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1 [[系]][[譜]][[學]] / Genealogy}}} [[족보]]와 [[가문]], [[씨족]], [[혈통]]을 연구, 보존, 정리하는 학문으로 줄여서 보학(譜學)이라 하기도 한다. == 설명 == 주요 가문들의 혈연과 족보를 연구하고 정리하는 학문으로 과거 [[양반]], [[귀족]]들의 필수덕목이자 주요 학문으로 여겨졌다. 어느 가문의 누구인지, 어느 가문과 어떤 관계인지 이런 관계와 내력을 자세히 알고 있어야 [[혼인]]이라던가 정치적 관계를 맺기 쉬웠기 때문이다. 특히 족보가 크게 발전하였던 [[조선시대]]에는 가문배경에 관한 요건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였고, 이것은 이른바 양반의 자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자기 집안 뿐만 아니라 타집안의 계보도 해박하게 알아두는게 중요했고 이런 것이 [[사대부]]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따라서 '보학에 밝다' 라는 칭찬은 큰 가치를 가진 중요한 칭찬이었다. 근세까지 그런 칭찬은 중요했는데 황실도 예외는 아니어서 [[순종황제]]가 보학에 밝은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런 계보학은 한국이나 동양 뿐만 아니라 서양에도 비슷한 것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중세]]에는 계보에 따른 각 귀족들의 상징인 [[문장(그림)|문장]]의 관리를 시작으로 가문 계보를 추적하고 귀족 자격을 심사하던 문장관이 있었고, 이들은 전쟁터에서 각 가문의 문장을 보고 분석하여 [[전령]]이나 일종의 심판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깃발]]이나 [[방패]]에 새겨진 가문의 문장을 보고 어떤 가문인지 바로 알아 맞춘다든가 어떤 귀족이 참전했으며 그들의 계급이나 혈통이 어떤지 추론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 교전세력의 문장관이 함께 모여 전장을 관찰하면서 승패를 가리는 역할을 하였다.[* 물론 이렇게 중립적으로 승패를 판정하는 행위는 같은 종교와 문화를 공유할 때 한정이다. [[백년전쟁]]에서는 [[잉글랜드 왕국]]과 [[프랑스 왕국]] 문장관들이 이러한 일을 하였던 반면, 이교도와의 싸움이었던 [[빈 공방전]] 같은 상황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듯 중세 시절의 외교사절 겸 고위층 [[센서스|신분조사원]] 등의 역할을 맡아서 나름 중요한 직책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문장관 지위 중 하나인 [[해럴드]](harold; herald)가 아예 [[성씨]]나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동양권에서도 군주나 장군들이 친정에 나섰을 때 적의 깃발이나 문장을 보고 적이 어디 소속의 어떤 장수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군사 등 신하들을 데리고 다녔다. 또한, 이러한 전통으로부터 [[문장학]](Heraldry)이라는 학문이 탄생하였는데, 특히 무엇보다도 중요한 [[정략결혼]]으로 인한 혼인 동맹과 [[왕위 계승의 법칙]], 영지 [[상속]] 문제에 있어 계보를 따지는 것은 가문을 넘어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 했기에 이러한 군주국들이 여럿 남아있던 근대까지는 정치적으로도 극히 중요한 학문이었다. 문장학은 이들 군주국 대부분이 [[공화국]]이나 [[입헌군주국]]으로 전환된 오늘날에도 연구가 이어지고 있으며, [[사학]]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미학]] 차원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그밖에 미국 등 문장과는 관련이 없는 곳에서도 향토사나 사회사 등 각종 사학 연구 차원에서 계보학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유럽권에서도 꼭 문장과 결부하지 않더라도 사학 연구 차원에서 가계를 추적하고 연구한다. [[분류:학문]][[분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