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國原從功臣錄券 [목차] == 개요 == [[조선]] 태조 [[이성계]]가 1392년부터 1395년까지 조선 창건에 기여한 원종공신(原從功臣)들에게 공신의 봉작을 내리며 하사한 녹권. 조선건국의 [[공신]]은 개국 정공신이 58명, 보조적인 역할을 한 원종공신이 1,698명이다. 조선 태조의 건국이유와 그 주역들의 공적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녹권에는 공신에 책봉된 개인의 신상기록과 공적 및 포상 내역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녹권의 발급관서와 본직(本職), 겸직(兼職), 작호(爵號), 성명, 공신책봉 추천기관, 포상에 대한 국왕의 하교 등이 적혀 있다. 그 외 공신 책봉자에게 지급된 토지와 노비의 액수도 기록되어 있다. 58명의 정공신 중에선 이화 개국공신녹권(李和 開國功臣錄券) 1개가 남아있고 원종공신들의 녹권은 7개가 남아있다. == 목록 == === [[의안대군 이화|이화]] 개국공신녹권 === [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232호}}}]]''' || ||<-2> {{{#fff {{{+1 '''이화 개국공신녹권'''}}}[br]{{{-1 李和 開國功臣錄券}}}}}}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전라북도 정읍시 연지4길 12(연지동),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시]] || || '''{{{#fff 분류}}}''' ||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 || '''{{{#fff 수량/면적}}}''' || 1축 || || '''{{{#fff 지정연도}}}''' || 1986년 10월 15일 || || '''{{{#fff 제작시기}}}''' || [[조선]] [[태조(조선)|태조]] 1년(1392) || [[파일:국보232호이화개국공신녹권.jpg|width=565]] 李和 開國功臣錄券.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2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안대군 이화]]에게 내려진 공신녹권으로, 개국원종공신이 아닌 개국공신의 녹권으로는 국내 최고(最古)본이자 현존하는 유일본이다. 개인소장 문화재이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이화_개국공신녹권|한국어 위키백과 : 이화 개국공신녹권]]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1001&cid=46622&categoryId=46622|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이화 개국공신녹권]]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33964&cid=40942&categoryId=33383|두산백과 : 의안백 이화 개국공신녹권]] ==== 국보 제232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2320000,35&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이화 개국공신녹권 (李和 開國功臣錄券)]] >공신녹권은 나라에 공이 있는 인물에게 공신으로 임명하는 증서로, 개국공신록권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는 데 공헌한 신하들에게 내린 것이다. 이 문서는 조선 태조 1년(1392)에 조선개국에 공을 세운 이화에게 내린 녹권이다. 이성계의 아버지 환조(桓祖)는 서자 2명이 있었는데 그 중 둘째 아들이 바로 이화이다. > >크기를 보면 세로 35.3㎝의 닥나무종이 9장을 붙여 전체 길이가 604.9㎝에 이르며, 본문 앞 여백의 바깥쪽을 장식하고 보호하기 위해 33㎝의 명주와 안쪽을 보강한 명주는 부식되어 없어진 두루마리이다. > >내용을 보면 녹권을 받는 사람의 성명에 이어 공신들의 공신사례, 공신 및 그 부모, 처자 등에 대한 표상과 특전이 묵서로 기록되어 있다. 녹권의 첫머리와 접지 부분에 ‘이조지인’이라고 도장을 찍었다. > >이 문서는 이화의 후손이 없어 그의 이복형인 이원계의 가문에 의해 보관되어 오고 있다. 조선왕조에서는 처음으로 발급된 녹권이며, 개국공신녹권으로는 최초로 발견된 것으로, 조선 태조의 건국이유와 그 주역들의 공적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 === [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69호}}}]]''' || ||<-2> {{{#fff {{{+1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br]{{{-1 沈之伯 開國原從功臣錄券}}}}}}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부산광역시]] [[서구(부산)|서구]] || || '''{{{#fff 분류}}}''' ||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 || '''{{{#fff 수량/면적}}}''' || 1축 || || '''{{{#fff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 '''{{{#fff 제작시기}}}''' || [[조선]] [[태조(조선)|태조]] 6년(1397) || [[파일:국보69호심지백개국원종공신녹권.jpg|width=565]] 국보 제69호. 1397년 10월 이성계가 하사했다.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심지백_개국원종공신녹권|한국어 위키백과 :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5795&cid=46622&categoryId=46622|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15511&cid=55783&categoryId=56440|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217&cid=42955&categoryId=42955|한국 미의 재발견 - 과학문화 : 심지백개국원종공신녹권]]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57555&cid=40942&categoryId=35104|두산백과 : 심지백개국원종공신녹권]] ==== 국보 제69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690000,21&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 (沈之伯 開國原從功臣錄券)]] >조선 태조 6년(1397) 10월에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왕의 명령을 받아 심지백(沈之伯)에게 내린 문서로, 공신임을 입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크기는 가로 140㎝, 세로 30.5㎝이며, 원래는 함경남도 단천군 파도면 심씨 집안에서 물려 내려오던 것이다. >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제도는 조선시대에 개국공신을 늘리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새로운 포상제도로, 1392년부터 1397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1,400여 명에게 봉해졌다. 심지백이 녹권을 받을 때에도 74명이 함께 받았는데, 이때 그들에게 내린 포상으로는 각기 밭 15결(結)을 내렸고, 각 공신의 부모와 처에게는 땅을 주고 벼슬을 내렸으며, 자손에게는 벼슬을 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실록에도 빠져있어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문서에 의하여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 >이 문서는 조선 전기의 문서로 이두문(吏讀文)이 많이 사용되어 그 문체와 내용이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되며, 목활자를 이용하여 찍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성이 엿보인다. 또한 조선 전기의 목활자 인쇄물로서 상태가 완전하고 남한에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이 문서가 으뜸으로 손꼽혀지는데, 두루마리로 되어있는 점에서도 조선 전기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글자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글자배열이 고르지 않는 등 인쇄가 정교하지는 않으나, 현존하는 목활자 인쇄물이라는 점에서 한국 활자 역사상 매우 귀중한 인쇄자료가 된다. === 이원길 개국원종공신녹권 === [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250호}}}]]''' || ||<-2> {{{#fff {{{+1 '''이원길 개국원종공신녹권'''}}}[br]{{{-1 李原吉 開國原從功臣錄券}}}}}}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9길 10-10(충정로2가),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 '''{{{#fff 분류}}}''' ||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 || '''{{{#fff 수량/면적}}}''' || 1축 || || '''{{{#fff 지정연도}}}''' || 1989년 8월 1일 || || '''{{{#fff 제작시기}}}''' || [[조선]] [[태조(조선)|태조]] 4년(1395) || [[파일:국보250호이원길개국원종공신녹권.jpg|width=565]] 국보 제250호. 1395년 9월 이성계가 하사했다. 재단법인 아단문고에서 소장하고 있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이원길_개국원종공신녹권|한국어 위키백과 : 이원길 개국원종공신녹권]]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5796&cid=46622&categoryId=46622|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이원길 개국원종공신녹권]]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57556&cid=40942&categoryId=33498|두산백과 : 이원길 개국원종공신녹권]] ==== 국보 제250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2500000,11&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이원길 개국원종공신녹권 (李原吉 開國原從功臣錄券)]] >공신녹권은 나라에 공이 있는 인물에게 공신으로 임명하는 증서로, 개국공신녹권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는 데 공헌한 신하들에게 내린 것이다. 개국원종공신 제도는 조선시대에 개국공신을 늘리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새로운 포상제도로, 1392년부터 1397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1,400여 명이 이 제도로 공신에 봉해졌다. > >이 녹권은 조선 태조 4년(1395) 나라를 세우는 데 공을 세운 이원길에게 발급된 원종공신록권이다. 크기는 가로 372㎝, 세로 30.4㎝이며, 종이질은 닥나무종이이고, 총 행수는 243행, 일행의 자수는 대체로 9자에서 12자로 배분되어 있다. > >서두에 ‘공신도감(功臣都監)’이란 글에서 시작되는 이 문서는 말미에 공신도감의 임원, 직명이 적힌 23행은 목판, 그외 부분은 모두 목활자로 인쇄되어 있다. 모두 공신도감에서 발급한 것으로, 이 문서에 나오는 인명은 총 695명이 된다. > >이 문서는 조선 전기 개국공신에 대한 대우 및 국가성립에 영향을 미친 인물에 대한 연구, 공신록의 양식과 관련하여 중요한 가치를 지닌 역사적 자료로 평가된다. === 김회련 개국원종공신녹권(金懷鍊 開國原從功臣錄券) === [[파일:김회련 개국원종공신녹권(金懷鍊 開國原從功臣錄券).jpg]]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4370000,35&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D%9A%8C%EB%A0%A8_%EA%B0%9C%EA%B5%AD%EC%9B%90%EC%A2%85%EA%B3%B5%EC%8B%A0%EB%85%B9%EA%B6%8C|한국어 위키백과]] 보물 제 437호. 1395년 9월 이성계가 하사했다. === 장관 개국원종공신녹권(張寬 開國原從功臣錄券)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7260000,35&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2710&cid=46622&categoryId=46622|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보물 제 726호. 1395년 9월 이성계가 하사했다. === 김천리 개국원종공신녹권(金天理開國原從功臣錄卷)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10760000,11&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B2%9C%EB%A6%AC_%EA%B0%9C%EA%B5%AD%EC%9B%90%EC%A2%85%EA%B3%B5%EC%8B%A0%EB%85%B9%EA%B6%8C|한국어 위키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3677&cid=46622&categoryId=46622|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보물 제 1076호. 1395년 이성계가 하사했다. === 진충귀 개국원종공신녹권(陳忠貴開國原從功臣錄券) === [[파일:진충귀 조선개국 원종공신 녹권.jpg]]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11600000,11&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s://ko.wikipedia.org/wiki/%EC%A7%84%EC%B6%A9%EA%B7%80_%EA%B0%9C%EA%B5%AD%EC%9B%90%EC%A2%85%EA%B3%B5%EC%8B%A0%EB%85%B9%EA%B6%8C|한국어 위키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2300&cid=46622&categoryId=46622|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보물 제 1160호. 1395년 이성계가 하사했다. === 최유련 개국원종공신녹권(崔有漣開國原從功臣錄券)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12820000,11&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9C%A0%EB%A0%A8_%EA%B0%9C%EA%B5%AD%EC%9B%90%EC%A2%85%EA%B3%B5%EC%8B%A0%EB%85%B9%EA%B6%8C|한국어 위키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9288&cid=46622&categoryId=46622|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보물 제 1282호. 1395년 이성계가 하사했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대한민국의 보물]][[분류:조선의 고문서]][[분류:전주시의 문화재]][[분류:부산광역시의 문화재]][[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