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일:정부상징.svg|width=30&height=30]] '''[[대한민국의 보물/601~800호|{{{#fff 대한민국의 보물}}}]]''' || || 634호 ||<|2> ← || '''635호''' ||<|2> → || 636호 || ||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 || '''경주 계림로 보검''' || [[도기 서수형 명기]]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cha.go.kr/1621316.jpg|width=500%]]}}} || {{{+1 慶州 鷄林路 寶劍}}} [목차] [clearfix]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iPLhGBjk9r0)]}}} || || '''문화재청 공식 유튜브''' || [[유럽]] 혹은 [[중동]] 지역에서 만들어진 5~6세기 [[신라]]시대의 [[검]]. [[대한민국의 보물|보물]] 제635호. [[문화재청]]이 정한 정식 명칭은 '경주 계림로 보검'이지만 초창기 언론과 TV 보도 탓에 '신라 황금보검'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졌다. 철제 칼날과 나무 [[칼집]]은 15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삭아서 거의 없어졌지만, [[황금]], [[가넷]], [[마노]] 등으로 만들어진 [[보석]] 장식부는 온전히 남았다. 전체 길이 36.8 cm, 최대 너비(폭) 9.05 cm.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recommend/view?relicRecommendId=254449|#]] [[1973년]] 이름대로 [[미추왕]]릉 인근 [[계림로(경주)|계림로]] 도로 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발굴 조사를 실시했을 때 [[적석목곽묘]]인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경주박물관 전시실에 [[터치 스크린]]이 설치되어 [[현미경]] 수준으로 보석과 세부 장식들을 확대하여 볼 수 있다. == 특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황금보검.jpg|width=200%]]}}} || 복원한 모습을 가정한 복제품. 칼집과 손잡이 부위는 목재고, 칼날은 평범한 [[단검]](短劍) 날 형태이다. [[삼국시대]]의 흔한 [[환두대도]]와 그 형태와 문양이 판이하게 다른데, [[한반도]]나 [[동아시아]]가 아닌 [[서역]]에서 제작한 검이 확실해서 주목을 받았다. 검을 장식한 보석은 [[동유럽]] 원산 [[석류석]]이고, [[트리스켈리온|소용돌이 문양]] 또한 [[불가리아]]에서 출토된 [[트라키아]] 시대 유물과 흡사했다. [[일본]]의 고대 유리(琉璃) 전문가 요시미즈 쓰네오(由水常雄, 1936~)는 계림로의 황금보검을 제작한 금 세공 기술자는 [[고대 로마|로마]] 문화에 정통한 사람이고, 주문자는 [[켈트족]] 출신 트라키아 왕이라고 보았다. 함께 출토된 [[사자]] 머리 버클은 기원전 4세기부터 서기 5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에서 쓰이던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 버클은 원래 황금보검을 차기 위해 [[허리띠]]에 달았으리라 추정한다.[[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23/2009102301165.html|링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ail-Jewel-sword_2.jpg]]}}} || [[카자흐스탄]] 보로보에(Burabay) 지역에서 비슷하게 생긴 단검의 일부가 발견되어 현재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 중이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쿠처시|쿠처]]에 있는 키질 석굴 제69굴 입구 천장의 [[벽화]]에도 디자인이 거의 비슷한 단검이 그려져 있다. 이 두 지역은 보검이 제작되었다고 추정하는 동유럽권과 신라의 중간, [[실크로드]] 선상에 있기 때문에 보검의 유입 경로를 한층 입증하였다. 그래서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이 물건이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문화와 관련 있지 않느냐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이는 신라를 [[흉노족 신라왕족설|유목민 문화와 연관 짓는 것]]이 아니라, 유물 제작 지역이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문화권과 연관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학술적으로도 유목민 문화와 [[한민족]] 문화 간 상관관계보다는 당대 육상, 해상 실크로드에 초점을 맞추어 신라 또한 실크로드 교역로에 포함되었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증거로 여긴다. [[대릉원]] [[황남대총]] 남분과 북분 및 [[신라왕릉]]에서 출토된 [[유리]]로 제작된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유리봉수병(琉璃鳳首甁)]], 보물 제624호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등과 함께 신라가 삼국통일 이전부터 일찍이 [[실크로드]] 혹은 [[아라비아]] 상인들의 바닷길을 통해 머나먼 서역과도 주기적으로 교역하였음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6세기 이후부터 [[괘릉]]이나 [[흥덕왕릉]] 등에 있는 [[경주 원성왕릉 석상 및 석주 일괄|호인상들]], 이란에 전해지는 [[쿠시나메]] 전설 등은 서역과 신라 간 접촉이 짧게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다거나 단순히 유물만 왔다갔다하는 수준이 아님을 방증하기도 한다. 만약 이 보물이 서양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확정된다면 현재 대한민국이 지정한 보물 중에서는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손기정]] 옹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받은 부상이다.] 이래 두 번째로 서양에서 제작한 보물이 될 것이며, 외국에서 제작한 보물로서는 4번째가 된다. == 보물 제635호 == >경주 계림로 보검(慶州 鷄林路 寶劍)은 경주 [[황남동]]에 있는 [[미추왕릉]] 지구에서 발견된 길이 36㎝의 칼이다. 1973년 계림로 공사 때 노출된 유물의 하나로, 철제 칼집과 칼은 썩어 없어져 버리고 금으로 된 장식만이 남아 있다. 시신의 허리 부분에서 발견되었는데, 자루의 끝부분이 골무형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 붉은 마노를 박았다. 칼집에 해당되는 부분 위쪽에 납작한 판에는 태극무늬 같은 둥근무늬를 넣었다. > >삼국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고리자루칼(환두대도)과 그 형태와 문양이 다른데, 이러한 형태의 단검은 유럽에서 중동지방에 걸쳐 발견될 뿐 동양에서는 발견되는 일이 없어, 동·서양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06350000,37&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경주 계림로 보검 (慶州 鷄林路 寶劍)]] == 기타 == * 해당 보검이 발견된 계림로 14호 무덤의 주인은 유골을 분석한 결과 두 명의 신라 왕족 남성이다. * [[KBS 1TV]]의 교양 프로그램 [[천상의 컬렉션]] 첫 방영분인 파일럿 1회에 대표 [[문화재]]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경주_계림로_보검|한국어 위키백과 : 경주 계림로 보검]]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1071&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주 계림로 보검]]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15531&cid=51293&categoryId=51293|e뮤지엄 : 경주 계림로 보검]]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782212&cid=62093&categoryId=62093|실크로드 사전 : 계림로단검]]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70382&cid=40942&categoryId=37713|두산백과 : 경주 계림로 보검]]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신라 황금보검, version=12)][[분류:대한민국의 보물]][[분류:도검]][[분류:신라의 금제유물]][[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분류:경주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