https://m.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36653.html#cb|고연복]]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훗날 영류왕과 고환권의 자손들 가운데 최소한 일부는 연개소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연명하다가 고구려가 멸망했을 때 당나라로 끌려갔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세자 환권으로 되어 있으나 신당서 고려전에는 태자 환권으로 되어 있어 삼국사기 편찬시 인용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관련 인물 == * [[영류왕]] * [[고복덕]] == 둘러보기 == [include(틀:고구려 왕실)] [[분류:몰년 미상]][[분류:고구려의 왕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