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려 거란 전쟁|평가]][[분류:드라마 평가|고려 거란 전쟁]] [include(틀:고려 거란 전쟁)] [목차] == 개요 == 2023~2024년에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의 34번째 작품 [[고려 거란 전쟁]]의 평가를 다룬 문서. == 평점 == [include(틀:평가/TV 프로그램 평점, ## 로튼토마토=, 로튼토마토_tomato=, 로튼토마토_popcorn=, ## 로튼토마토_highlight=display, IMDb=tt26767539, IMDb_user=8.4, ## IMDb_highlight=display, ## 키노포이스크=5259174, 키노포이스크_user=, ## 키노포이스크_highlight=display, ## Filmarks=14400/19643, Filmarks_user=, ## Filmarks_highlight=display, ## 도우반=36135195, 도우반_user=, ## 도우반_highlight=display, 왓챠=tlnNZ0o, 왓챠_user=4.0, ## 왓챠_highlight=display, 키노라이츠=124191, 키노라이츠_light=90, 키노라이츠_star=4.0, ## 키노라이츠_highlight=display, TMDB=218290, TMDB_user=87, ## TMDB_highlight=display, MyDramaList=731965-the-goryeo-khitan-war, MyDramaList_user=8.1, ## MyDramaList_highlight=display, Rakuten Viki=40249c, Rakuten Viki_user=9.6, ## Rakuten Viki_highlight=display, NME=korea-khitan-war-review-old-school-k-drama-charm-3546510, NME_user=5, ## NME_highlight=display, )] === 평론가 평 === || ||{{{#!wiki style="margin: 10px" ★★★★★ '''이 잘 쓰인 한국 사극은 잔혹한 전쟁과 생존의 이야기로 여러분의 관심을 사로잡을 것이다.''' '''This well-written Korean historical series will keep you hooked its bloody tale of war and survival.'''}}} ---- {{{#!wiki style="margin: 4px" {{{-1 — 푸아 지웨이 ([[NME]]) [[https://www.nme.com/en_asia/reviews/tv-reviews/korea-khitan-war-review-old-school-k-drama-charm-3546510|#]][* 영국의 유명 잡지 [[NME]]의 해당 기사는 4회까지 시청하고 작성된 리뷰이며, 본작이 [[여요전쟁]] 시기를 고전적인 스타일의 사극으로 조명한 점 및 목종 역의 백성현의 연기와 강감찬 대 강조의 대립을 호평하였다. 또한 현종의 성장을 기대하는 듯한 말을 적기도 하였다.]}}}}}} || ||
||{{{#!wiki style="margin: 10px" '''이쯤 되면 시청료는 물론 270억 제작비도 전혀 아깝지 않다.'''}}} ---- {{{#!wiki style="margin: 4px" {{{-1 — 정덕현 (엔터미디어) [[https://www.entermedi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84|#]][* 해당 기사는 6회까지 시청하고 작성된 리뷰이며, 문화예술 평론가 정덕현은 본작이 묘사하려는 것은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전쟁의 이유와 양상 및 소위 '난세의 영웅들'이 싸우려는 이유라고 평하였다.]}}}}}} || == 전쟁 관련 묘사 == === 전반적 묘사 === 전작 [[태종 이방원(드라마)|태종 이방원]]에서 전투신의 연출이 너무 처참하다는 평이 많았기에 본작에서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 다행히 프롤로그의 [[귀주 대첩]] 장면을 보면 전장에서 나름대로 대열을 유지하는 병사들의 묘사를 높게 칠만하고, 프롤로그에서 1인칭 시점으로 검차 아래로 적병 다수가 파고드는 장면이나 한국 사극에서 오래간만에 검차를 선보인 것도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7회에서 묘사된 통주 전투의 검차와 비교하면 모습에 은근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약 10년에 가까운 시대의 변화 및 [[제3차 여요전쟁]]의 준비 과정에서 검차의 발전을 암시한다는 평이 있다. 참고로 해당 검차는 14년전 사극 천추태후에서 나오던 통주 전투 검차 소품 재탕이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bshistorydrama&no=8554|#]] 당시에는 워낙 드라마가 엉망이라 검차가 나오고도 제대로 활용도 못해보고 등장이 종료되었다.] 장수가 전장에서 싸울 때에 투구를 벗지 않는다는 점도 다수의 [[KBS 대하드라마]]와는 달리 잘 묘사되었다.[* 이전 KBS 대하드라마 중에서 전장에서 꼬박꼬박 투구를 착용시킨 마지막 작품이 '''13년 전'''의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이다.] 프롤로그에서 중갑기병대가 등장할 때의 연출도 크게 호평을 받았는데, 잠깐의 등장이지만 '''역대 대하사극 최초로 부대 전원이 찰갑 형태의 갑옷과 면갑까지 갖춰 입고 말에게도 마갑을 입힌 형태'''로 등장하여, 재현도도 높은 동시에 위엄이 넘치는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위기의 순간 전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뿔나팔을 불며 언덕 위에서 나타난 대규모 기병대의 모습이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의 [[로한]] 구원군을 연상케 했다는 평가도 많다.] 전쟁 준비를 위해 동원령 선언을 통한 군사 징집, 인원 수에 맞는 식량을 비축하는 과정, 검차 등의 무기를 제작하는 등의 장면이 상세하게 나온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각 분야에서 활발한 준비가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이러한 장면을 그동안의 대하드라마에서는 이상하게도 보기 힘들었으며, 그나마 나오던 것도 군대 지휘 정도가 전부였기에 이 또한 장족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전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군상을 통해 순전히 전투만이 아닌 정치 영역에서의 전쟁도 이유가 있게 그려지고 있다.[* 과거의 작품들이었다면 교전 내지는 항쟁을 부르짖는 주인공이 항복론을 찍어누르는 묘사가 강했던 데에 비해, 이 작품에서 항복론은 국가의 손해를 최소화하고 보다 우세의 상황에서 교섭을 이어가야 한단 논리를 통해 강세를 보이며 항전론은 주역의 입장이지만 현종의 억지로 진행될 뿐이고 강감찬은 끝없는 항전을 주장하다 결국 후대의 평가를 생각해 당대의 백성을 져버린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 상황이 이어졌으며, 결국 항전론의 주역인 둘도 항전의 상징인 개경을 버리는 것에 동의해 11~12회에서 현종이 몽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참고로 12회는 당시 거란군이 개경을 함락한 과정과 고려의 백성들에게 저질렀던 대학살 등의 만행이 지상파 드라마 치고는 영아 살해도 묘사되는 등 굉장히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본작의 강감찬의 말대로 한 사람의 능력으로 막을 수 없고 '''온 고려가 총력을 다 해야하는 일이기에 전쟁'''이라는 점을 잘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전쟁의 승리나 외적을 무찔렀다는 영광에 치중하는 이전까지의 사극과는 달리, 전쟁의 참상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서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며, 평화를 위해서는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보여준다. 특히 16화에서는 전쟁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린다. 거란군이 압록강을 건넘으로서 2차 침공이 끝난 직후, 몸에 화살을 맞고 장렬히 전사한 양규와 김숙흥의 별동대[* 김훈이 실려온 김숙흥의 시신이 꽉 쥐고 있는 주먹을 펴주려 하는데, 사후강직이 일어나 꼼짝도 하지 않자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극한 상황의 연속이었던 피난길로 인한 피로와 심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사산한 황후, 고문 후유증으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강감찬, 멍한 얼굴로 길 위에 나앉은 백성들, 파괴되어 잿더미가 된 개경의 궁궐 등을 차례로 보여주며, 전쟁은 끝났어도 전쟁이 할퀴고 간 상흔은 지워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각종 전투들 역시 병사 개개에 맞춘 디테일한 전투 묘사는 호평이 많다. 다만 전투 별로 묘사 되는 편차가 너무 크다. 흥화진 전투의 경우 TV 사극 중에서는 역대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고퀄리티의 전쟁씬을 선보인 반면, 통주 전투는 회전 한 번 하고 기습으로 어이없게 강조가 잡혀버렸고[* 실제 역사에서는 고려군이 몇 차례의 회전에서는 승리했지만, 야율분노가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속하고 강력한 종심돌파로 반격해 방어선을 '''단숨에 깨부수고''' 지휘부가 있는 후방까지 빠르게 밀고들어온 것에 가까웠다.] 서경 전투에 이르러서는 싸우는 거 몇 초와 출격 장면 외엔 죄다 대사만으로 날려버렸다. 그나마 묘사 되는 전투도 자세히 보면 전투의 웅장함을 느끼게 해주는 규모 묘사는 극히 한정적이다[* 16화까지는 1화 정도가 그나마 수십만 규모에 걸맞은 대규모 전쟁 묘사를 보여주었다.], 카메라에 동원되는 인원 자체도 너무 적고 인원을 불리는 CG도 쓰지 않아서 부대 규모가 굉장히 초라해보인다. 때문에 고려 장수는 장군이 아니라 소대의 분대장처럼 느껴질 정도이며, 분명 설정 상으로는 양 군이 요충지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상황인데 화면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동네 패싸움을 연상케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본작은 병사나 소품같은 개별적 요소에 주목하는 구도를 활용했다. 호평 받은 흥화진 전투도 사실 성벽을 옆에서 보는 구도를 많이 넣어 바깥의 적군은 잘 보여주지 않으며, 투석기 역시 실제로 제작한 두 대만 카메라에 잡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뒤에서 불덩이가 CG.로 날아가는 식으로 묘사했다. 통주 전투에서는 수십만 규모의 대회전이지만 역시 기병들 몇 기만 클로즈업 하면서 묘사했다. 양규와 김숙흥의 결전 역시 호평 요소이지만 함께 돌진한 고려군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마찬가지로 전투보단 개인의 사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드라마 전반에 걸쳐 이렇듯 미시적인 구도에 맞춘 전투가 대부분이다. 물론 사극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 요즘 시대에 적은 제작비 때문에 전투 묘사가 아쉬운 것은 감안할만한 일이다. 오히려 없는 제작비를 짜내어 연출한 제작진들이 칭찬 받을 점이기도 하다. 실제로 상술한 구도들은 결과적으로 제작비를 절약하기 위한 연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드라마가 '고려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막아내야만 하는 침략 전쟁'을 다룬 전쟁 드라마라는 점이다.[* 다만 애초부터 인터뷰에서 흥화진 전투와 귀주 대첩에 크게 힘을 들였다고 했고 실제로 흥화진 전투는 굉장히 뛰어났던 것을 보면, 한도가 있는 제작비 안에서 애매하게 분배하느니 차라리 힘을 확실하게 줄 부분을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를 희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여러 매체에서 각종 규모 있는 전투 묘사로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겐, 이렇게 제작비 절약에 치중한 전투 연출은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일 수밖에 없다. 통주 전투와 개경 방어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백성을 징집한 광군들에게 불멸의 이순신 수군 포졸복에서 "수(水)"를 붙이고 나온거같이 "군(軍)"표식을 달고 나오는 것도 작위적이거나, 빈약해보인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징집된 백성들에게 따로 무슨 표식이 없이 나온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애초에 사실 KBS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제작비 약 270억원 투자가 명색이 전쟁 사극이라는 본작의 제작비로는 그렇게 많은 금액이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실 KBS가 투자를 많이 하지 않은 것인데, 편당 제작비가 9억원도 안 된다. 2020년대의 드라마계는 12~16부작에도 200억원 정도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32부작에 270억원이면 현저히 적은 것이 맞다. 제작진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노력하는 편이고, 진짜 문제는 그만큼 더 많이 투자를 받지 못했으면서 대하드라마 중 편당 제작비가 가장 높다는 이유로 과장 홍보를 한 KBS의 탓이 아주 크다.[* 참고로 MBC의 로맨스 사극 [[연인(2023년 드라마)|연인]]의 경우엔 편당 15억원의 제작비가 쓰여 총 제작비가 300억원 이상이다. 해당 사극도 병자호란의 참상을 다루는 등 전쟁 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란 도중 연인들의 비극적인 사랑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에 이는 KBS가 평소 강조하는 수신료를 제대로 못 써먹는다고 할 수 있다.] === [[제2차 여요전쟁]] === ==== [[흥화진 전투(1010년)|흥화진 전투]] ==== 5회부터 시작된 흥화진 전투에서는 당시 시대상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 원작에서 거란군은 인력식 투석기를 사용하고, 고려군은 '추의 원리'를 이용한 투석기를 사용한다고 묘사된다. 드라마에 등장한 무게추식 투석기는 망고넬에서 트레뷰셋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도기적 형태로, 무게추와 인력 밧줄 꾸러미를 함께 사용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무기는 동양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주로 인력이 모자라 최소한의 인력으로 더 큰 돌을 날리려 했던 서양에서 발달했다. 이후 여기서 최소한의 인력마저도 배제하고 무게추만으로 투석하는 무기가 바로 트레뷰셋으로, 몽골군이 이 트레뷰셋 전문가를 중동에서 고용하여 중국의 양양성 공격에 사용하였다. 회회포(回回砲)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무기는 동아시아에서 인력식 투석기가 아닌 다른 종류의 투석기가 사용된 유일한 사례다.] 중세의 무게추식 투석기 사용법을 정확하게 재현하였다. 게다가 5회는 빛과 색감을 잘 활용한 세련된 영상미로 찬사를 받았는데, 결말부에 양규가 낀 깍지에 불길이 비치며 거란군이 투석기로 화염을 두른 돌을 던지고, 관측병이 거리를 조절하며 군사들이 다시 돌을 여럿 던지면서 어두운 하늘이 점차 밝아져 양규가 지키는 흥화진을 향해 날아오는 장면이 인상적이라는 평이 많다. 특히 [[대포병 레이더|관측도구까지 사용]]해가며 [[대화력전|상대방 투석기의 위치를 파악해 점차 사거리를 맞춰가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엄밀히 말하면 극중 등장한 거란군의 관측도구는 훗날 몽골군이 이슬람권을 정복하면서 얻은 수학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여요전쟁]] 당시 거란군이 사용할 수는 없다. 연출의 디테일을 살려내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자료가 많이 남은 몽골 관련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고증오류이기는 하나 전쟁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감각을 잘 전달해준다는 점 때문에 호평이 더 많은 편이다.] 현대에도 정밀한 포격이 힘든데, 전근대 투석기는 말할 것도 없다. 공성측이나 수성측 양쪽에서 투석기를 사용하는 것은 반지의 제왕이나 킹덤 오브 헤븐에서 묘사된 바가 있지만, 이렇게 투석기의 사거리나 타점 조절을 한 것은 고려거란전쟁이 처음이다. 6회에선 기존 사극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던 전쟁에서 진형을 갖추고 처절하게 싸우는 묘사가 큰 호평을 받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심한 부상을 입으면서 싸우는 양국의 병사들, 화살을 너무 많이 쏘아 시위가 망가져서 피범벅인 손으로 다시 각궁을 재정비하는 양규, 틈틈이 물을 마시고 밥을 먹다가 입에 묻은 밥풀을 뗄 시간도 없이 분전하는 고려군, 피로 물들어진 성벽 아래에 쌓인 거란군의 시체 등의 여러 장면들을 통해 잘 묘사하였다. 거란군이 고려 사람들을 포로로 잡은 다음 방패막으로 삼아 성벽을 올라오려고 할 때에도 고려군이 고뇌 끝에 결국 화살을 쏘는 묘사 역시 비슷한 평을 받았다.[* 이 장면 한정으로 신파가 아니냐는 의견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엄밀히 말해서 신파를 넣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도 아닌데다가 실제로 거란군이 고려군 앞에서 포로들을 학살해서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기록을 토대로 각색한 것이고, 훗날 양규가 포로들을 구출하는 장면을 위한 빌드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어쭙잖은 신파와 달리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 간의 사랑이나 감정선이 아니라 엄연히 전쟁 중에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여러 사례가 존재하는 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연출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장면이 있는 [[대조영(드라마)|대조영]] 1회와 비교해 보아도 이런 부분에서 본작의 연출은 굉장히 담백한 편이다.][* 참고로 원작에서는 흥화진 전투 시점이 아니라 양규와 김숙흥 등의 전면 돌파에 의해 퇴각이 지체되자 소배압이 부하들의 말을 따라 재산 가치와는 별개로 남은 고려인 포로들을 방패막으로 삼아서 우회하는 거란군을 공격하려는 고려군을 묶어두고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도록 지시한다. 원작에서 양규는 차마 격살하라는 말을 내리지 못하고 피난민들에게 길을 내어 주다가 난민 사이에 숨은 거란군들이 고려인을 죽이기 시작하자 난민들이 거의 다 빠져나갈 때에 대열을 맞추어 북을 울리며 진격하나 이로 인해 위험에 처하게 된다.] 기존 사극에서 소위 지휘관라는 사람들이 독려 혹은 독전만 하고 지휘는 안 하는 것에 비해, 독특하게 화살로 지시하여 불화살을 따라 맹화유를 투석기로 날리거나 [[효시]]를 발사하여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거란군에게 화살을 쏘는 식으로 지시를 내리는 양규의 모습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기존 사극의 전투씬에서는 적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화살을 쏘고 가까이 있으면 칼을 들고 싸우는 천편일률적인 연출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수가 다수를 이긴 전투나 일반적인 전투나 연출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 때문에 연출만 놓고 보면 그냥 칼싸움 잘하면 이기는 거고, 칼싸움 못하면 지는 수준밖에 안 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이는 비단 드라마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영화 [[명량]] 역시 이순신의 대장선에서 백병전을 하는 연출이 대거 등장하는 것을 두고 '조선군이 저렇게 칼싸움을 잘하는데 배가 13척이라서 위험하다 이런 얘기는 왜 한 거냐?' 는 식의 반응이 꽤 있었다. 이는 김한민 감독이 이 피드백을 받아들였는지 후속작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포격전 연출이 훨씬 많아지면서 개선되었다.] 반면 본작의 흥화진 전투는 고려군이 맹화유를 활용하여 화공을 가하거나 성 주변에 함마갱을 파서 적의 접근을 차단하는 등,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철저하게 준비를 해왔음을 잘 보여준다는 점도 호평받았다.[* 원작 소설의 묘사를 잘 따른 부분이며, 소설에서는 함마갱으로 인해 단순히 보병만 발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공성차도 전진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거란군이 이를 포대로 메우는 장면 역시 원작의 묘사를 가져온 것이다. 한편 드라마에서는 맹화유를 활용한 수성전을 고려군의 반격으로 보여줬지만, 원작에서는 고려군의 선공으로 묘사하였다.] 또한 기존 사극에서 중요 장수를 제외한 병사들은 그냥 죽어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에 비해 흥화진 주둔 병력은 확실히 정예로 묘사된다. 방패병들이 적의 화살을 막고 궁병이 대기하다가, 양규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방패병이 비키고 궁병이 화살을 쏜 뒤에 물러나면 방패병이 다시 적의 화살을 막는다. 연출만이 아니라 3천명이 40만명을 막은 전투 결과도 작중에서 강조해서 이들의 성과로 확실히 언급한다. 다만 투석기를 발사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7일 간의 전투라기에는 백병전이 거의 없고, 성벽을 타고 오르는 일도 거란군의 시체가 바닥에 쌓여있는 묘사 등 여파 자체는 적나라하게 묘사된 것과 별개로 과정이 생략되었으며, 예산 부족으로 인해 성벽도 급조한 세트 느낌이 여실히 보인다. 또한 원작에서 성벽을 오르려는 거란군에게 쇳물을 붓는 장면, 거란군이 북과 징을 치면서 공격하는 척 해서 고려군이 잠들지 못하도록 지치게끔 하려고 시도 및 잠깐 동안 고려군의 기병대가 출전하여 거란군을 놀라게 하는 등의 묘사가 없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7회에서는 흥화진 전투의 여파가 묘사되었는데, 고려군의 승전이면서도 전쟁에서의 승리가 마냥 통쾌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 가족을 잃은 백성들과 몸이 만신창이가 된 병사들을 통해 잘 드러났다. 다만 흥화진 전투 다음에 흥화진의 양규가 병사들과 봉화를 올려 승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매복해 있는 거란군과의 전투 자체는 창작이라서 중세의 정보 전달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굳이 필요했냐는 반응도 있는데, 특히 이 싸움이 묘사된 7회에선 후술할 통주 전투 외에 개경의 장면들과 전쟁터의 장면들 간에 분량 조절이 아쉽다는 의견이 있다. 프롤로그 장면 한정으로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있었는데, 5회 말미부터 피드백이 되었는지 고려군과 거란군 장면에서 모두 자막이 삽입되었다. 다만 [[일점사]] 같은 용어를 해설 자막까지 동원해가며 차용한 것은 현대어투 치고도 다소 어색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극 중에서 일점사가 현대의 사격 분야도 아니고 게임 분야에서 사용되는 뜻으로 나오기도 했고, 사극에서 자막은 당대의 표현을 해설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더욱 그렇다. ==== [[통주 전투]] ==== 5~6회의 [[흥화진 전투(1010년)|흥화진 전투]]는 중세 전투의 역사 재현도가 높아지고, 전투의 처절함을 잘 살린 연출이 돋보여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7회에서 다뤄진 [[통주 전투]] 연출은 '''[[https://blog.naver.com/suu1/223284516662|원작자 길승수 포함]]'''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사실 본작이 100% 사전 제작이 아니라서 발생한 문제로 2023년 11월 중순의 [[역사저널 그날]] 회차를 보면 [[https://www.youtube.com/watch?v=hwoN7n70ACY|적어도 10~11월까진 아직 통주 전투를 촬영 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통주 전투의 전초전에서 검차를 앞세워 고려군이 질서정연 하게 진을 치고 다양한 장병기를 이용해 거란 기병을 막는 장면까지는 호평이다. 한국 사극에서 이렇게 전근대 군대가 대열을 잘 갖추어 전투에 나서고, 전열을 잘 유지한채 다양한 중장병기(투석, 쇠도리깨, 장창)를 사용해 기병을 격퇴하는 보병의 모습을 잘 묘사한 적은 거의 이번이 처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위기를 끝까지 잘 이끌었으면 좋았겠지만, 여기서 통주 전투를 더 묘사하지 못하고 [[참수작전|거란군의 야밤 기습으로 강조가 사로잡히고]] 고려군이 무너지는 스케일이 너무 초라하게 묘사되었다. 사실 7회가 시작하자마자 흥화진 전투의 결과가 대충 스킵되고 이미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묘사된 개경 상황 장면으로 시간을 질질 끄는 등의 불안한 요소들이 많았다. 이런 불필요한 장면들이 늘어날수록 전투 묘사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작가가 태종 이방원 때부터 무슨 스페셜 재방 보여주듯이 매끄럽지 않게 쓸모없는 부분은 많이 늘리고 중요한 사건은 툭툭 던져서 스킵하는 식으로 각본상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런 문제가 고려 거란 전쟁에서도 재발하였다. 심지어는 본작의 원작인 고려 거란 전쟁 소설에서도 통주-삼수채 전투를 비롯한 주요 전투들은 고려군과 거란군 장수들이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하며 극의 재미를 살리는 장면으로 묘사되고, 강조의 최후도 충분히 독자들이 납득 가능하게 설명되었다. 각본을 맡은 작가의 각색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bshistorydrama&no=6072|원작 묘사]]] 그리고 막상 통주 전투 부분이 시작되자 아니나 다를까 약 3분 가량만 묘사된 전초전이 끝난지 5분만에 야율분노가 소수 병력만 이끌고 기습을 꾀하는 장면이 나오고, 힘 한번 못 써보고 2분만에 강조가 고려군 본진 한복판에서 붙잡히는 급전개와 개연성 없는 전개를 보여준다.[* 당장 흥화진의 고려 병력은 거란 본대가 남하한 뒤 남아있던 포위망조차 제대로 뚫지 못해 전령이 아닌 봉화를 올려야 했을 정도였는대, 드라마 상 수십 기에 불과한 거란 기병이 수십만의 고려군이 지키고 있는 고려군 본진을 기습해 강조를 사로잡는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물론 강조의 지휘부 근처에 있는 야산을 이용해 기습했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상식적으로 그런 지형이 있다면 '''다른 곳보다 경계를 더욱 강화해야 정상이다.''' 강조가 제대로 된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바로 사로잡힌다는 전개는 현실성이 없다.] 불과 4천의 병력이 수성에 나선 흥화진 전투 장면이 6회에서 30분 이상을 할애해 제대로 각잡고 묘사된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가볍게 넘어갔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통주 전투는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인 [[귀주 대첩]]보다 큰 규모의 회전으로 역사적으로도 대충 다루기 어려운 전투이다.[* 기록만 놓고 보면 수십만명이 맞붙은 전투이며, 이 수치가 과장일 가능성이 높더라도 사실상 역대 [[여요전쟁]]의 모든 회전 중에선 가장 큰 전투인 것은 분명하다. 강조의 본군이 격파된 삼수채 전투도 원래 야율분노의 거란군이 수많은 고려군을 전사시키고 포로로 잡은 스케일 큰 국지전이다. 물론 초반부 통주 전투에서 기를 다 빼버릴 순 없기에 이해할 수는 있지만, 후에 진행될 대규모 회전에 대한 기대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사료상의 삼수채 전투의 전개와도 차이가 나는 묘사라 혹평이 많다. 웹상에선 야율분노가 [[다크템플러]] 폭탄드랍, 혹은 [[아비터 리콜]]이라도 시전한거냐며 아연해 하는 반응들이 나왔다.][* 사실 나름대로 상황 설명을 넣기는 했는데, 우선 거란 측이 숨겨진 루트를 통해 침투했고, 강조가 그들이 군량미를 노린다는 보고를 접하고는 주변 군사들을 그 쪽으로 보내는 장면이 있었고, 부도통사 장연우가 후방 군율을 잘 잡지 못하는 장면이 빌드업으로 나오기는 했다. 물론 거란 측은 군량미가 아니라 강조 자체를 노리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허무하게 잡혔던 것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연출이 뭔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야율분노의 군대가 본진을 들쑤시고 들어오는 장면이 하나도 없이 그냥 보고로 때운 다음 갑자기 강조가 있는 본영으로 전부 등장하니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빌드업이 하나도 없다'''며 어이없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허망하게 무너진 고려군이 왜 졌는지에 대한 빌드업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전투가 빨리 끝나서 급전개가 너무 심한 편이다. 사실 통주 전투 초반부의 화면 화질이나 고려군, 거란군 병사들의 질서정연한 연기는 작중 초반 맛보기로 보여줬던 뛰어난 퀄리티의 귀주 대첩 장면 분위기와 거의 유사하다. 이에 비하면 삼수채 전투 장면의 경우 화면 화질, 어수선한 분위기라든지 주변 환경 묘사 퀄리티 차이가 전초전 묘사와는 다른 것이 매우 극명해서, 확실히 삼수채 전투 묘사는 본작 제작진이 힘을 덜 쓴 부분인 것은 분명하다. 이 외에도 [[태종 이방원(드라마)/말 학대 및 죽음 사고 논란|태종 이방원 촬영 당시 있었던 말 학대 및 죽음]]으로 인해서 그런 것인지 고려군 보병의 뛰어난 묘사와 달리 거란군 중기병대가 격파당하는 장면이 맥아리없이 진행된 문제가 발생했다.[* 말이 뾰족한 것을 두려워해서 눈을 가리라거나 하는 표현은 중국의 명작 사극영화인 [[명장(영화)|명장]]에서도 청나라 기병이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bshistorydrama&no=8466|이런 제스처를 취하는 장면이 묘사될 정도로]] 노련한 유목 기병의 말에 대한 순간 대응을 잘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적절했으나 그 외의 묘사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말이 어떤 병장기에도 맞지 않고 사람만 공격당해 붕괴되는 장면은 너무 이질적인 묘사였으며, 이 외에도 40만이 동원된 전쟁임에도 기병이 너무 소수라 명색이 유목제국의 정예병인 거란 기병이 빈약하게 묘사됐다. 기병의 수가 많을 때 주로 묘사되는 땅울림이나 흔들림 역시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에 대응해 기병이 닥치기 전에 방패 뒤에서 적의 동태를 살핀 뒤 호각을 불어 검차를 출진시키는 고려군 보병의 연출은 한국 사극 연출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 연출이라고 볼 수 있었기에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통주 전투의 전반적인 묘사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영상 작품이라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 시청자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일상 생활 장르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등장 인물이 사는 장소를 보여줄때, 그리고 타국으로 장소를 이동했을때 전체적인 분위기나 장소를 조감도로 보여준다. 특히나 전쟁을 주제로 하고 있는 드라마인데 전투 장소, 병력들이 어느 정도 크기로 진을 치고 있고[* 참고로 원작 소설에서는 [[호왈백만|기록상 과장의 가능성]]을 인지하여 삼수채의 고려군의 수를 10만으로 소개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반해 드라마 상에서는 당시 병력을 30만이라고 적혀 있는 기록 그대로 반영하였으나 화면에 나오는 병력이 너무 적어보여 어색해 보이는 점도 있다.], 어떻게 진법을 구사하고 있는지 스케일을 보여주는게 걱정 될 만큼 없다. 실제로도 그렇겠지만, 마치 CG를 쓸 여력이 안되고 사람을 많이 동원을 못했다는걸 숨기려는 듯 클로즈업이 많다. 드론 촬영 기법으로 거란 진영과 고려 진영이 어떻게 대열을 이렇게 유지하고, 어떻게 대치하고 있는지를 조감도로 잠깐만이라도 보여줘야 할 필요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통주 전투를 묘사하는 카메라의 시야가 너무 좁아서 거란 기병도 너무 노골적으로 가깝게 잡아주고, 어느 정도 대규모 병력이 검차진 쪽으로 몰려온다라는 느낌이 시청자들에게 전혀 없었다. 때문에 통주 전투의 묘사에서 이 드라마는 수십만 대군이 저기 어디 화면에 잡히지 않는 곳에 주둔해 있다는걸 추측하고 상상하라고 시청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흥화진 전투도 사실 기록대로 거란군 40만이 한번에 몰려오는 연출은 딱히 없었지만, 이는 작은 성을 지키는 소규모 병력들이 처절하게 싸우는 것을 그들 시점에서 보여주는 부분이라 시야가 제한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무려 대회전인 통주 전투를 저렇게 허무하게 스킵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불친절한 부분이며, 연출 역량의 부족 또는 분량 조절 실패로 볼 수 있다.][* 물론 제한된 제작 환경에서 나름대로 역량을 짜내어 3분간 대규모 기병전을 잘 묘사한 부분은 호평하는 의견이 적지 않은 편이다. 촬영에 동원된 말은 10~20필 정도로 보이고, 그나마도 CG로 일부 장면을 보완해 넣은 것이 보이지만, 컷을 빠르게 전환하고 기마병이 진군하는 역동성을 강조하는 연출 기법을 사용해서 최대한 대규모 회전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노력이 엿보인다. 다만 아무래도 케이블이나 OTT 오리지널이 아닌 지상파 드라마라서 영화처럼 실감나고 잔인한 묘사를 할 수 없는 한계는 있다.] 어떤 면에선 14년전 [[천추태후(드라마)|천추태후]]는 [[제3차 여요전쟁]]을 날림 처리하는 등 최악의 역사 재현을 보여준 작품 중 하나인 것과는 별개로 통주 전투만큼은 전장을 어느 정도 넓게 조명해서 최대한 규모감 있는 싸움으로 묘사하려는 노력을 하거나 강조가 초전에 승리하고 나중에 패배하는 장면을 제대로 구분해서 넣는다든가, 패전 후 포로로 잡혀 항복했단 기록이 있는 [[이현운]]을 처음부터 배신자로 몰아 패전 책임 몰빵하는 판타지를 써서라도 삼수채에서 고려군이 지는 개연성이라도 챙겼는데 본작의 통주 전투는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진 고려군이 왜 졌는지 빌드업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전투가 너무 빠르게 끝나버려서 급전개가 너무 심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전인 흥화진 전투가 더 크게 느껴지고, 본전인 통주 전투는 그냥 난전처럼 묘사된 문제가 생겼다. 어찌 되었든 간에 8회에서 통주 전투의 여파가 잘 묘사된 것과는 별개로 7회에서 고려사 최대 규모 전투 중 하나인 통주 전투의 '기승전'이 이렇게 허무하게 연출된 것은 변함이 없다.[* 사실 방영 직전에 제작발표회 때부터 흥화진 전투 및 귀주 대첩에만 크게 공들인 것을 밝히긴 했지만, 퀄리티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특히 5회에서 현종이 강조에게 [[부월]]을 수여하는 장면이 본작의 명장면으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되었는데, 이때 생긴 기대감을 7회에서 배신당해 허탈해 하는 시청자 반응들이 많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bshistorydrama&no=8444|#1]] 막판에 강조가 잡힌 부분도 차라리 원 역사를 반영해서 담요로 싸가는 편이 낫지 기존에 강조가 보여주던 위엄에 비하면 너무 볼품없고 오히려 웃기는 장면처럼 보였다는 비평들도 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bshistorydrama&no=8492|#2]]][* 여담으로 드라마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원작에서는 강조가 아침에 거란군을 섬멸하기 위한 방안이 꽤 구체적인 편이다. 노전이 군사들을 쉬게 하려면 좌우위군에게 엄호를 맡기고 군영으로 후퇴시켜야 한다고 말하자 날이 밝을 때에 고려군이 후퇴하면 거란군이 따라올 것이니 대열을 유지하다가 많이 연습한대로 거란군도 모르게 신속히 방진을 풀어 학익진을 만들고, 적에게 돌이나 맹화유 등을 던지며 모든 기병이 좌우익에서 포위하거나 실패하더라도 그들을 검차진 밖으로 나와 영채까지 추격하여 기병을 활용해 거란의 황제를 잡거나 도망치게 하는 식으로 다수를 패주시키자고 주장하여 제장들 모두 동의한다.] ==== [[서경 전투]] ==== 원래부터 생략하거나 날림으로 처리하는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10회의 [[서경 전투]]에 들어와 생략씬이 더 심해졌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전투 장면은 없고 출격하는 장면만 보여주고 전령의 대사로 때우는 게 전부일 정도인데, 더 자세히 풀자면 야율융서의 진격이나 공성전은 아예 묘사되지도 않았고, 지채문의 승리는 출격과 귀환 장면만 나왔다. 또한 이후 패하는 장면에서 화살비가 쏟아지는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들어와 패하여 쫓기고 있다고만 이야기되며, 대도수가 사로잡힌 부분은 아예 보여주지도 않고 전령의 대사로 대신해 비판 받는 중이다. 다행히 조주연, 심지어 단역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납득가는 스토리가 스케일의 부실함을 만회하는 중이다. 또한 최소한 장수들이 무기를 휘두를 때 화면의 흔들림을 통해 무게감이 더해졌으며, 잠깐 나오는 지채문과 대도수 등이 거란군에 맞서는 난전 묘사에도 화면의 구도와 자연광 덕분에 볼만하다는 평도 있다. 아울러 양규의 야간정찰 당시 기도비닉을 위해 말굽에 천을 감싸는 디테일한 연출들로 리얼리티를 살리려 노력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제작비와 분량 문제 때문인지 전투의 규모 자체는 축소되었지만, 대신 전투 내의 자잘한 리얼리티와 세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이를 메꾸고 있는 셈이다. 이와는 별개로 아이러니한 점은 서경 전투가 묘사된 10회에서 시청률이 10%에 처음 도달했다는 것이다. 11회에서 그대로 이어진 조원과 강민첨 등이 이끈 서경 공방전은 비록 흥화진 전투 묘사만큼은 아니었고 장면도 짧게 묘사되었지만, 충분히 절망적이고 처절한 상황을 잘 그려내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짧은 장면이라 흥화진 전투처럼 전투씬에 자체자막이 현출되지 않았지만 포성과 굉음이 난무하는 장면에 자막이 없어 대사가 잘 식별되지 않았는데 자막 연출이 일관되지 않은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다. 서경을 포기한 거란군이 어떻게 개경으로 진격하였는지에 대해서도 묘사하여 절령에서 지채문, 장연우, 황보유의 등이 거란군을 최대한 막아내던 장면 역시 기병은 없지만 제파전술로 고려군을 끊임없이 괴롭혀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다만 서경에서 전투를 치르던 중 거란군에게 쫓기던 지채문이 합류하는 과정이 상당히 부자연스럽다. GPS 추적과 통신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전쟁 중에 통신이 두절되거나 고립된 부대의 소재를 파악하기란 몹시 힘든데 서경과 개경 사이 어딘가에서 떠돌던 지채문 부대를 전전승지 양협이 홀연히 홀로 나타나 황명을 전한다. 차라리 장연우가 이끌고 절령으로 향하던 선발부대와 조우하여 합류하는 연출이 나았을 것이다.] 10회에서 거란군을 공격하다 사로잡혔다는 대사만으로 하차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대도수도 야율융서에게 붙잡혀 거란으로 압송되는 모습까지 나와 마무리를 적절하게 짓는 묘사가 나왔다. 다만 여전히 동네 싸움처럼 보일 정도로 부족한 스케일과 개경 성문이 열리는 장면을 빈약하게 묘사하여 지적 받았다. ==== [[곽주 전투#s-3]] ==== 12회에서 연출된 [[곽주 전투#s-3|곽주 전투]]는 이전 회차의 아쉬웠던 부분에 비하면 큰 호평을 받았다. 기록이 부족한 곽주성 탈환 과정을 잘 메꾸었다는 평을 받았는데, 양규가 먼저 효시를 날려 지시를 보내자 성을 사수하려고 혼란스러워진 거란군 사이에 먼저 포로로 들어간 김숙흥 등이 내란을 일으켜 성문을 열고, 양규와 최충을 포함한 고려군이 불화살을 날려 마치 적이 많은 것처럼 위장하는 장면들은 원작을 잘 따라간 부분이다. 한편 원작에서는 포로들이 그저 부상병을 업고 나오는 장면 밖에 없지만, 드라마에서는 포로로 잡혔던 백성들이 악에 받쳐 같이 거란군을 학살하는 묘사는 작품의 주제였던 거란과의 전쟁에서 모든 고려인이 단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줬다는 반응이 많다. 여담으로 유성이 나오지 않은 부분은 애초에 고려사에서도 곽주에 유성이 떨어졌다는 점만 기록했을 뿐이고, 유성을 통해 곽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설은 기록 자체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일각에서의 추측일 뿐이기에 이를 굳이 묘사할 필요는 없다. 원작 소설에서도 그저 곽주에 유성이 떨어졌다는 것을 최충과 양규가 보는 장면으로 나올 뿐이지 성을 함락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지는 않았으며, 이 유성은 서경성의 장수들과 도망쳐 개경으로 향하던 지채문도 멀리서 보게 된다. 드라마 상에서 주제 의식을 잘 살린 부분이 많지만, 원작 소설에서 [[노전(고려 거란 전쟁)|노전]]이 선봉으로 참여하여 성문을 여는 활약 및 고려군이 곽주성 안에 불을 질러 거란군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장면이 생략되었다는 점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수급을 베기 전에 곽주성 안에 있던 지휘관 3명이 탈출하였다가 양규의 화살에 죽지만, 원작에서는 남문 쪽으로 탈출한 일부 기병들과 보병들이 최질을 포함한 고려군이 미리 설치한 수천의 [[마름쇠|철질려]]에 발이 묶여 서로 아비규환 속에 압사당하거나 창과 불화살에 의해 죽는 장면이 있다. 그 외에 원작에서는 준비 과정 도중 양규가 통주성에서 거란군이 물러가고 남하한 것을 확인하자 통주와 삼수채에 영채를 쌓게 하거나 바퀴가 없더라도 최대한 검차를 많이 만들어 적군이 고려군의 수가 많다고 오판하도록 지시하기도 한다. ==== [[애전 전투|양규·김숙흥의 추격전]] ==== 통주 전투나 서경 전투에서 지적된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전반적인 묘사나 설명의 부족 그리고 전투씬의 생략 및 날림 처리 등이 그렇다. 장점도 똑같은데 배우들의 연기력과 납득가는 스토리로 부족한 스케일을 만회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양규의 영웅적 희생을 감동적으로 묘사하였다는 점에서는 호평으로 의견이 모이나, 세부적인 연출이나 각본 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호평하는 쪽에선 사극에서 지금까지 거의 장식품 수준으로 다루어지던 갑옷의 방어력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호평한다. 갑옷이 종이갑옷인 양 아무 방호력을 갖지 못하던 대부분의 기존 사극과는 달리, 단병접전에서는 기본 냉병기만으로는 중장갑옷의 방호력을 뚫을 수 없는 점을 충분히 고증하였고 고려군이 호항(목가리개)을 착용하여 목을 보호하고, 목가리개가 떨어져 나가자 거란군사가 목을 노리라고 외치는 부분 등은 연출진이 처음부터 기획한 철저한 고증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그동안 빌드업해온 캐릭터를 무너뜨리지 않고, 양규와 김숙흥의 최후를 장렬하게 연출했고, 사서의 내용도 그대로 반영해 과장 없이 마무리 했다는 점에서 고평가를 하고 있다. 이정도면 부족한 제작비 등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보여줄 수 있는 만큼은 충분히 보여줬다고 평가하며, 향후 사극 전투신의 새로운 기준점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한다. 불호 입장에선 비장함과는 별개로 애전 전투가 갑작스럽게 벌어져 너무 어설프게 연출된 것에 불만을 가진다.[[https://m.dcinside.com/board/koryokhitanwar/55157|#]] 사실 양규의 죽음으로 비장함과 슬픔이 강조되어서 그렇지 귀주 협곡 전투나 포로 구출, 정성의 최후의 공격 등을 봐도 굉장히 스케일이 작게 묘사되거나 생략당했다. 이 때문에 드라마만 보면 거란이 괴멸적인 피해를 받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기록으로 살펴보면 이 전투로 거란은 장족(귀족)과 병졸, 수레도 돌아간 것이 드물었고, 관속들 태반이 전몰하면서 조금이라도 글을 아는 자를 뽑아 결원을 보충해야 하는 상황이 될 정도로 큰 피해를 받았다. 드라마에서도 몇 만이 죽었다고 언급되지만 전투 스케일이 작아 실감이 안 나고, 야율융서나 소배압에게서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다 보니 고려군의 활약 및 거란군의 피해가 대단치 않은 느낌을 준다. 이에 대해 반론을 펴는 측은,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로 남아 있는 [[귀주대첩]]의 스케일을 키우기 위해서는 빌런의 카리스마 또한 이번 전투로 지나치게 훼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거란군의 대패보다는 양규의 비장한 최후에 보다 초점을 두어 연출한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 외교 및 정치 관련 묘사 == 거의 기존 [[한국 사극]]에 대한 [[안티테제]]에 가까울 만큼 파격적인 외교 묘사가 많다. 그동안의 한국 사극에서는 외교와 전쟁을 민족주의적 자부심이라는 면에서 다뤘으며, '평화를 위한 굴종'은 거의 금기에 가까운 묘사였다. 오직 [[원 간섭기]]~조선시대만이 예외일 뿐이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고려를 [[외왕내제]]로 묘사하면서도[* 엄밀히 말하면 고려의 [[외왕내제]] 여부는 학계에서도 논쟁적이긴 하지만, 이건 본작이 역사를 왜곡한 게 아니라 '상충하는 학설들' 중 일부를 극의 전개를 위해 취사선택한 것일 뿐이다.] 고려가 거란에 사대한다는 걸 매우 분명하게 명시적으로 묘사하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즉위 초 현종을 '정치 초보의 무지함'으로 일축하였다.[* 이런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현종의 모습이 실제 역사 속 현종의 모습과 다르지 않냐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이는 현종의 캐릭터를 빌려서 역사나 정치 외교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 시청자에게 당시의 상황과 이후 벌어질 일들을 설명하고 개연성을 부여해주는 장치로 활용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현종이 결과적으로 성군으로 재위 기간을 마치긴 했으나 즉위 당시에는 명백히 후계자로서 필요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급하게 왕위에 오른 것이 사실이다. 사서에 현종이 처음부터 정치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는 기록도 없는 만큼 이러한 각색이 실제 역사 속 현종과 다르다는 근거는 없다.] 동시에 고려의 대(對)거란 적개심도 노골적으로 묘사하여, '종주국이면서 동시에 주적'이라는 거란의 특수한 위치를 부각하고 있다. 민족적 자부심을 부각하는데 특화된 [[여요전쟁]] 시대를 다루면서도, 오히려 거꾸로 민족주의적 사관과 선을 긋는 것이다.[* 기획의도에서 [[애국 마케팅]]을 보였기에 본작도 그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운 모습이었기에 의외였다는 반응이 있다. 동시에 민족주의적 사관과 국뽕을 싫어하는 역덕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민족적 자부심'을 내려놓은 것과는 정반대로, 본작에서는 '평화'라는 주제가 오히려 부각된다. 본작은 고려 거란 '전쟁'을 다루면서도 전쟁이 결코 영광스러운 행위가 아니라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전장의 참혹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전쟁이 양국뿐만 아니라 다른 교류국에도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대신들의 발언을 통해 잘 묘사하고 있다. 본작의 고려가 기존의 그 어떤 한국 사극보다도 '''뻔뻔하고 교활한 [[마키아벨리즘]]적인 외교술'''을 전개하는 것도 여러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표현만 보고 근본적으로 고려가 사악하고 저열한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한민족은 예나 지금이나 중원 및 만주 세력과 비교해 늘 약자의 포지션이고, 당시 고려가 힘대힘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거란과 동등하진 않더라도 최소 밀리지 않으려면 '''겉보기에는 뻔뻔하고 교활해보이는 기만책과 외교 전술'''을 써서라도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를 속이고 뒤통수를 치더라도 나를 노리는 적을 이기고 살아남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사기가 아니라 전술이자 책략이다. 더불어 정치와 외교에 선악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강감찬이 지적하듯 애초에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먼저 쳐들어온 건 거란이다.] 본작의 고려는 '하늘 아래 부끄럼 없이' 목종은 시해당하지 않았다는 거짓말까지 불사하고 '친조한다고 했지 항복한다곤 안했다'는 말장난까지 하면서 시간을 번다.[* 또한 외교는 아니지만, 백성들에게 전장 상황을 속이는 것도 기존 사극과 달리 옹호된다. 상식적으로 봐도 이쪽이 더 현실적인 것이, 백성들의 동요로 후방이 붕괴하면 더 큰 재앙이 나기 때문이다. 현종은 "전쟁을 이겨도 백성들의 신의를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지만, 이는 "그런 생각은 일단 살아남고 나서 하자"고 반박된다.] 특히 승하한(정확히는 시해한) 왕의 사인(死因)을 숨기는 사기는 기존 사극의 한국 묘사에선 거의 금기에 가까운 것이며, 심지어는 거란에 진실을 이실직고한 여진족을 고려가 적반하장으로 '''여진은 신의를 모르는 종족이니 믿지 말라'''며 매도하기까지 한다. 얼마나 고려 측의 기만전술이 강조되는지 오죽하면 팬덤에서 '[[보이스피싱]]' 드립이 나올 정도다. 단순 사실관계 공방에서는 고려의 외교야말로 뻔뻔함의 극치이지만, 본작은 이런 뻔뻔하고 비겁한 짓을 해서라도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이런 [[고려 거란 전쟁]]의 성향을 상징하는 대사가 강감찬의 입에서 나온다. '''"폐하께서 막연하게 생각하시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통스러운 것이 전쟁이옵니다. 인간이 살아서 겪는 유일한 지옥이 바로 전쟁이란 말이옵니다."''' [[전랑 2|전쟁을 마냥 영웅적이고 낭만적으로만 묘사하는 중국의 현대 프로파간다 영화]]들과 그야말로 대척점에 서 있는 입장.] 원작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로 속고 속이고 속아주는 척하는 전쟁만큼 치열한 물밑 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본작이 단지 싸움만이 없는 '거짓 평화'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현종이든 강감찬이든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영토를 잃은 채 종전하는 건 반대하고 있다. 즉 전쟁은 단호히 반대하지만, 그게 끌려간 백성을 꼬리 자르듯 유기하고 상황을 모면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동시에, 거란 측의 외교 역시도 굉장히 뻔뻔하게 묘사된다. 거란의 대외 명분은 "역적 강조를 토벌하자"이다. 즉 '책봉된 제후왕의 억울한 원한을 황제가 갚아준다'라는, 겉으로는 참 아름답고 유교적이며 의리가 넘치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실상 거란은 목종과 강조에게 아무 관심이 없고, 그저 침략을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웠을 뿐임이 노골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게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야율분노가 독단적으로 강조를 생포해 오자 분노한 소배압이 일갈하는 장면인데, 여기서 명분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야율분노는 역적 강조를 잡았으니 좋은 거 아니냐고 항변하나 이에 소배압은 대놓고 "그럼 철군하라는 말이냐? 황제 폐하께서 원하시는 건 강조가 아니라 이 고려 전체를 정벌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종합하자면, 본작의 외교는 거란이든 고려든 굉장히 '''뻔뻔하고 추잡한 진흙탕 싸움'''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추악한 진흙탕 싸움의 끝을 보여줌으로써, 침략은 나쁘며 '국가와 백성의 진정한 평화'가 가장 소중함을 역설하고 있다. 애초에 침공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면 양국 모두 이런 추악한 모습은 보일 이유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 부정적 평가 === 다만 전쟁은 이겨야 된다는 주제에만 집착해서 정작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에 급제하고 조정에서 일하는 고려의 머리 좋은 신하들의 대사 퀄리티가 그닥 좋지 못하여 그들이 주장하는 명분이나 논리가 너무 허접하다는 것이다. 특히 강감찬이 전쟁은 이겨야 된다고 말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백성들이 고통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런 소리는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긴 전쟁이니 그러려니 하는 거지 만약 나라 접수당하고 패망했으면 씨알도 안 먹힐 논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쓰는 대사들이 너무 평면적이고 단선적인 대사들이 많고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빌드업이나 캐릭터들을 제대로 부각을 못 시키고 있다. 사실 드라마에서의 외교전도 원작 소설의 묘사와 어느 정도 다른 부분이 있는데, 원작에서는 명목상의 항복 표문을 작성하여 거란군이 철군하도록 유도하려던 계획은 채충순의 생각이었으며, 강감찬도 분명히 힘으로 적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시하며 기책으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고 현종과 논의한다. 또한 원작에서의 강감찬은 처음에는 일단 백성들에게 고려의 굳건함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정확히는 백성들을 피난시키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요지는 이해하나 도성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이며, 구정과 위봉루에 군사를 모이게 하여 밥과 술을 내린 후 공을 세운 자에게 상을 주고 노비를 면천시킨다는 조서를 통해 군사들과 백성들을 안심시키자는 방안도 주장한다. 그래서 직후 서경성이 고전한다는 소식에도 현종은 우선 피난은 반대하며 강감찬과 따로 논의를 하기도 한다.], 이후 서경성에서 지채문의 패배 소식을 듣고서는 현실을 직시하며 우선 나이가 많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부터 피난을 가도록 하고, 일부 대신들은 지방으로 보내 근위군을 조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을 한다.[* 애초에 원작에서 서서히 이길 방법을 찾기 위해 나주까지 몽진을 주장한 요지도 흥화진의 양규, 통주성의 이원구, 귀주의 김숙흥 등의 장수들이 아직도 분전할 때에 고려의 안위를 가장 책임져야 할 조정이 벌써부터 항복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으며, 친조가 지금의 위기를 넘길 수는 있어도 훗날 언제 거란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거란의 간섭을 받아 추종자들이 늘어날 시에는 대비가 불가능하기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원 간섭기]]의 부원배(附元輩)들을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결정은 현종의 몫이며 만약 항복을 결정하더라도 따를 것이라고 덧붙이고, 현종이 몽진을 결심하자 근왕군을 나주로 모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드라마에서의 대책 없는 모습과는 다르다.] 위에 언급된 원작 소설과는 달리 드라마에서는 극의 외교전을 상징하는 주요 인물인 강감찬의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무조건 전쟁을 주장한 전쟁광으로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병력도 형편없이 열세인데 최소한 강감찬이 그러한 대사와 고집을 부릴 정도면, 이길 수 있는 전략이라든가 어떠한 자신감이 있는 근거가 있거나 지지 않을 만한 그 무언가를 제시해야 그나마 납득이 가는 것이다. 싸우는 장군들과의 제대로 된 소통도 없는 상태이고, 뜬금없이 한참 이후에나 양규를 만나서 자기와 같은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고 뿌듯해 하는 등 대책없는 수준이다.[* 양규야 무장이니 그러한 자신감이 충만하고 근거가 있지만, 도대체 강감찬은 무슨 근거로 이러는지 알 수 없다. 사전에 장군들과의 교감 정도는 형성을 하는 빌드업이 있든지, 아니면 그럴듯한 명분과 대사, 전술을 더 제시할 필요가 있든지 해야 할 것인데, 애초에 2차 여요전쟁에서 몽진을 주장한 것 외에는 별 비중이 없는 인물들 자꾸 비중을 주고 오리지널 행적을 넣다 보니 이런 면에서 행적 자체가 부실해지는 것이다.][* 심지어 몽진 직전에는 강감찬이 계속 항전을 주장하자 무슨 대책이 있느냐는 질문이 들어오는데, 강감찬은 여기에 '''"저도 방법은 모릅니다만"'''이라며 대놓고 인정해버린다.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대책도 없는 양반이 무슨 자신감으로 계속 항전을 주장하는 건지 어이가 없을 정도다.] === 긍정적 평가 === 하지만 위의 비판에 대한 변론 역시 꽤 많다. 결국 여요전쟁에서 고려가 승리했다는 결과를 아는 미래의 관점에서 근거도 없이 이긴다고 이야기하는 강감찬, 논리적인 주장이 부족한 고려의 대신들에 관련된 이야기가 비판적이지만 작가들 역시 위의 반응을 예상했다고 판단되는 대사가 작 중 강감찬이 계속 되풀이하는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이다. 전쟁 자체가 결국 벌어지는 순간 승전하지 못하면 결국 무엇을 선택해도 잃는다. 또한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은 과정 속에서는 무엇을 선택해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공교롭게 드라마 제작 기간 중에 벌어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부분적으로 휴전하여 동부 영토를 넘겨야한다 vs 러시아와 끝까지 항전하여 영토를 되찾아야한다 둘 중 우크라이나가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 전문가들조차도 확답을 내리지 못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또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완전히 밀어내야한다 vs 휴전하고 다시 원래 상태로 복구해야한다 또한 해답이 없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을 반대하면서도 기존의 형태로 복구하면 또 다시 분란의 단초를 미래에 넘긴다는 점 또한 전 세계 모두가 인지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즉, 전쟁 자체가 시작되면 우세이든 열세이든 완벽한 승리를 하지 못하는 순간 어떤 것을 선택해도 잃어버리는 것이 발생하는 오류가 발생한다. 때문에 기존에 초월적인 영웅관을 보여주며 완벽한 해답들을 주인공들이 선택하는 고전 사극들은 분명 주인공에 대한 대단함을 표현하는 대가로 이렇게 완전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냐는 괴리감이 발생할 수 있지만, 작품 내에서는 이런 완전무결한 드라마적 부분들은 모두 배제하면서 대부분의 인물들이 미래 시점인 우리가 보기에는 논리가 어설픈 부분이 있지만 전쟁의 혼란함을 보여주기에는 적절하다고 평가받는 부분이 존재한다. 결국 본작은 전쟁 사극이라는 어떤 논리를 펼쳐도 관점에 따라서 논란이 발생하는 장르라는 점을 인지하고 차라리 여러 관점을 보여주며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공감하도록 유도한 극본에 가깝다.[* 물론 작가의 능력이 그런 관점들을 모두 감안할 정도로 높다면 좋겠지만 차선적 선택으로 전쟁의 참사와 고뇌를 표현하여 한국의 사극에서는 쓰지 않은 도전적 극본으로 기존의 사극과 차별화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 인물 해석 및 묘사 == 1회부터 세 명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현종, 강감찬, 양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우선 강조나 고려 황실의 묘사부터 먼저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리하게 스토리를 현종이나 강감찬에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목종과 천추태후, 강조의 서사 모두 비추어줬다. 이에 반해 강감찬은 1회에서는 프롤로그인 전쟁 장면에 8분 가량만 출연하였고 현종도 1회에서 반쯤 지나서야 나온다.[* 양규 같은 경우에는 (프롤로그로 나온 강감찬을 제외하면) 세 인물 중 가장 먼저 등장했고, 천추태후에 비해서 등장이 굉장히 빠른 편이기는 하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을 거쳐 사병이 완전히 혁파되고 중앙집권이 완비된 조선시대의 왕권과는 전혀 상반되게 묘사되는 고려의 왕권 묘사도 특징이다. 조선은 [[대한제국]] 이전까지 한 번도 스스로 황제국을 자처한 적이 없음에도 왕권은 역대 한국사 왕조 중 가장 강력했던 반면, 고려는 외왕내제로 내부적으로는 황제를 스스로 칭하고 있었음에도, 아이러니하게 왕권은 조선 시대보다 약했다. 이는 한국사 기준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중세[* 조선은 중세 후기부터 근대까지 걸친 중근세 왕조이다.]라는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데, 중세 시대 대부분의 국가들은 봉건제 사회였고 중앙의 행정력이 강하지 않아 지방 영주(호족)들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의 묘사도 그렇고 실제 역사에서도 왕건은 거느리던 비빈의 숫자가 그야말로 맘까페를 개설해도 될 정도로 많았는데, 이들이 모두 지방 호족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으로 [[합스부르크 가문|혼인 동맹]]을 맺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왕건의 비빈들 중에는 첫날밤 이후로 평생동안 왕건의 얼굴도 못 보고 죽은 비빈들도 많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잘 나타낸 것이 극초반 [[김치양]]의 왕 시해 시도와 뒤이은 [[강조의 난]]이다. 왕이 무능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치양은 [[목종|일국의 왕]]을 우습게 여기고 [[천추태후|왕의 어머니]]와 사통해 사생아까지 낳는 모습을 보인다. 강조는 한술 더 떠 [[목종|무능한 황제]]를 본인 손으로 시해하고 [[현종(고려)|허수아비 황제]]를 옹립하기까지 하는, 전형적인 중세 유럽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왕 앞에서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목이 날아가던 조선과는 상반되는 부분이다. 또한, 주인공들을 포함하여 극의 인물들의 대사가 기존 KBS 사극 같진 않고, 대사가 비교적 가벼운 편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점이 오히려 젊은 층을 유입하기에 좋은 점일 수도 있다. 과거 사극들(2010년대 초반까지)은 그 편수가 100회 내외로 길었고 내용도 길게 이어가는 편이었고, 당시 시대의 한자나 사자성어를 인용하는 일도 자주 있었던 상황과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본의 투박함과는 별개로 각 인물의 감정선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고, 기록을 적절히 반영하여 각색하였기에 이런 스타일에 의외성을 느끼는 반응도 있다. 그래도 덕분에 여러 인물들을 다각면에서 조명하거나 실제 역사에서의 행적에 맞게 적절히 빌드업을 진행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당시 시대 정황상 여러 인물들이 어지러이 오가는 일종의 군상극이기에 이러한 스타일의 각본이 오히려 적절할 수도 있다. 사극에서 새로이 시도된 캐릭터성도 주목을 받았다. 반정을 일으키면 정권에 충성하지 못해 타락하거나 충신이면 반역을 저지르지 못할거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양면성을 모두 납득시킨 강조, 핍진성이 있으면서도 시청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던 현종과 강감찬의 관계, 정형적인 무인상에서 벗어난데다 군인임을 감안하면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는 속성[* 극단적으론 상관살해도 서슴지 않으려는 반골기질이나 살육에 미쳐있는 것을 긍정하는 부분으로, 보통 이런 속성은 선역에게 쥐어주진 않는 속성이다.]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긍정적으로 납득시킨 김숙흥이 대표적인 예다. === 고려 측 인물 === 방영 첫 주에는 [[현종(고려 거란 전쟁)|현종(대량원군)]]의 인물 해석에 관하여 그가 자존심만 앞세우며 태후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 하는 철없는 모습을 보여주어 좀 아쉽다는 평가가 있었다.[* 사실 현종이 아예 야심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궁에서 쫓겨나 강등된 시절에 작은 뱀이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며 나름 와신상담하는 모습도 보여주고는 했다. 본작의 현종이 황제가 되어서는 그 무게에 짓눌려 갈팡질팡하면서 흔들리는 모습이 나오는 캐릭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엔 황족이라는 자신감만 가득 차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캐릭터로 해석되어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선 당연히 그럴 수 있어 보이지만, 그게 '여요전쟁을 승리로 이끈 강인한 명군 현종'이라는 대다수 한국인의 실제 역사 인물 감상과 꼭 일치하는 캐릭터 해석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평도 있다.][* 사실 현종은 왕족이긴 하지만 부모의 불륜으로 인해 출생했고 또, 그 때문에 왕위 계승권은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출가를 할 수밖에 없는 신세인 데다가 여차하면 숨을 수 있게 토굴을 파놓고 김치양과 천추태후가 암살을 위해 사람을 보내면 숨곤 했을 정도였으니 현대인 입장에서는 성격이 자신만만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현종의 이미지는 목숨 부지도 어려운 상황에서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거쳤다가 강조라는 권신에 의해 꼭두각시로서 옹립되었으니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설령 격렬한 성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고난의 인생사로 인해 이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심이 강하며 현명한 신하들의 보필을 받는 것을 꺼리지 않는 외유내강형 인물로 생각할 것이다.] 일단 현종은 17~18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이후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고 누구보다 냉정한 판단을 할줄 아는 인물이었으며, 본작의 큰 관건은 몇 달 후 왕위에 올라 엄청난 결정들을 해야 할 현종이 저렇게 저돌적인 성격에서 여요전쟁이라는 시급한 상황을 어떻게 냉정하게 대처하는지를 묘사하는 방식일 것이다. 방영 둘째 주부터는 반응이 더 좋아졌는데[* 특히 현종을 연기하는 김동준의 경우 1~2회에는 발성이 사극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진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점차 발전해 왕위에 오른 4회부터는 힘 없는 소년 군주에서 점차 군주의 위엄을 갖춰가는 성장형 군주의 역할에 잘 맞는 연기를 보여주어 호평을 받고 있다.], 3회까지의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만 하는 철없고 저돌적인 사람이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승려들까지 입막음으로 죽이려 하는 자객들을 보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각성하고 왕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나온다. 또한 자신을 죽이려던 최 상궁과 대화하며 누구였는지를 기억해내어 과거에 쫓겨날 때 달래준 일에 대한 감사를 표하였고, 후에 목종의 명으로 그를 지키러 온 군사들이 나타나자 그녀에게 찾지 않겠다고 말하여 빨리 도망갈 것을 재촉한다. 이렇게 본작에서는 현종의 초반부 캐릭터를 아직 미숙하지만 성장이 빠르고, 위기의 순간에 좋은 판단력을 보여주며 적이라도 일단 최소한의 자비를 베푸는 인물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회차가 지날 수록 자신의 항복하지 않곘다는 결정을 고수하면서 어떻게든 항전하겠다는 고집도 보이는데, 그가 2차 여요전쟁 시점에서는 전란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 미숙하다는 점도 잘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지승현]]이 연기한 [[양규(고려 거란 전쟁)|양규]]는 초반부터 나라에 끝까지 충성하는 무인이라는 점이 강조와 대조되어 무결한 인간상을 보여주어 시청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으며, 6회에서 고려의 포로들을 죽이게 되는 상황을 겪은 것이 그가 훗날 다른 포로들을 구출하는 장면에 대한 암시라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극 중 그를 전설적인 영웅으로서 치켜세우는 듯한 연출이 많은데, 대부분 공과 과가 극명한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사실상 무결한 인간상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반응이 많다. 이와 별개로 양규 역이 지승현의 첫 사극 연기는 아니지만, 첫 정통 사극 출연인데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와 각궁 실력을 보여 큰 호평을 받았다. [[최수종]]이 연기한 [[강감찬(고려 거란 전쟁)|강감찬]]은 그가 대외적인 인식과는 달리 본래 장군이 아닌 문관이며, 4~7회까지는 남들과 타협할 줄 몰라 융퉁성이 부족한 인물로 그려졌지만, 8회부터는 현종에게도 쓴소리를 하게 된 이후 점차 심경의 변화를 겪고 대신들의 의견을 수용하되 자신만의 신념을 따라서 계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여 그 또한 어떻게 보면 성장형 캐릭터라는 평을 받았다. 11회에선 계속해서 항쟁을 주장할 때 전쟁을 이기는 것만 주장하지 이겨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 또한 그의 성장을 암시하는 부분인지 주목할만하다.[* 대신 여요전쟁의 결말을 아는 현대의 입장에선 절대로 있어선 안 되었을 항복을 주장하는 다른 신하들의 말이 왜 설득력이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이점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드라마에서 작가에 의해 너무 과도한 푸쉬를 받았다는 의견도 많다.[* [[제2차 여요전쟁]] 당시 강감찬이 한 일은 항복하자는 조정의 여론에 반대해 홀로 몽진 및 항전을 주장했다는 것 뿐이었고, 다른 기록은 전혀 없다. 원작 소설에서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bshistorydrama&no=18140|추가된 활약]]은 현종의 어가가 몽진을 위해 떠난 직후 남아있는 20여명의 관리들을 모아 젊은 이들 중 김종현 등을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100여명의 군사들로 최대한 거란군의 남하를 지체시키도록 한 것이 전부며, 그마저도 감악산으로 가는 수천의 부대만 바람과 눈보라 덕분에 막아낼 수 있었다. 훗날 [[제3차 여요전쟁]]에서 두 사람의 활약을 빌드업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상에서는 그의 활약이 대폭 늘어나 거란으로 사신으로 가서 거짓 친조를 요청하고, 탁사정에게 서경의 상황을 알려 항복을 막았으며, 죽으려는 현종을 끌고 나온데다가 현종으로 변장하여 시간을 끌었다. 이후에도 다시 서경으로 가서 왕이 죽지 않음을 알리고, 다시 소배압과 만나 거란이 필요한 명분까지 요구했다. 이중 한가지 일만 하더라도 전황을 뒤바꾸는 일인데, 그런 일을 홀로 5~6개를 해버렸으니 이쯤되면 제2차 여요전쟁 최고의 공신이 양규가 아니라 강감찬일 지경이고, 이런 일들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리가 전혀 없기에 작가의 각색이 무리수라는 비판이 생긴 것이다.] [[백성현]]이 연기한 [[목종(고려 거란 전쟁)|목종]]의 경우 그간 대하사극에서 묘사된 웬만한 암군과는 다르게 재상들을 믿어주는 모습, 황실의 후계만큼은 신경 쓰는 모습, 그리고 의외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면모를 보여 여러 복합적인 캐릭터성으로 인해 많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감형 캐릭터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대하사극 치고는 [[천추태후(드라마)|천추태후]] 이후로 오랜만에 1회부터 동성애나 근친, 애정 묘사 같은 게 적극적이라 화제가 된 면도 있다.[* 4회에서도 사촌 관계인 [[현종(고려 거란 전쟁)|현종]]과 [[원정왕후]]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기에 이런 측면에서 또 화제가 되었다.] 또한 그동안 거의 부각되지 않았던 고려 전기의 성문화[* 동성애자인 목종 외에 김치양과 사통으로 아들을 낳았던 태후는 흔히 알려져 있었으나, 태후의 [[신음|교성]] 때문에 부처님이 노했냐는 [[섹드립|드립]]과 초반부의 개경 전경을 보여주는 장면의 마지막에 나오는 연인의 [[키스]]신 등이 기존 사극과 다른 느낌을 줘서 신선해하는 반응이 있었다.] 및 당시 고려 왕실의 개족보를 어느 정도 조명하였다.[* 드라마에서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목종은 [[태조(고려)|태조 왕건]]의 3대손(증손자)이지만 1/8이 아니라 1/2이 왕건의 피로 '''친가외 외가 모두 통틀어 증조부가 태조 왕건 단 한 명 뿐이다.''' 목종의 부모인 [[경종(고려)|경종]]과 [[헌애왕후|천추태후]]가 [[사촌간 혼인]]이었고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도 모두 태조 왕건의 자녀들로 이복남매끼리 혼인하면서 생긴 일이다. 원작에서 가족 관계 배경이 설명되었던 현종의 경우 [[안종(고려)|숙부]]{{{-2 (1/2왕건)}}}와 [[헌정왕후|조카딸]]{{{-2 (2대손, 1/2왕건)}}}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로 모계로는 3대손이고 부계로는 2대손이지만 1/2이 왕건의 혈통이며 목종과도 부계(당숙-당조카)와 모계(이종사촌)를 통틀어 모두 혈연으로 엮인다.] 덕분에 초반부에는 현종보다는 오히려 목종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가 극 중 시해당한 이후에도 그의 이른 퇴장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원종(1966)|이원종]]이 연기한 [[강조(고려 거란 전쟁)|강조]]는 3~4회가 되어서야 권신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서 1~2회에서 묘사된 덕장으로서의 면모와 크게 대조되는 바람에 캐릭터 변화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5회에 들어서 현종의 결단을 내리는 태도에 대해 사실상 인정하였고, 그가 후에 부월을 하사하면서 전쟁에서 이기면 아무도 그를 역적으로 매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격려의 말을 전하자 눈물을 흘리며 충성을 바치는 장면은 훗날 강조의 최후에 대한 좋은 빌드업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동시대를 다룬 [[JTBC]]의 다큐멘터리 [[평화전쟁 1019]]에서도 [[https://twitter.com/aetius07980843/status/1728440196667228671|현종이 강조에게 부월을 수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해당 작품에서 강조는 부월을 자기 멋대로 부여잡고 왕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오만함을 보인다. 즉위 초기의 현종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해당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본작에서는 강조가 부월을 받들고 감개에 젖은 듯한 복잡한 감정을 보이고 있으며, 현종도 왕으로서의 위엄을 차려 오히려 역적을 감복시키고 동기부여까지 해주는 현명한 군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다.] 통주 전투 및 삼수채 전투의 묘사가 너무 허무하게 진행되어 시청자들 사이에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특히 통주 전투에 대한 빈약한 연출과 묘사에 대해 시청자들이 아쉬워하거나 혹평한 이유는 강조 또한 드라마의 극 초반부 주연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공식 주인공들인 현종, 강감찬, 그리고 양규는 초반에 아무런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강조가 극을 주도하여 1~5회의 온갖 명장면을 독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청자들이 강조가 영광과 몰락을 나타내는 대전투인 통주 전투가 주인공에 걸맞게 나오기를 바랬는데, 그 과정이 이렇게 너무 심하게 간략화되니 시청자들이 배신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맹세했던 그의 최후만큼은 사서의 기록을 적절히 반영하여 마무리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 거란 측 인물 === 거란국 고위층 인물들의 경우 재현이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목 민족의 부족제와 농경 민족의 군현제를 혼합한 이원(二元) 통치 체제를 같은 국가 내에 공존하는 거란족 인물들과 한족 인물들을 통해 잘 묘사하였으며, 유목 민족으로서의 생활상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몽골을 방문하여 실제 유목민들의 생활상을 촬영한 점 덕분에 호평을 받았다. 갑옷 외에 변발 양식 등도 높은 수준으로 재현했기에 일각에서는 고려 측 재현보다 더 낫다고 평하였다. 거란군 자체도 꽤나 강력한 부대로 묘사되었는데, 특히 6회에서 고려군이 파놓은 함마갱에 보병들의 발이 빠지자 이를 하루만에 다 메우는 묘사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고위층의 문화 재현과는 별개로 아직까진 그저 적국의 인물들로만 묘사되어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김혁]]이 연기한 거란의 황제 [[야율융서(고려 거란 전쟁)|야율융서]]는 첫 원정인만큼 미숙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유목 민족의 잔혹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대국의 군주답게 위엄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 호평을 받았다. [[제2차 여요전쟁]]을 일으킨 원인이 축약된 것과는 별개로 [[예지황후|승천태후(예지황후)]]에 대한 아들로서의 효심을 보이거나 소배압을 신뢰하는 장면들을 통해 그의 가족에 대한 정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강대국의 황제로서의 자존심이 강하다고 묘사되며 자신에게 복종하는 이에게는 자비를 베푸는 성격도 보이는데, 강감찬이 올린 거짓 친조 요청에 속은 후 그가 약탈(타초곡)을 금하여 달라고 청하자 흔쾌히 허락하고 포로들에게도 제대로 대접을 하겠다고 말한다. 한편 강조에게 '야만'인이라는 모욕을 받자 그를 처참하게 죽이는 장면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엄벌을 내리는 모습과 더불어 야만족이란 멸칭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는 정복 왕조의 군주로서 자신의 분노를 토해내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원작 소설의 야율융서는 요나라 최고의 명군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담대하며 명민하고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bshistorydrama&no=18357|강조처럼 고려에 끝까지 충성한 신하들을 존중하는 호걸]]로 그려지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침략자로서의 면모를 부각하여 그를 더 과격하게 그린 점은 약간 아쉬운 부분이다.] [[김준배]]가 연기한 거란의 장수 [[소배압(고려 거란 전쟁)|소배압]]도 젊은 군주를 보필하는 노회한 신하로서 강감찬과 대립각을 세우며 크게 호평을 받았다. 거란 측 인물들 중에서 머리가 좋은 인물로 묘사되어 일종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등 나름대로 확고한 인물상이 구축되어 있고, 정치적 수완도 다른 거란 측 인물들에 비해 독보적이다. 의외로 인격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데, 휘하 장수들이 고전하자 조언을 주기도 하면서 패전의 책임으로 그들을 질책하지는 않는다. 한편 배우의 얼굴과 분장이 꽤 잘 어울린다는 평이 많아서 실제 거란 사람 데려와서 연기하게 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으며, 배우 본인 특유의 사시와 쇳소리도 무섭게 들린다는 반응이 있다. 그러나 머리가 좋은 것과는 별개로 13회 시점까지 활약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에서 우습다는 반응도 많다. === 호불호 요소 === 일단 극이 전개되면서 [[강감찬]], [[현종]]이 극의 중심으로 등극하여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드라마 초반부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의견이 존재하는데, 몇몇 시청자들은 아마도 과거의 대하사극들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극의 초반을 이끌어 갔어야 하는 [[천추태후]], [[김치양]]에 노련한 배우를 배치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나름의 위기감을 조성하는 역할을 했어야 하는 [[천추태후(고려 거란 전쟁)|천추태후]]는 연기의 무게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김치양(고려 거란 전쟁)|김치양]]은 비중이 적어 권신이라는 느낌조차 주지 못했다.[* 특히 이민영의 경우엔 [[천추태후(드라마)|비슷한 시기를 다루는 모 드라마]]처럼 천추태후를 미화하고 띄울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연기하는 캐릭터의 힘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아들을 휘어잡는 위엄보다는 배우의 미모가 돋보인다는 평이 많다.] 목종의 경우 혼군으로 묘사된 것에 대해 은근히 위화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가 처음 등장하기 직전에 개경을 묘사할 때에 융성하고 풍요로운 시장의 모습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려의 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시청자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백성들의 삶을 빈곤하게 묘사하거나[* 흔히 무역 대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대중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최소 절반을 상회하는 높은 소출 세율과 허술한 구휼 제도로 인해 고려의 중하위 계층 민생은 전성기에도 거의 항상 파탄 수준이었다. 고려도경에서는 고려의 백성들이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다(然其爲人寡恩)라는 대목으로 빈곤함을 돌려 말하고 있으며, 다수의 학자 사이에서도 고려의 국가적인 부유함과 별개로 민생은 피폐한 시간이 더 길었으리라는 것은 사실상 합의된 내용이다.] 차라리 목종이 직무를 유기한 상태에서 재상들이 업무를 보고 판단을 내려 고려를 주도해 나가는 내용을 더 삽입했다면 나았을 부분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사극에서는 묘당(廟堂)과 재상들이 회의와 직무를 하는 것이 묘사되어 시청자들이 국가의 상황을 파악하게 하였다.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회의나 직무수행을 거의 등장시키지 않고, 대부분의 국가 상황 중 특히 거란과의 관계를 변방의 강조와 양규의 대화만으로 때우고 있다.] 다만 극 중에서 다루는 목종 당시의 문제는 임금의 태업, 계승 갈등, 총신의 발호 같은 정치 문제에 국한되어 행정이나 민생 문제까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수준이고, 강조도 정치 문제와 함께 그로 인해 국방 문제에 대한 대비가 소홀해지고 있는 것에 경각심을 가질 뿐이지 민생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실제 목종 항목에도 보면 상세히 나와있지만 목종은 초반에는 열심히 정치를 하였으나 계속되는 어머니의 섭정과 김치양이 본격적으로 권력을 가지게 되면서 정치에 염증이 난 모습을 보이기에 이 묘사가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이는 목종의 대사나 신하들의 대사를 통해서 여러번 강조된다.] 거란국 고위층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과는 달리 거란군 엑스트라 중 타초곡기는 작위적인 느낌이 대놓고 들 정도로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다. 특히 6회에서 고려 사람들을 포로로 납치한 거란 타초곡기들을 인간이 아닌 악마적 존재로 묘사하기 위해 야만성을 보여준답시고 뜬금없이 원시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차용하여 동물처럼 소리를 내거나 행동을 묘사하는 1차원적 방식을 동원했다. [[거란]]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거란은 [[수당시대]]를 거치면서 중원의 문물들을 받아들이며 북방민족 치고는 꽤 문명화 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요나라]] 시기에는 그 절정에 이르면서 고도의 문명을 향유하는 민족이었다. 다만 상술한 요나라의 생활상과는 별개로 [[몽골제국]] 이전까지 유목제국들의 경우는 정규군이라도 전시작전 중 약탈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거란군이 40만의 대군인데다 다국적군에 출신 성분도 다양해서 개개인마다 규율이 천차만별이긴 했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을 납치하고 죽인데다 그 과정이 절대로 인도적일 리는 없기 때문에 극 중에서 묘사한 잔혹함 자체는 틀렸다고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고도의 문명을 지닌 나라의 병사가 흡사 원시인같이 행동했던 묘사는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 사극 특성상 적군 묘사가 완전히 공평할 수는 없지만, 거란 고위층들은 상당히 카리스마 있고 현실적인 악역으로 묘사한 반면, 유독 병사 묘사만큼은 기존 한국 사극들의 그 어떤 적군 엑스트라보다도 과장된 게 아이러니하다.][* 다만 타초곡기에 관한 묘사가 완전히 부자연스럽다고 보기는 어렵다. 타초곡기는 전문적으로 약탈만을 시행하는 부대이므로, 일반 병사들에 비하여 수준이 낮은 병사들의 집단이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12회에서 일반병사들과 타초곡기 사이에 차등이 보이는데, 일반 병사들도 물론 타초곡기와 같은 수준의 잔혹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경 약탈 장면에서 수준 낮은 행동을 보이는 것은 타초곡기 뿐이다. 이는 적어도 본작에서 타초곡기가 일반 병사들에 비해 상당히 질이 떨어지는 집단이라는 구분에서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7회에서는 고려와 거란의 장수들 묘사에 모두 비판을 받았는데, 뜬금없는 거란 장수들 간 경쟁 구도가 보여 소배압의 군재도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고, 부월씬으로 대표되던 강조의 복잡한 심리도 잘 활용되지 못했다. 특히 7회 한정으로 소배압은 활약이 없는 무능한 장수처럼 보였고[* 다만 8회에서 소배압은 고려군의 전멸이 목표였기에 야율분노가 강조와 수뇌부만 잡고 오는 바람에 고려군이 전부 흩어져 섬멸하기 어려워지자 야율분노에게 하루만 더 있었으면 회전으로 고려군을 전멸시킬 수 있는데 일을 더 키웠다면서 일갈한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야율분노는 정당하게 회전에서 검차를 돌파한 후 기병대를 이끌고 강조를 납치했는데다가 후에 소배압과 함께 개경을 불태운 공을 인정받은 공신이었기에 실제 인물에 비해 조금 격하된 묘사였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드라마에서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삼수채 전투에서 야율분노는 지도만 보고 난생 처음 온 적국의 산을 야간에 완벽하게 넘어와서 도통사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잡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장면 자체의 개연성이 좀 많이 이상한 편인데, 아무리 작중 고려군 대다수가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정예병이 없지는 않을 것인데 최고 지휘관을 지키는 고려 병사들도 없고 제대로 싸우는 병사들도 거의 없다. 심지어 군량미 창고를 치는 이중트랩의 경우 전날 밤에 처음 본 고려군 30만이 먹을 식량 창고를 단번에 알아채는 모습도 석연치 않고, 아무리 고려군이 궤주하고 있다고 해도 소수의 거란군 특작부대가 고려군 사령부 한복판에서 도망도 안 가고 강조를 잡아다가 불을 피우고는 그 위에 매달아 크게 떠들며 조롱하는 장면은 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https://blog.naver.com/demon_illu/223281385356|#3]] 그것과는 별개로 고려군이 와해되어 도망가는 장면 자체는 애초에 대다수가 농민이기에 사기가 금방 꺾인 것으로 볼 수 있어 크게 이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야율분노의 묘사도 문제인 것이 소배압이 연이은 패전에도 아율분노를 옹호하고 목숨을 구명해 줬는데도 야율분노가 갑자기 뜬금없이 전공 때문에 소배압을 견제하는 소인배로 묘사되었다. 흥화진을 함락시키지 못해 자존심이 상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앞의 복선도 없는 어이없는 전개이다.] 때문에 흥화진의 승리로 희망을 얻는 부분이 강조의 대패로 무너지는 극적인 장면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였고, 거란군의 위엄과 그로 인한 강조의 절망감을 적절히 그려내지 못하였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13회까지 오면서 소배압의 유능함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였고, 그가 사실상 제대로 활약한 장면이 없다는 점이 크게 혹평을 받았다. 강감찬도 너무 과하게 활약하려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생기고 있다. 사서에 빈 기록을 채운다는 작가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 결과가 너무 무리수라는 반응이 많으며, 특히 60대의 문관이 드라마에 묘사된 것처럼 화살을 맞고 심한 고문까지 겪어 살아올 가능성[* 사실 60대 문관의 문제가 아니라 본작에서 묘사되는 식으로 화살을 맞고 거기다 작중 갈고리로 쇄골을 깊게 찍는 극악한 고문 같은 걸 당한다고 생각하면 젊은이라도 쉽게 살아오기 힘들다.]은 사실상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물 개개인에 대한 핍진성의 문제도 심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차 여요전쟁 당시 인물들을 묘사하면서 보이는 본작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원작 소설]]에서의 묘사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점 외에 실제 전쟁 중 있었던 기록이나 일화 같은 내용을 대폭 삭제하고 자꾸 강감찬처럼 2차 전쟁 당시의 기록이 없는 사람들에 관한 오리지널 각색을 계속 집어 넣는다는 점이다. 13회에서 문제가 되는 강감찬의 오리지널 행적만 보더라도 사실 이 부분에서는 양규의 활약상이나 서경에 있는 장수들의 활약, 현종을 정말로 열심히 호종한 사람들의 행적을 더 넣어야 할 판이고 강감찬의 이전 행적 각색은 딱 이전 회차까지만 넣어도 상관없었는데 부족한 전투씬을 이걸로 매꾸려는 것인지 [[뇌절|자꾸 무리수를 두는 각색]]이 관측된다. 2차 전쟁의 흥화진 전투, 통주 전투, 서경 전투, 현종의 몽진만 하더라도 묘사가 대폭 축소된 감이 있는데 이래서야 대하드라마라는 스케일에 걸맞은 묘사라고 보기엔 힘든 부분이 있다. 결국 이 또한 현재 대하사극의 고질적인 문제인 전투씬 축소의 연장판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을 다룬 드라마임에도 매 화마다 전투씬을 묘사하기 힘드니까 회차를 자꾸 전투 이외의 부분으로 채우려 하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주연 무장들인 소배압과 양규의 비중도 축소되며, 그 축소된 비중을 강감찬의 활약으로 대신 채우려고 하는데, 주인공 중에서도 2차 당시 기록이 거의 없는 강감찬이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리해서라도 그쪽에 활약을 몰아주다 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폐해가 발생하는 셈이다.] 다만 핍진성은 아쉽긴 해도, 작품 흐름적으로는 '''2차 전쟁에서 강감찬을 적절하게 임시 퇴장시키려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본작에서 강감찬은 2차 전쟁에서 신출귀몰하게 다방면적인 활약을 이어갔는데, 만약 강감찬이 여전히 멀쩡하다면 이후에 더 나와서 활약해도 문제고, 안 나와서 대뜸 증발해도 문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주인공 보정을 넣어서라도 거란에게 잡혀 고문당한 후유증으로 무대에서 잠시 탈락한다는 전개를 넣어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3회 후반에서부터 15회까지 강감찬은 거의 나오지도 않았으니, 2차에서 오리지널 활약을 많이 분배받은 강감찬을 적당한 때 잠시 퇴장시키고, 몽진 중인 현종과 거란군을 격퇴하고 포로들을 구하면서 장렬하게 전사한 양규 쪽에 집중하려는 빌드업을 벌였다. 결국 양규는 16회 초반부에 활약이 집중되면서 전사한 채 마무리되었고, 이를 이어받아 강감찬은 현종이 몽진에서 복귀한 이후 개경에서 그 모습이 나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 기타 반응 == 각 화가 일정한 분량이 아니라서 1~4회는 60여분 정도의 안정된 분량이었지만 5회부터는 50분 이하까지 떨어지는 등 분량이 약간 일정하지 않은 면이 있고 중간 광고 투입으로 인해 분위기나 긴장감이 갑자기 꺼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느낌도 있다.[* 예를 들어 6회에서는 1차 흥화진 전투로 피를 말리는 전투가 벌어지는데 중간에 이걸 딱 끊고 갑자기 [[김동준(제국의아이들)|성상 폐하]]께서 등장해서 [[김영옥(1938)|할미넴]]이랑 [[메이킨|변비약]] 광고를 진행해 많은 이들이 뿜었다. 거기다 종료 후에는 우측 배너광고로 [[최수종|강감찬]]의 상조회사 광고도 매회 나온다.] 특히 5회부터는 대부분의 회차[* 54분 분량의 8회와 56분 분량의 16회 제외.]가 50분 이하라서 생각보다 일찍 끝나 놀랐다는 얘기가 있었다.[* 사실 2012년 대왕의 꿈이 방영될 때부터 KBS 대하드라마는 극 초반부 1~4회 사이 정도만 1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진행하고 이후 회차의 분량은 대부분 50분 이하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2TV로 방영되기 때문에 전후반+중간 광고까지 포함해야 1시간 정도 진행된다.] 5회 마지막 장면에서 거란군의 투석기들이 불이 붙은 수많은 화염구를 흥화진 성에 던지고 이에 덮쳐지는 양규가 이걸 멍하니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딱히 어떤 역사 장면을 오마주한 게 아니라 [[토탈 워: 삼국]] DLC [[팔왕의 난]] 트레일러에서 [[사마영]]과 [[사마옹]]이 [[사마예]]와 공성전에서 대결하는 장면 중 성에 던져진 화염이 자신에게 떨어지자 사마예가 이를 바라보는 장면을 오마주한 것으로 추측된다는 글들이 있었다.[[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3895431|#]] 두 장면 모두 [[창작물의 반영 오류|당시에는 없었던 회회포]]를 사용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무게추식 트레뷰셋 투석기는 [[11세기]]를 다루는 본작으로부터 한 세기 후인 [[12세기]]에 서양과 중동에서부터 점차적으로 무게추를 사용한 무게추식 투석기, 즉 우리가 아는 형태의 트레뷰셋 투석기가 등장했다.] 프롤로그 장면 및 16회 [[제2차 여요전쟁]] 막바지를 제외한 해설의 부재 역시 특이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있다. 그나마 이를 강감찬의 말로 해결하거나 당시 백성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상황을 조명하였기에 너무 다큐멘터리 같지 않아서 좋다는 평도 있지만, 그간 대하드라마에 비해 이질적이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듯하다. 아울러 전근대시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초반부에는 대표적으로 전쟁소식을 황성문 앞에서, 동요하는 개경백성을 다리에서 막아서 직접 전하는 황제의 모습이나 황제의 조서를 관리나 서생같이 글을 알법한 계층이 아닌 남루한 차림의 백성이 대독(代讀)하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 등이 있다. 감성적이면서도 웅장한 느낌의 오프닝 음악을 비롯한 OST의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뛰어나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고려 거란 전쟁, version=1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