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사히토 (문단 편집) ==== 사촌 누나 [[아이코 공주]]와 결혼? ==== [[일본]]에서는 법적으로 [[사촌]] 이상부터 결혼이 가능하며, 황실에서는 오래 전부터 [[근친혼]]이 잦았던 만큼 불가능한 건 아니다. 사실 [[아이코 공주]]나 히사히토나 즉위한 이후에 문제가 생길 게 자명한 자들인 만큼 황실 입장에서 이 두 사람을 결혼시키는 건 약간 꺼림칙했겠지만 황실의 안정이라는 대의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까지 나쁜 방안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근대 군주들 중엔 사촌 또는 그 이상의 근친혼을 한 사례가 꽤 있기도 하고.[* 당장에 한국사를 보더래도 고려 [[광종(고려)|광종]]은 '''[[대목왕후|이복 여동생]]'''을 왕비로 맞고 [[경종(고려)|자식]]을 봤다. 그리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샤를로트(룩셈부르크)|샤를로트 여대공]]이나 [[올라프 5세]]의 경우에서 보듯 유럽 왕실만 하더라도 20세기 초까지 사촌간의 결혼이 드물지 않았다.] [[아이코 공주]]는 여성이기는 하나 남계 여성인 만큼 전례에 따라 천황이 돼도 별 다른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현 [[황실전범]]에 근거하면 아이코 공주의 자손 즉, 여계 황족의 자손이 되는 이들 후손의 황족으로서의 처우 자체가 상당한 문제이며, 따지고 보면 방계에다 집안인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의 수많은 추태와 치부가 발목을 잡고 있고 무엇보다도 본인에 대한 과잉 보호 등으로 국민들이 히사히토에 대한 걸 제대로 잘 모르는 상황이다. 만약에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이 지금처럼 대놓고 형의 자리를 빼앗겠다고 덤비는 게 아니라 동생을 몹시 아끼던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좋은 동생으로 남고 집안 단속을 잘 해 두었다면 형인 [[나루히토]]도 방계인 히사히토의 정통성 문제를 직계 천황의 친딸인 [[아이코 공주]]과의 결혼을 통해서 해결시켜서 존폐 위기에 직면한 황실을 최대한 안정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볼 여지(?)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라는 이유로 방임되고 있던 탓에 황족으로서의 품위 같은 것이 일절 없이 자라 온 남동생 [[후미히토]]는 형 [[나루히토]]에 대한 질투인지 어쨌는지 대놓고 황위를 노리며 온갖 난동을 부렸는데, 히사히토가 남자 황족이기에 성년이 되면 별 다른 문제없이 미야케 창설이 가능하고 천황 계승 가능성도 높으니까 당시 기준으로 지위가 심하게 흔들리던 황태자 집안과 엮이면 귀찮아진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키히토]]의 생전퇴위 선언에 의하여 아버지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형인 나루히토가 천황에 즉위하는 것으로 완전히 물먹은 꼴이 되었고, 형과 후계 다툼을 벌이는 와중에 자기 자녀들을 방치[* 사실상 교육 과정에서 후미히토가 기여한 것보다는 아내 [[키코 비]]가 주로 기여했는데 키코 비도 사실 자녀 교육 면에서 그렇게 좋은 엄마는 아니라는 게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 등으로 확인되었다. 그에 반해 [[나루히토]] 부부는 두 사람 모두 주변에서 온갖 패싱을 당하면서도 아이코 공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이지메 사건이나 거식증 문제 등이 있었으나 적절한 훈육과 칭찬 등으로 아이코 공주를 바른 길로 이끌어서 일본 궁내청조차도 인정할 정도로 황실의 재원으로 키워냈다.]시키는 바람에 [[마코 공주]]와 [[코무로 케이]]가 천황제 자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만들었고, 뒤늦게라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자기 발로 걷어차버렸다. 현재 천황의 유일한 자녀 [[아이코 공주]]의 결혼 상대들을 미리부터 고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황실에서는 만일 아이코 공주가 천황이 되었을 때 그 이후 튀어나올 수 있는 여계 천황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존재인 구 황족들 중에서 [[쇼와 덴노]]의 장녀인 [[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와 결혼해서 현 황족들과 가장 가까운 친척[* [[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의 직계 자손과는 대략 7촌 정도라고 하는 데 아이코 공주 입장에서는 미카사노미야 가문/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의 [[아키코 공주]], [[요코 공주]], [[쓰구코 공주]]도 7촌 관계인 걸 따지면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이자 현재 [[일본 황실]]의 계승 문제를 촉발한 주 원인인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 집안과의 결혼도 검토하고 있는 와중에도 히사히토와의 결혼을 사실상 배제하는 것도 이러한 영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신적강하]]의 원흉인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은 [[메이지 덴노]]와 [[소노 사치코]]의 딸인 [[야스노미야 도시코]](泰宮聰子) 내친왕과의 사이에서 아들 4명이 있었다. 그들 중 장남인 모리히로(盛厚)는 [[쇼와 덴노]]의 장녀 [[히가시쿠니 시게코|데루노미야 시게코 내친왕]]과 결혼해서 3남 2녀를 낳았고, 시게코가 1961년 만 35세에 사망하자 데라오 요시코(寺尾佳子)를 후처로 맞아들여 2남을 더 낳았다. 당주 자리는 모리히로와 시게코의 장남인 노부히코(信彦)에게 계승되었다. 현재 히가시쿠니 가문은 2019년 3월 74세에 별세한 노부히코를 이어, 노부히코의 외아들 유키히코(征彦)[* 1973년생. [age(1973-01-01)]세.]가 당주직을 맡고 있다. 유키히코의 슬하에는 2010년에 얻은 외아들([age(2010-01-01)]세)이 있는데, [[쇼와 덴노]]의 후손인 만큼 그나마 가장 가까운 혈족이다.[* 히사히토와 [[아이코 공주]]의 기준에서 고모할머니 [[히가시쿠니 시게코]] 기준의 증손자가 되니 칠촌조카가 된다. 참고로 히사히토에게 미카사노미야 가문도 대략 이 정도 촌수이다.] 이외에 시게코 3남인 나오히코(真彦, 1953년생, [age(1953-01-01)]세)에게 손자가 한 명 있는데 이쪽은 2004년생([age(2004-01-01)]세)이다. 참고로 [[아이코 공주]]는 2001년 12월 1일생([age(2001-12-01)]세)이므로 그다지 나이 차이도 나지 않는다. 이렇게 황실 내에서도 [[어른의 사정]]으로 히사히토 쪽은 논의하지 않고 있는 게 확실시되고 있는 상태다. [[아이코 공주]]의 최대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힘으로는 자식에게 계승권을 부여해 줄 수 없다는 문제는 황족 출신 부마를 들이는 것으로도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히사히토와 결혼시켜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는 [[키코 비]]가 두 딸을 구 황족 가문의 남자들과 결혼시켜 미야케를 창설해 히사히토를 돕게 하려던 계획을 한 층 더 큰 규모로 구현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히가시쿠니노미야 이외에 하마평에 오르는 구 황족 가문은 다케다노미야, 가야노미야라는 미혼 남성이 2명 이상 존재하는 가문들이라고 한다. 가야노미야는 쇼와 덴노의 여계후손인 히가시쿠니노미야에 비해서는 혈연관계가 멀지만, 1947년 기준으로 현재 가문이 이어지는 [[구황족]] 가운데 계승 서열이 제일 높았고 적당한 연령대의 남자 후손이 2명 있다. 다만 다케다노미야는 메이지 덴노의 여계후손이면서 자손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이지만, 다른 두 가문에 비해 논란이 많은 편이라 혼인이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 자세한 것은 [[다케다 츠네야스]] 문서로. 여담으로 2022년 초에 구 황족의 종가격인 후시미노미야의 가주인 후시미 히로아키씨의 다단계 회사 광고 논란과 10월,다케다 츠네야스의 부친이자 JOC 전 회장 다케다 츠네카즈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수사에 돌입[* 아베의 암살 후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조치에 그동안 수사를 아베가 방해한 걸로 추정된다.실제로 츠네카즈의 장남 츠네야스는 아베랑 사적으로 온천을 즐기는 등 상당한 친분이 있었다.]하면서 그동안 츠네카즈가 벌였으나 황족의 말예[* 사실 츠네카즈는 황족에서 민간인으로 격하된 이후 출생자이나 가족들이 전부 구 황족이라 그냥 구 황족 취급받았다.]라는 이유로 묻혀버린 여러가지 악행들이 다시금 주목받으면서 사실상 구 황족들 역시도 일반인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게 증명됨에 따라서 다케다 츠네야스를 위시로 한 구 황족 복귀파의 주장이 사실상 묻혀버린 상태이며 여기에 구 황족 출신 남성을 여성 황족과 결혼시키자는 안까지도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다만 저 논란에서 비껴나있는 다른 가문의 복귀 논의는 계속되고 있는데, [[나루히토]] 일가와 가깝고 [[아이코 공주]]와도 친분을 가진 동년배 구성원이 있는데다, 딱히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는 카야노미야 가문의 황적 복귀 가능성은 후시미노미야 가문과 다케다노미야 가문이 물의를 일으키는 와중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논의되는 상황이다. 여전히 [[일본]] 내 여론이 히사히토의 즉위를 반대하는 쪽으로 압도적으로 기울어있으므로, 일부 구 황족 가문의 복귀 여부는 꾸준히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