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간쑤성의 행정구역)] [목차] == 개요 == {{{+1 甘谷 }}} [[영어]] Gangu [[중국]] 서부 [[간쑤성]] [[톈수이시]]의 현. 톈수이에서 서북쪽으로 40km 떨어진 [[위수]] 남안의 협곡 분지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51만명이다. 옛 지명은 기현 (冀縣)으로, 고대 시기 천수군의 치소였다. 송대에 감곡 (甘穀) 지명이 붙여졌고, 원대부터 6세기 가량 복강 (伏羌)으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 주요 산업은 농업과 곡물 가공업이다. 간구역에는 톈수이 ~ [[딩시시]]를 잇는 룽하이 철도가 지난다. 인근에 23m 높이의 석불로 유명한 다샹산 석굴이 있다. == 역사 == 현지 자료에 따르면 기원전 668년, [[진선공]]이 일대를 점령하고 기현 (冀縣)을 수립했으며, 이는 중국 역사상 첫 현으로써 '화하제일현'이라 한다. 확실한 것은 [[진나라]] 시기부터 농서군 (隴西郡) 산하 기현이 있었고, [[후한]] 시기 천수군 (天水郡)이 개칭된 한양군 (漢陽郡)의 치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74년, 천수군은 한양군 (漢陽郡)으로 개칭되었고 치소 역시 현 간구현인 기현 (冀縣)으로 이전되었다. 194년부터 기현에 양주 (涼州) 자사부가 위치했고, 그 무렵 [[촉한]]의 장군 [[강유]]가 기현에서 탄생했다. [[조위]] 건국과 함께 한양군은 재차 천수군이 되었고, 양주가 옹주 (雍州)로 개편되며 기현 대신 [[장안]]으로 자사부가 이전되었다. [[제갈량]]의 북벌 시에 일시적으로 촉한령이 되었다. [[서진]] 시기인 269년, 천수군의 치소가 기현에서 현 톈수이 시내인 상규 (上邽縣)으로 옮겨졌다. 대신 신설된 진주(秦州) 자사부가 기현에 위치하였다. [[북주]] 시기 기현은 기성현 (冀城縣)으로 개칭되었고, [[당나라]] 초기인 620년에 --강족을 비하하는-- 복강현 (伏羌縣)으로 개명되었다. 이후 자체적인 복주 (伏州)가 설치되었으나 625년 폐지되어 다시 진주에 속했고, 629년 남쪽의 이빈현을 병합하였다. 복강현은 763년 [[토번]]이 점령한 후 사실상 폐지되었다. [[북송]] 시기인 1018년, 인근 청즈샤에 [[서하]]를 견제하기 위한 감곡성 (甘穀城)이 세워져 현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 [[금나라]] 시기인 1157년, 감곡성은 감곡현 (甘穀縣)으로 승격되어 금의 최전선으로써 [[남송]]의 성주 ([[청현]])와 맞섰다. [[원나라]] 시기 감곡현은 옛 지명인 복강현으로 개칭되어 공창부 (鞏昌府)에 속했다. 이는 명청대에도 유지되었고, [[신해혁명]] 후 복강현은 위주도 (渭川道)에 속했다. 그러던 1928년 3월, 복강현은 재차 감곡현으로 개칭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후 톈수이에 속하여 현재에 이른다. [[분류:간쑤성의 행정구역]][[분류:중국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