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힉소스 (문단 편집) == 이집트 정복 과정 == 이집트인들은 예로부터 '신들의 땅'이라고 명명한 나일강 유역에 집단 거주하면서, 유목, 상인, 용병, 노예 등 다양한 이유로 이집트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을 나일강 삼각주의 동쪽 변두리에 살게 했다. 이들은 그곳에서 집단촌을 형성하면서 서아시아와의 무역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고고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가나안]] 양식의 사원, 팔레스타인 유형의 매장(말 매장 포함), 팔레스타인 유형의 도기, 다수의 우수한 무기, [[크노소스]] 및 테라의 양식과 유사한 문체로 구성된 일련의 [[미노아]] 프레스코를 발굴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정착지는 나일강 삼각주 북동쪽에 있는 [[아바리스]](현재 탈 알다바)였다. 아바리스의 발굴자 만프리드 비탁은 제12왕조 말기인 기원전 1800년경 [[비블로스]] 출신의 [[페니키아인]]들이 이곳에서 무역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집트는 [[이집트 고왕국]] 시대부터 백향목을 구하기 위해 비블로스와 무역 거래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일리 있다는 평을 받는다. 기원전 17세기, 번영을 구가하던 [[이집트 중왕국]]은 대기근과 [[왕권]] 약화, 지방 [[총독]]들의 [[군웅할거]]로 인해 쇠락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이집트 제13왕조]]와 [[이집트 제14왕조]]는 이러한 혼란상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고, 변경 지역에 조용히 살아가던 이방인들은 이 때를 틈타 나일강 삼각주 전역을 점진적으로 공략해 [[이집트 제15왕조]]를 세웠다. 기원전 300년대의 이집트 역사가 마네토는 이들이 무자비한 파괴와 [[약탈]]을 자행했다고 기술했지만, 현재 다수의 이집트 고고학자들은 당시에 광범위한 약탈과 파괴가 벌어졌다는 것을 입증할 유적을 찾을 수 없다며 부정한다. 학자들은 마네토가 [[이집트 말기 왕조]] 시기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 외세가 쳐들어와서 이집트를 파괴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고 역사적 기억을 소급시켜 힉소스 역시 그랬을 거라고 여겼으리라 추정한다. 기원전 1800~1600년경 아바리스에 거주했던 이들의 유골에 대한 스트론튬 동위원소 분석 역시 수많은 남성이 이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걸 암시하는 물증을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여성]]의 77%가 비 현지인이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아바리스에 거주하는 이들이 이집트 토착민들과 [[통혼]] [[혼혈]]을 대체로 꺼렸다는 것이 드러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