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경남대학교]] [include(틀:상위 문서, top1=경남대학교)] [include(틀:경남대학교)] [목차] == 개요 == [[경남대학교]]의 역사, 주요연혁을 다룬 문서이다. == 상세 == 1946년 '[[국민대학교|국민대학관]]'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1952년에 '해인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였고 1956년에 마산시 완월동으로 이전했으며 1961년 마산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했고 1971년에 경남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73년에 현 월영동 부지로 이전하였다. 1982년에 [[종합대학교]]로 승격하여 '경남대학교'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청와대]] 경호실장을 역임했던 [[박종규]]가 오너였고, 2019년 현재 11대 총장은 그의 친동생인 [[박재규(1944)|박재규]] 총장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역임.] 참고로 [[서울특별시]]에 있는 [[국민대학교]]와 창학 뿌리가 같다. 국민대학관이 정규대학으로 승격되기 위해서는 재단이 필요했고, 조선[[불교]] 총무부장이었던 [[최범술]]이 해인사 사찰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나서면서 1948년 최범술을 재단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그런데 최범술 재단이 국민대학의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 초대 학장이었던 [[신익희]]를 임의로 해고하자,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반발하여 '학장 유임운동'을 벌여 재단을 축출한다. 해공 [[신익희]] 학장의 국민대학에서 떨어져 나간 최범술 재단은 마포에 똑같이 '국민대학관' 간판을 달고 학교를 운영하다가 1952년 '해인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변경, 현재의 경남대학교가 되었다.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5018|관련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1979년 10.26 사태의 기폭제가 된 [[부마항쟁]](10.16-20)에서 마산 항쟁의 진원지로 민주화운동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10월 18일 경남대학교 학생 1,000여 명이 기동 경찰 300여 명과 대치하였고, 이후 장소를 옮겨 3·15 의거탑에서 시민이 합세하여 1,000여 명이 스크럼을 짜고 유신 철폐와 독재 타도 및 언론 자유를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항쟁이 시작되었다. 1946년 9월 국민대학관(國民大學館)[* 그렇기 때문에 [[국민대학교]]와 창학 뿌리가 같다.]으로 발족하여 2023년 기준 개교 77주년을 맞이하였다. 1982년 3월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이는 당시 [[경상남도]] 소속이었던 [[울산광역시]] 소재 [[울산대학교]]에 비해 3년이나 앞선 시기다.][* 여러모로 [[울산대학교]]와 비슷하다. 울산대학교는 [[현대그룹]] 후광을 업고 재계의 지원을 받고, 경남대학교는 정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역사를 시작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경남대학교, version=425, paragraph=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