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237호}}}]]''' || ||<-2> {{{#fff {{{+1 '''고산구곡시화도 병풍'''}}}[br]{{{-1 高山九曲詩畵圖 屛風}}}}}}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0길 17(관훈동),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 || '''{{{#fff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 산수화 / 산수화 || || '''{{{#fff 수량/면적}}}''' || 1점 || || '''{{{#fff 지정연도}}}''' || 1987년 7월 16일 || || '''{{{#fff 제작시기}}}''' || [[조선]] [[순조]] 3년(1803) || [[파일:고산구곡시화도 병풍.jpg|width=550]] [목차] == 개요 == 高山九曲詩畵圖 屛風. [[조선]] 후기의 화가들인 김이혁, [[김홍도]], [[김득신]], 이인문, 윤제홍, 오순, 이재로, 문경집, 김이승, 이의성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유학자 중 한 사람인 율곡 [[이이(조선)|이이]]가 지었던 [[고산구곡가]]를 그림으로 묘사한 12폭 병풍.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종로구)|인사동]]의 동방화랑에 소장 중이고,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237호로 지정되었다. == 내용 == || [[파일:고산구곡시화도 병풍 1.jpg|width=450]] || [[파일:고산구곡시화도 병풍 2.jpg|width=450]] || || [[파일:고산구곡시화도 병풍 3.jpg|width=450]] || [[파일:고산구곡시화도 병풍 4.jpg|width=450]] || || [[파일:고산구곡시화도 병풍 5.jpg|width=450]] || [[파일:고산구곡시화도 병풍 6.jpg|width=450]] || || [[파일:고산구곡시화도 병풍 7.jpg|width=450]] || [[파일:고산구곡시화도 병풍 8.jpg|width=450]] || || [[파일:고산구곡시화도 병풍 9.jpg|width=450]] || [[파일:고산구곡시화도 병풍 10.jpg|width=450]] || [[고산구곡가]]는 율곡 이이가 [[선조(조선)|선조]] 11년(1578)에 지은 10수의 연시조로, 이이 사후 여러 문인 및 화가들이 이 시에 영감을 받아 여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2983&cid=46660&categoryId=46660|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를 그려왔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이 고산구곡시화도 병풍은 [[순조]] 3년(1803) 7월과 9월에 걸쳐 현부행이라는 인물의 발의로, 도화서 화원과 문인 화가들이 모여 고산구곡가에서 묘사된 이이의 은거지인 석담구곡(石潭九曲)의 경관을 그림으로 묘사하고, 여기에 당시 여러 문신들이 시를 추가해 완성한 병풍이다. 1곡인 관암도를 [[김홍도]]가, 2곡인 화암도를 [[김득신]]이, 3곡인 취병도를 이인문이, 4곡인 송장도를 윤제홍이, 5곡인 은병도를 오순이, 6곡인 조협도를 이재로가, 7곡인 풍암도를 문경집이, 8곡인 금탄도를 김이승이, 9곡인 문산도를 이의곡이 그렸다. 마지막 12폭에는 [[송시열]]의 6대손 송환기의 발문과 석담구곡시가 있다. == 외부 링크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2984&cid=46660&categoryId=46660|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고산구곡시화도 병풍]]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1839&cid=40942&categoryId=33383|두산백과 : 고산구곡시화병]] *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C%82%B0%EA%B5%AC%EA%B3%A1%EC%8B%9C%ED%99%94%EB%8F%84_%EB%B3%91%ED%92%8D|한국어 위키백과 : 고산구곡시화도 병풍]] == 국보 제237호 ==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1,02370000,11|문화재청 홈페이지 : 고산구곡시화도 병풍 (高山九曲詩畵圖 屛風)]]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여러 화가들이 그린 그림과 시(詩)가 있는 12폭 병풍이다. > >세로 1.38m, 가로 5.62m로 바탕에 수묵과 엷은 채색을 하였다. 이이가 은거하던 황해도 고산의 아홉 경치를 1803년 7월과 9월에 걸쳐 궁중 화가 및 문인 화가들이 그린 후 문신들이 여기에 시를 적은 것을 모아 표구한 것이다. > >각 표구의 맨 위에는 유한지가 쓴 표제가 적혀있다. 그 아래에는 이이의 고산구곡가와 송시열의 한역시들이 적혀 있다. 그리고 화면의 중·하단에는 고산구곡의 각 경관들을 그렸고, 그 여백에는 각 폭마다 김가순이 쓴 글이 있다. 각 그림은 김홍도, 김득신을 비롯한 당대 이름난 궁중 화가들이 그렸다. > >실제 경치를 직접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기존의 다른 고산구곡도를 참고하여 그렸다. 그림마다 이이가 동자를 데리고 소요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각 경관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그려졌다. >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와 남종화풍을 기반으로 형성된 작가들의 특색과 기량이 잘 나타나있어, 그들의 개성과 역량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또한 이이, 송시열계 기호학파 학자들의 인적 계보와 성향을 연구하는데도 좋은 자료가 된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조선의 회화]][[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분류:이이(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