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조위의 인물, rd1=가규)] [include(틀:후한서)]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11 0%, #a11 0%, #a11 80%, #a11)" '''{{{#ece5b6 {{{+1 賈逵[br]가규}}}}}}'''}}} || || '''[[직위|{{{#ece5b6 최종직위}}}]]''' ||[[시중]](侍中)|| || '''{{{#ece5b6 성}}}''' ||가(賈)|| || '''[[이름|{{{#ece5b6 이름}}}]]''' ||규(逵)|| ||<|2> '''{{{#ece5b6 출생}}}''' ||[[30년]]|| ||[[후한]] [[사례]] 우부풍(右扶風) 평릉현(平陵縣) || ||<|2> '''{{{#ece5b6 사망}}}''' ||[[101년]]|| ||[[후한]] || || '''{{{#ece5b6 자}}}''' ||경백(景伯)||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 [[후한]] 초의 [[유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자는 경백(景伯)으로 사례 우부풍(右扶風) 평릉현(平陵縣) 사람이다. 가휘(賈徽)의 아들로 신장은 8척 2촌(약 195 cm)이나 되었다고 한다. == 생애 == 가규는 [[전한]] 초기의 사상가 [[가의(전한)|가의]]의 9세손으로 조부 가광(賈光)은 [[기주]] 상산군(常山郡)의 [[태수]]를 지냈으며 부친 가휘(賈徽)는 유흠(劉歆)[* 본래 자가 자준(子駿)이었지만 나중에 이름을 수(秀), 자를 영숙(穎叔)으로 고쳤다.]에게서 《[[춘추좌씨전]]》을 익혀 나중에 《좌씨조례》(左氏條例) 21편을 저술했고 《국어》와 《주관》(周官)을 익혔다. 또한 도운(塗惲)에게서 《고문상서》(古文尙書)를, 사만경(謝曼卿)에게서 《모시》(毛詩)를 익혔다. 가규는 신장이 8척 2촌이나 되었기 때문에 많은 유학자들이 가규를 문사불휴 가장두(問事不休 賈長頭)라고 불렀다고 한다. 가규는 아버지 가휘의 영향을 받아 가휘의 학문을 계승했는데 이 때문에 가규는 고금(古今)에 정통했고 학문적인 연원이 넓었다. 가휘는 학문에 매진하는 가규를 주목하고 가규를 더 잘 가르치려고 했다. 얼마 뒤, 가규를 [[태학]]에 입학시켜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도록 하였다. 성인이 되자 사람됨이 화락(和樂)하고 간결하였으며 재능도 특이할 정도로 탁월했다. 일생동안 그는 경학, 문학, 천문학 등에서 1백만여 언(言)에 가까운 방대한 저서를 남겼고, 또한 시, 송(頌), 뇌(誄), 서(書), 연주(連珠) 등 구편(九篇)이 있다고 한다. [[후한]] [[화제(전한)|화제]] 때 [[시중]]에 올랐고 사람들은 가규를 통유(通儒)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후 영원 13년(101년), 가규는 세상을 뜨니 이 때 나이가 72세였다. 가규는 천문학에도 밝아서 [[원화]] 연간 사분력이 시행된 후 조칙에 의거하여 사분력 수정 책임자가 되었다. 또 〈가규론력사칙(賈逵論歷)〉(92년)으로 알려진 뛰어난 역론을 남겨 달의 운행과 지속 등을 지적했다. == 누이와의 일화 == 가규의 누이는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했던 인물이었다. 가규가 5세가 되었을 때부터 누이는 항상 그를 안고 밖에서 놀았는데, 아침과 저녁에 이웃집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나면 누이는 어린 가규를 안고 언제나 울타리 주변에 서서 듣곤 했다. 매번 이때가 되면 어린 가규는 평상시와 달리 한마디의 말도 빠뜨리지 않고 조용하게 경청했다. 누이는 이런 가규를 모습을 보고 항상 놀라면서 기뻐했다. 가규가 10세가 되었을 때에 이미 유창하게 육경(六經)을 암송했다. 이에 누이가 가규에게 말했다. “너는 어린 나이에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삼분오전(三坟五典, 삼황오제)의 서적을 알고 외울 수 있었느냐?” 가규는 웃으면서 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몇 년 전에 누이가 나를 안고 정원 울타리에서 이웃집에서 글 읽는 소리를 들었는데, 벌써 잊었단 말입니까?” 누이는 그의 말을 듣고 아우를 칭찬하면서 이렇게 격려했다. “너는 천부적인 자질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더욱 노력을 하면 장래에 반드시 큰일을 할 것이다.” 가규는 누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면서 더욱 학문에 매진했다고 한다.[* 가규와 가규의 누이의 일화는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87972&cid=62066&categoryId=62066|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가규(동음이의어), version=9, paragraph=1.2)]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의 유학자]][[분류:30년 출생]][[분류:10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