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신라의 금제유물]][[분류:전쟁기념관 소장품]][[분류:경주시의 문화재]][[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분류:동궁과 월지]] [[파일:경주 월지 금동 발걸이1.jpg]]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동궁과 월지|월지]](月池)에서 발견된 7세기~8세기 경 [[통일신라]]시대 금동 발걸이. 현재 [[전쟁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경주 월지 금동 발걸이2.png]]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4&num=177909|사진 출처 : 유용원의 군사세계 - 전쟁기념관 특집 5탄 -삼국시대-]] [[파일:경주 월지 금동 발걸이3.png]] [[http://www.weekon.co.kr/popup/copy2clipboard?PID=A20121189015|사진 출처]] 과거 [[안압지]]라고 불리던, [[경주시]] [[동궁과 월지|월지]](月池)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금동 발걸이, 즉 [[등자]]이다. 연구 결과 제작 연대는 7세기~8세기 무렵으로 확인되었다. 최초 발굴조사 당시 경주 월지에서는 무려 1만 5천여 점이 넘는 신라시대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불상]], [[숟가락]], 청동거울, [[벼루]], [[송곳]], [[가위]], 건물의 목재 조각, 심지어 유람용 배까지 별의별 유물들이 다 나왔다. 이후 지속적으로 월지를 발굴하여 2008년 기준 금속공예품 1152점, 목제품 920점, 철제품 603점, 와전류 2만 4353점, 토기류 3388점, 기타 2171점 등, 총 3만 2587점에 이르는 신라시대 유물들이 추가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http://blog.daum.net/tasofhso/15359030|#]] 추가로 발견된 월지의 주요 유물로는 농삿일이나 고기잡이에 사용되는 가래, 보습, 쇠스랑, 호미, 낫, 작살 등의 농어구(농사나 고기 잡을 때 사용되는 도구), 투구, 철검 칼, 창 화살촉 등의 무기, 그리고 발걸이들이 있다. 그중에서 금동 말안장, 은제 말방울, 철제 말머리가리개 및 말재갈 등과 함께 이 금동 발걸이도 함께 출토되었고, 유물 몇 점은 전쟁기념관으로 이관되었다. [[파일:경주 월지 금동 발걸이4.jpg]] 당시 함께 발견된 또 다른 (철제)발걸이의 모습.[[http://blog.daum.net/tasofhso/15359030|사진 출처 : 안압지 출토 유물]] [[파일:경주 월지 금동 발걸이5.png]] 당시 함께 발견된 유물들과 같이 전시된 모습.[[http://blog.daum.net/vlfrl786/461992|사진 출처 : 용산 전쟁기념관 방문기 (4)]] 이 발걸이는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당시 신라의 [[기마병]]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월지에서 함께 발견된 [[경주 월지 금동초심지가위]]와 동일한 양식의 당초문이 등자 표면 전체에 새겨져 있어 유물의 화려함을 더욱 돋보이고 있다. 이 발걸이는 [[말(동물)|말]]이 질주할 때 [[검]] 및 [[활]]을 사용하면서도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했다.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금동 발걸이]], [[황해도 평산 신라 발걸이]], [[춘천 근화동 은입사 발걸이]] 등 다른 [[등자]] 유물들과 함께 신라인들의 기마 문화 및 공예술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