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사성어|{{{#white 고사성어}}}]]''' || || {{{+5 '''[[強]]'''}}} || {{{+5 '''[[弩]]'''}}} || {{{+5 '''[[之]]'''}}} || {{{+5 '''[[末]]'''}}} || || 강할 강 || 쇠뇌 노 || 갈 지 || 끝 말 || [목차] == 겉 뜻 == 아무리 강한 장력의 [[쇠뇌]]에서 발사한 [[화살]]이라도 [[사정거리]] 끝에 이르러서는 [[비단]] [[천]]에조차 구멍을 [[공세종말점|뚫을 수 없다]]는 의미. == 속 뜻 == 아무리 강한 힘도 시간이 흐르면 쇠퇴하기 마련이다. 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날뛰다 실패할 때의 반면교사로도 사용할 수 있다. == 출전 == 원전은 [[사마천]]의 [[사기(역사책)|사기]]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한장유란 어사대부 한안국(韓安國)을 말한다. 이 사람과 관련된 고사로 [[사회부연]]과 [[수서양단]]이 있다.]이다. >[[고제(전한)|한고제]] 유방이 [[흉노]]를 정벌하러 갔다 [[역관광]]당하고 [[진평]]의 계책으로 간신히 살아나온 뒤부터 [[전한]]에서는 [[을|흉노와 화친하고 공물을 바쳐]]왔다. 그래도 때로는 강경한 [[선우]]가 나타나 지속적으로 국경 분쟁이 일어났다. [[무제(전한)|한무제]] 치세에 들어 이 상황을 타파하고자, 흉노 토벌계획을 수립하고 대신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열었는데, 이에 한안국이 화친을 주장하면서 말했다. > >"흉노를 공격하려면 [[공세종말점|수천 리를 행군해야 하는데, 강한 군대라 해도 그렇게 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무거운 쇠뇌에서 쏜 화살이라도 [[유효 사거리|끝에 가서는 비단 하나를 뚫지 못하는 이치입니다(強弩之末力不能入魯縞)]]."[* 여기서 '비단'의 원문은 '노호(魯縞)'인데, 노호는 [[노나라]]의 특산품이었던 얇은 비단을 뜻한다.] > >한무제는 이 말을 무시하고 왕회(王恢)가 입안한 흉노 군대를 유인해낸 후 복병으로 치자는 계획에 따라 30만이라는 무지막지한 병력을 동원해 흉노를 정벌하러 갔다. 반대는 했지만 이 30만의 총지휘관도 한안국이었다. 그러나 흉노의 [[군신선우]]는 작전을 한눈에 꿰뚫었고, 계획이 통째로 수포로 돌아갔다. 일으킨 병력이 병력이었던 만큼 비용과 손해가 막심했고, 왕회는 주위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다. == 기타 == 여기까지라면 그냥 좀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신하가 옳은 소리 했구나 싶지만 사실 뒷이야기가 있다. 한무제는 [[정대만|포기를 모르는 남자]]라서 3~4년 뒤[* [[한서]]에 따르면 3년, [[사기(역사책)|사기]]에 따르면 4년 뒤.]에 [[이광]]과 [[위청]]을 포함한 군대로 흉노를 쳤고,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이광, 위청 및 [[곽거병]]이 흉노를 박살내버린다. --이놈은 쇠뇌가 아니라 대물저격총에서 쐈나보다-- 흉노는 무제 대의 공격을 일단 막아내 나라를 지키긴 했지만 하도 피해를 많이 입어 [[선제(전한)|한선제]] 때 동서로 나뉘고 만다. 강노지말 그런 거 없고 [[의지]]의 승리… 긴 했지만…. 그러나 이 정벌로 [[피로스의 승리|전한도 타격을 엄청나게 입어서]] [[소금]]과 [[철(원소)|철]]을 국가가 전매하는 등 재정 확충을 위해 백성들 주머니를 약탈해야 했고, 무제 사후 100년을 버티지 못하고 [[왕망]]에게 --왕--망한다. 한안국의 말도 충분히 일리있던 이야기였던 셈. [[제갈량]]도 위와 싸울지 말지의 문제로 고민하던 [[손권]]에게 이 고사를 들어가며 응전할 것을 종용했다. 참고로 [[사마천]]이 [[내가 고자라니|고자가 된]] 사연 역시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겉뜻은 원거리 무기의 [[유효 사거리]]를 언급하고 있지만 속뜻은 군사학에서의 [[공세종말점]]을 이야기 하는 부분도 흥미로운 부분. [[분류:고사성어]][[분류:제갈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