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가톨릭 교황)] ||<-5><#806600> [[교황|[[파일:교황 문장.svg|height=40]] '''{{{#FFF 가톨릭 교회의 교황}}}''']] || ||<-5> [[파일:162_callisto_II.png|height=125]] || || 제161대 [[젤라시오 2세]] || → ||<#806600> '''{{{#FFF 제162대 갈리스토 2세}}}''' || → || 제163대 [[호노리오 2세]]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9A100, #EFBC00 20%, #EFBC00 80%, #D9A100);" '''{{{#670000 제162대 교황[br]{{{+1 갈리스토 2세}}}[br]Callistus II}}}'''}}}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갈리스토2세.jpg|width=100%]]}}}|| || '''교황명''' ||갈리스토 2세 (Callistus II) || || '''본명''' ||기 드부르고뉴 (Gui de Bourgogne)[* '드부르고뉴'는 성씨가 아니다. 알려진 이름은 '기(Gui)' 하나뿐이며 '[[부르고뉴]] 출신의 기'라는 뜻이다.] || ||<|2> '''출생''' ||[[1065년|1065년경]] ||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width=25]] [[신성 로마 제국]][br][[파일:프랑슈콩테 깃발.svg|width=25]] [[부르고뉴 백국]] [[브장송|캥제]] || ||<|2> '''사망''' ||[[1124년]] [[12월 13일]] (59세) || ||[[파일:교황령 국기(754-1803).svg|width=25]] [[교황령]] [[로마]] || || '''재위기간''' ||[[1119년]] [[2월 1일]] ~ [[1124년]] [[12월 13일]] || || '''언어별[br]명칭''' ||[[라틴어]]: Callistus PP. II[br][[이탈리아어]]: Papa Callisto II[br][[영어]]: Pope Callixtus II || [목차] [clearfix] == 개요 == 제162대 [[교황]]. == [[유대인]] 보호 == 갈리스토 2세는 1120년 유럽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유대인]]들의 처우 개선과 관련한 교황의 공식적인 입장을 담은 칙서 <유대인과 함께{{{-1 ''(Sicut Judaeis)''}}}>를 발표했다. 이는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서, 유대인들을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키는 것을 포함하여 그들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유대교]] 기념일이나 축제를 방해하거나 그들의 묘지를 훼손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파문하겠다고 경고했다. 교황의 해당 칙서는 훗날 교황 [[알렉산데르 3세]]부터 시작해 수백 년간 재차 천명되었다. == [[보름스 협약]] == 갈리스토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5세]]와 1076년부터 이어져 왔던 서임권 분쟁에 대해 협상하기로 했다. 각 교구마다 [[주교]]들을 임명할 수 있는 서임권은 원래 교회의 권한이었다. 그러나 중세 전반기에 들어서 교회가 세속 군주의 도움과 보호를 받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세속 군주가 교회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군주가 직접 주교를 임명하는 권력 남용의 형태가 발생해 이를 계기로 교황과 황제가 서로 갈등을 빚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이어진 논쟁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교황령]]과 신성 로마 제국은 모두 한시바삐 끝내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세 명의 [[추기경]]들로 구성된 교황의 사절단이 신성 로마 제국으로 파견되어 1121년 [[뷔르츠부르크]]에서 서임권 분쟁을 완전히 끝내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을 통해 양측은 서임권 분쟁 종식 선언은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 지역에서 선포한다는 것과 교회의 재산권, 그리고 일부 영토를 반환한다는 것 등을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 사항들은 갈리스토 2세에게 직접 전달되었으며, 갈리스토 2세는 교황 특사를 신성 로마 제국의 도시 [[보름스]]로 보냈고, 이로써 '''1122년 기나긴 서임권 분쟁을 마무리짓는 [[보름스 협약]]이 체결되었다.''' 보름스 협약을 통해 황제는 주교 서임권을 포기했고, 교회에서는 주교를 자유롭게 서임할 수 있는 권리를 온전히 되찾게 되었다. 대신 주교를 선출할 때는 황제나 황제의 대리인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하도록 정했고, 선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관구장 주교나 보좌 주교들의 의견을 모아서 새로운 주교를 선출해 이를 황제에게 알려 확인을 받도록 하는 등 교황 측에서 양보한 점 또한 적지가 않았다. 단, 이는 교황령이 아닌 다른 유럽 지역에 해당되는 것이었고 교황령 내에서는 황제로부터 어떠한 간섭도 없이 오직 교황만이 주교를 서임할 권한이 있었다. [[분류:1065년 출생]][[분류:1124년 사망]][[분류:브장송 출신 인물]][[분류:신성 로마 제국의 인물]][[분류:프랑스인 교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