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힉소스 (문단 편집) == [[이집트 제16왕조|제16]], [[이집트 제17왕조|17왕조]]와의 전쟁과 몰락 == 힉소스의 제15왕조와 이집트 현지민들의 제16왕조는 한동안 서로를 인정하며 교류를 이어갔던 듯하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마찰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제16왕조의 파라오 네비리라우 1세가 후와 에드푸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가 도로 밀려난 사건과 연관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훗날 16왕조의 뒤를 이어 테베에 세워진 [[이집트 제17왕조]] 시대에 작성된 기록에 따르면, 힉소스인들은 테베를 공격해 제16왕조를 멸망시키고 왕궁과 신전을 대거 약탈했다고 한다. 그 후 제17왕조를 건국한 테베의 유력 [[귀족]] 출신인 [[라호테프]]는 아비도스나 콥토스 지방의 신전들을 복구하는 등 전쟁의 피해를 회복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후대 파라오들은 상이집트를 점차 장악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나일강 삼각주를 탈환할 기회를 노렸다. 기원전 1210년경 펜타웨르라는 서기관이 작성한 샬리어 파피루스 제1권에 따르면, 제15왕조의 파라오 아페피는 아바리스에 거주하면서 삼각주의 좋은 산물을 생산하는 북쪽 땅을 포함한 온 땅에 세금을 부과하면서 세트를 주인으로 모셨고, 그 땅에서 세트 이외의 어떤 다른 신도 섬기지 않았다. 그러던 기원전 1570년경 제17 왕조의 파라오 [[세케넨레 타오]]와 아페피 사이에 외교 마찰이 벌어졌다. 아페피는 테베에 사절을 보내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밤낮으로 나의 수면을 방해하는 테베 동쪽의 [[하마]]들이 사는 연못을 제거하라[* 자신한테 맞서 [[반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위협하는 것이다.]." 세케넨레 타오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사신에게 물었다. >"당신의 주인은 우리 도시 동쪽에 있는 하마의 연못에 관해 누구에게서 들었는가?" 사신이 답했다. >"(일부 훼손) 그 때문에 내가 파견되었다." 그러자 세케넨레 타오는 사신에게 고기와 과자를 비롯한 훌륭한 식량을 제공하면서 그에게 답했다. >"당신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내가 그대로 시행하겠다고 전하여라." 파피루스의 뒷부분이 훼손되어서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 길이 없지만, 양국은 힉소스가 테베에 대해 시사적으로 종주권을 강요한 이 때를 기점으로 적대관계가 되어 전쟁을 벌였던 모양이다. 세케넨레 타오는 이 전쟁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이 소장한 그의 미라의 두개골 여러 군데에 무기 자국이 있는데, 이는 사후에 의도적으로 가까이에서 [[도끼]] 등 둔기로 내려쳐서 생긴 것이었다. 또한 턱뼈가 조각나 치아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대다수 학자들은 그가 힉소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다가 힉소스인들에게 둘러싸여 처참하게 죽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세케넨레 타오의 뒤를 이어 파라오에 오른 아들 [[카모세]]는 힉소스를 상대로 대대적인 전쟁을 감행했다. 그가 세운 2개의 전승 기념 석비가 카르낙의 아문 대 신전에 세워졌고, 나중에 그 내용을 나무판에 베껴쓴 카르나르본 서판이 현존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호루스 제3년... (중략) 한 족장은 아바리스에, 그리고 다른 족장은 쿠쉬에 있어서 나는 아시아인[* 시리아-팔레스타인 주민.] 및 흑인[* 이집트 남쪽 누비아 지역민들.]과 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들이 각각 이집트를 나와 함께 나누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 권력은 과연 어떻게 행사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헤르모폴리스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집트 강이 흐르는 멤피스까지도 갈 수 없다. 아시아인들이 부과한 세금 때문에 사람들이 강탈당하여 아무도 평화롭게 정착할 수 없다. 나는 그를 붙잡아 그의 배를 갈라놓을 것이다. 나의 의지는 아시아인들을 무찌르고 이집트를 구하는 것이다. > >나는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공정한 아문 신의 조언에 따라 아시아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북쪽으로 쳐들어갔다. 나의 용맹한 군대가 마치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처럼 앞서 나갔다. (중략) 날이 밝았을 때 나는 [[송골매]]처럼 그에게 접근했다. (중략) 나는 두 강에 접해 있는 아바리스를 황폐화시켰으며, 그들의 도시를 파괴하고 집들을 붉은 폐허더미가 되도록 불태웠다. 이 비문을 볼 때, 카모세는 아시아인들에게 세금을 내야 하고 북쪽과 남쪽의 이방인들과 이집트를 나눠가져야 하는 상황에 심히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힉소스를 상대로 대규모 원정을 벌여 아바리스를 파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공세 이후에도 힉소스인들이 여전히 하 이집트를 장악하고 아바리스는 힉소스의 요새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 석비는 다소 과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모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아흐모세 1세]]는 당시 10살 밖에 안 되었기에 [[어머니]] 아호텝이 대신 [[섭정]]을 맡아 이집트를 다스렸다. 아호텝은 나름대로 이집트를 잘 관리했다. 테베의 귀족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막았고, 아흐모세 1세가 직접 이집트를 다스릴 기반을 깔아주면서 아흐모세 1세에게 군사 경험을 쌓아주었다. 이후 아흐모세 1세가 성년의 나이가 되자 아호텝은 바로 아흐모세 1세에게 전권을 넘겨주었다. 아흐모세 1세가 언제부터 힉소스인들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는지는 불명이지만 학자들은 기록을 근거로 대략 재위한지 11년 되는 해부터 전면전이 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아흐모세 1세는 10여 년간 길러온 군대를 이끌고 빠른 속도로 북진했다. 아흐모세 1세는 헬리오폴리스를 떨어뜨린 뒤 군대를 몰아쳐 힉소스인들의 고향인 [[가나안]] 지역과 힉소스인들의 수도 아바리스를 차단했다. 이후 3차례에 걸쳐 아바도스를 공격했지만, 상이집트에서 소규모 [[반란]]이 일어나는 등 여러 사건들이 터지며 지체되어 실패했다. 4번째 공격에서야 최종적으로 아바도스를 함락시켰고, 뒤이어 힉소스인들의 마지막 요새인 샤루헨을 공격해 함락시켜 힉소스인들을 아시아로 추방시켰다. 이로써 상하 이집트를 재통일한 아흐모세 1세는 '두 땅의 지배자'라는 칭호를 스스로 올렸고, 이로 인해 130여 년 정도 지속되었던 이집트 제2중간기가 끝나고 [[이집트 신왕국]]의 막이 올랐다. 아흐모세 1세는 이집트를 통일한 직후 누비아와 시리아 지방으로 원정을 떠났고, 재위 22년 차에는 레반트에 당도해 거의 [[유프라테스 강]] 일대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멀리까지 원정을 간 이유는 힉소스가 반격할 여지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추정한다. 이리하여 이집트에서 축출된 힉소스인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고, 이집트 신왕국은 이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들을 철저히 파괴해 제15왕조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들려 했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은 기억에서 한때 자신들을 지배했던 힉소스인들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한 모양이다. 기원전 1460년경, 제18왕조의 [[하트셉수트]]는 중부 이집트의 스페오스 아르테미도스에 건설된 신전 벽에 자신의 업적을 기록했는데, 그 중에는 다음 문구가 있다. >"들어라 모든 민족아! 나는 내 마음의 조언대로 이 일을 행하였다. 나는 잊지 않았고 잠들지 않았으며, 파괴된 것들을 복구하였다. 이전에 아시아인들이 삼각주 땅의 아바리스에 거주하며 그 중의 유목민들이 기존의 건물들을 무너뜨렸지만, 나는 파괴된 것들을 다시 세웠다. 그들은 [[라(이집트 신화)|라]] 없이 통치했으며, 나의 통치 이전까지는 신들의 명령 없이 행동하였다. 나는 이제 라의 보좌를 세웠다. 나는 특정한 기간 동안 타고난 정복자라고 예견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