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낙동강의 교량/대구경북)] ||<-5><#33CDFF><:> '''[[낙동강|{{{#white 낙동강}}}]]{{{#white 의}}} [[교량/목록|{{{#white 교량}}}]]''' || ||<:> 상류 방면 ||<|2><:>{{{+1 ← }}}||<:> 이름 ||<|2><:>{{{+1 → }}} ||<:> 하류 방면 || ||<:> [[88낙동강교]] ||<:> '''고령교''' ||<:> [[성산대교(낙동강)|성산대교]] || {{{+1 高靈橋/Goryeonggyo (Way Bridge)}}}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을 잇는 구 [[26번 국도]]상의 교량. [[1935년]]에 준공되었다가 [[6.25 전쟁]] 때 폭파되어 [[1953년]] [[정주영]]과 [[현대건설]]이 복구에 나서게 되지만[* 당시 복구비용은 5478만환(현재 547만원)에 달했다! 더구나 이는 당시 정부에서 발주한 공사금액 중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금액이었다.][* 말이 복구지 실상은 신축공사에 가까웠다.],당시만 해도 큰 공사를 한 일이 전무한 데다,건설 장비도 부족했고,애써 박은 교각은 급류에 휘말려 사라져 버렸으며[* 이건 [[영웅시대]]에서도 재현된다.],물가도 자꾸 뛰어올라 인부들에게 줄 월급마저 줄어 인부들이 파업까지 했을 정도였다.그럼에도 정주영은 '''"사업하는 사람은 첫째도 신용, 둘째도 신용"'''이라 말하며 동생 [[정순영]]의 20평짜리 기와집과 매제 [[김영주(기업인)|김영주]]의 20평짜리 집, 옛 자동차 수리공장 자리를 판 돈으로 복구에 전념하여 [[1957년]]에 완공시켰다.[* 아산나눔재단의 블로그[[http://blog.naver.com/asan_nanum/220564531831|20년 빚을 남긴 고령교의 비밀]]과 <한국 최고 경영자 9인,그들에게 배워라>중 ""신뢰는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현재 사용하는 것은 2대째로 1981년에 건립되었으며, 옛 교량은 제2 고령교가 지어진 직후 폐쇄되었다가 2010년에 해체되어 찾아볼 수 없다. [[분류:낙동강의 교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