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송사)]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e8b57 0%, #2e8b57 0%, #2e8b57 80%, #2e8b57)" '''{{{#ece5b6 {{{+1 남송의 무장[br]민족영웅[br]{{{+1 姜才 | 강재}}}}}}}}}'''}}} || || '''{{{#ece5b6 성}}}''' ||강(姜)|| || '''{{{#ece5b6 이름}}}''' ||재(才) || || '''{{{#ece5b6 생몰연대}}}''' ||생년 미상 ~ 1276년 || [목차] == 개요 == 姜才, ?~1276 [[남송]] 말기의 무장이자 민족영웅. == 생애 == 생년 미상으로, 이전 하북 지역으로 끌려갔으나 뒤에 탈출하여 양회 전선에서 종군한다. 이후 1275년 [[정가주 전투]]에서 [[바얀]]이 이끄는 군대가 송군을 신무기로 혼란시키자, 군을 수습하고 맞섰으나 [[손호신]]이 애첩을 데리고 도주하고 [[하귀]]가 싸우지도 않고 도주하는 바람에 원군을 저지하는 데 실패하고, 그도 양주로 도주하게 된다. 1276년 정월, 남송 정부가 원에 항복하자 공제와 사태후를 대도로 압송한다. 5월, [[육수부]]·[[장세걸]] 등은 복주에서 조하를 옹립하고, 연호를 경염(景炎)이라 하였고, 강재를 보강군승선사(保康軍承宣使)로 임명한다. [[아술|아쥬]]가 사태후의 조서를 가지고 양주로 가서 항복을 권유하자 아랑곳하지 않고 공제가 과주를 거쳐 북쪽으로 압송된다는 걸 안 뒤 죽음을 무릅쓰고 구출하려 했다. 군대를 이끌고 곧바로 과주를 쳐서 피투성이가 되어 적을 무수히 무수히 죽였다. 원군은 상황이 심상치 않자 급히 공제를 끼고 북쪽으로 도망쳤다. [[아술|아쥬]]는 강재에게 투항을 권하나 강재는 포위망을 뚫고 양주로 갔다. 양주가 수개월 동안 포위되고 군량과 마초가 바닥나는 등 불리한 상황이 지속되자 수차례 [[원나라]]의 군대를 막아낸다. 1276년 7월, 단종의 명을 받아 이정지와 함께 7천의 군사를 이끌고 복건 지역으로 남하하였고, [[아술|아쥬]]의 추격을 받았다. 태주에 이르자 원군이 사방을 에워싸고 사자로 하여금 항복을 권하나 이를 거부한다. 원군이 성을 공격하던 와중 부장 손귀, 호회효와 주환이 적에게 투항하고 원군을 맞이하여 [[이정지]], 강재를 원군에게 바쳤다. 아쥬[* [[수부타이]]의 손자이자, [[우량카다이]]의 아들]는 그에게 투항을 권하나, 강재는 이를 거절한다. >장군은 탓하지 마시오. 항복하지 않은 자는 나로다! 원군에게 사로잡혀 처형되기 직전, [[하귀]][* 남송의 항몽명장이나, 이후에는 절개를 지키지 않고 원에 투항했다. 그 이유로 《[[송사]]》가 편찬될 때, 별도의 열전이 편찬되지 않았다.][* 정가주에서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회서로 도주한 뒤, 암암리에 원에 투항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남송 정부가 투항한 해인 1276년 회서 지역을 바치고 원에 투항했다.]가 그에게 다가오면서, 이를 갈며 말했다. >나를 보면 차라리 죽는 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그 이후 [[이정지]]와 함께 처형당한다. 양주의 군민들은 그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분류:송나라/인물]] [[분류: 127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