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사히토 (문단 편집) === 후사와 자녀 === 황실의 다른 황족 남자 인원들은 현실적으로 더 이상 자식을 보기 어려운 나이이므로, '''오직 젊은 히사히토만이 다음 세대[* 후대 황위를 계승할 남자 황족 후손.]를 이어나갈 자식을 다 만들어야 한다.''' 비슷한 처지였던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니콜라우스 폰 올덴부르크]](6남 3녀)처럼 아들을 많이 낳으면 해결 되겠지만 20세기 초반에는 다들 애를 많이 낳던 시대라서 현대에 와서 자녀를 저렇게 많이 낳을 확률은 높지 않다. 히사히토가 [[아이코 공주|천황의 친딸]]을 제치고 황태손이 된 명분은 아들이기 때문인데 정작 천황의 자리에 오른 히사히토가 [[아들]]을 못 보게 된다면, 2천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 황실]]의 유일한 독자이며 [[2021년]] 이후에도 별 다른 문제 없이 현상 유지가 되어서 사실상 황실의 유일한 황족이 되어있을 히사히토[* 참고로 히사히토가 25세가 되면 아버지 [[후미히토]]는 최소 60대 중반이며, 이때 즈음이면 누나들은 물론 자신과 나이가 5살 차이로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사촌누나인 [[아이코 공주]]조차도 결혼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 이때까지도 황실전범에 별다른 개정이 없다면 정말 황실엔 히사히토, 후미히토 부부(그리고 그때까지 퇴위하거나 사망하지 않았다면 나루히토 부부) 그리고 가문을 지키기 위하여 [[독신]]을 선언한 [[아키코 공주]] 정도가 남아있는 전부일 수도 있다. 이것조차 그때까지 그 누구도 사망하거나 어떤 이유로든 황실을 나가지 않았다는 전제 하의 일이니 막상 정말로 그때가 되면 남는 사람이 더 적을 가능성도 있다.]가 적자를 못 얻어서 벌어지는 여러 논란은 상상 이상을 초월할 것이다. 원래 [[천황]]의 방계는 적당한 세대가 지나면 분가를 해서 [[신적강하|황적에서 나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천황 직계의 대가 끊어질 수 있다는 문제 때문에 1654년 유학자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가 당시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에게 황실에 새로운 세습친왕가를 둘 것을 건의하여 [[후시미노미야]]·[[가츠라노미야]]·[[아리스가와노미야]]·[[간인노미야]]의 4대 세습가문을 정했고[* 근거: [[https://ja.wikipedia.org/wiki/%E6%96%B0%E4%BA%95%E7%99%BD%E7%9F%B3#%E7%9A%87%E5%AE%A4%E6%94%BF%E7%AD%96]]], 후시미계 방계 9개까지 총 13개 궁가가 유지되었다. 그런데 가츠라는 1881년, 아리스가와는 1923년 대가 끊겼고 후시미 직계도 후손이 없어 문을 닫을 예정이다. 간인(閑院)은 그나마 보험으로서 작동해 지금의 천황 계통인 직황족(直皇族)을 배출했지만, 그건 방계 이야기이다. 직계는 1842년에 나루히토(愛仁)대에서 적통이 끊어지고 후시미의 방계에서 양자를 들였지만[* 이 때문에 정통성이 떨어져서 1947년 신적강하 당시에도 계승순위가 최하위였다.], 이마저도 1988년에 단절되었다. 족보를 뒤져서 듣도 보도 못한 구 황족의 방계 자손들 중 그나마 적당한 인물[* 만일 구 황족들 중 누군가를 새로운 천황으로 삼는다면 [[쇼와 덴노]]의 장녀 [[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가 시집간 히가시쿠니 가문이 그나마 유력한 후보라고 할 수 있다. 이 집안은 [[아이코 공주]]의 부마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중이다.]을 들여 천황으로 삼을 생각이 아니라면, 히사히토 친왕이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지 [[일본 황실]]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야만 [[헤이세이 시대]]에서 [[레이와 시대]]로 이어진 현재에도 [[만세일계]](万歳一系)를 표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훗날 히사히토의 비(妃)가 될 여성은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아들을 2명 이상은 꼭 낳아야 한다.'''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둘 중 한 명이 [[불임]]이거나, [[딸부잣집]]을 차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참고로 현 일본 황실은 극심한 여초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 그 아들이자 차기 천황을 성인이 될 때까지 건강상 문제 없이 잘 키워야 하고, 또한 미래를 위해서는 그 아이(들)도 반드시 아들을 낳아 후사까지 계속 고정, 확립해야 한다. 하술하듯, 이런 이유로 '''아예 결혼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남동생이라는 안전빵이 있고 그나마 아키히토 부황이 막 즉위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자 친척들이 여럿 살아 있던[* [[다카히토]] 친왕의 아들들인 [[토모히토]],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 삼형제가 건재했고 당시 기준으로 3명 모두 40대~50대 정도로 모두 아직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멀쩡한 나이였다.] [[나루히토]] 황태자 시절만 하더라도, 그가 결혼 적령기에 이르자 [[황태자비]]로 물망에 오르던 명문가의 미혼 여성들이 대대적으로 결혼을 서두르거나 외국으로 빠져나가버렸다. 이는 장래의 [[황후]]라는 중압감과 사생활 포기,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가 수십 년간 당한 악독한 [[시집살이]]를 비롯한 황실의 오랜 악습이 황실로 시집가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주었던 것. 실제로 [[마사코 황후]]가 맞이한 현실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남동생이 있는 [[나루히토]] 천황의 아내 [[마사코 황후]]조차도 상상 이상의 남아 출산 요구를 [[궁내청]], 황실, 그리고 일본 국민들[* 실제로 [[마사코 황후]]가 [[2001년]] [[아이코 공주]]를 [[출산]]한 직후, 일본 국민들은 "공주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인사와 동시에 은연 중에 "다시 [[임신]]해서 아들을 낳으라"고 맹목적으로 강요하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물론 [[궁내청]]이나 황실은 국민보다 더 노골적으로 이를 강요했는데, 이러한 것은 마사코 황후가 이후 장기간 요양을 받는 큰 원인이 되었다.]로부터 받아야만 했는데, 히사히토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현 [[황실전범]]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히사히토 미래의 아내가 다방면으로 받아야 할 중압감은 [[마사코 황후]]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더 나아가, 히사히토가 즉위할 즈음 일본의 황족이라고는 사실상 부모님이나 집안을 지키기 위하여 영구 독신 선언한 [[아키코 공주]] 정도만이 남아있을 것이며, 여기에 운이 좋다면 그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황실에 남아있는 몇몇 공주가 여기에 추가되는 정도로 대폭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니 히사히토의 아내로서 수행해야 할 공무들은, 현재 모든 여성 황족이 해야 하는 거의 모든 공무들을 한데 모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이 될 것이다. [[시집살이]]는 고되고, 반드시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만 하며 낳지 못하는 순간 황실 자체가 사라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부담도 있는데다가 수많은 공무들을 수행하여야 하기에 여러가지로 고생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갓 결혼한 마사코 황후(당시 황태자비)도 이러한 것 때문에 유산을 반복했고 도시노미야 아이코 내친왕을 낳은 이후 황후가 되기 전까지 매우 긴 시간 동안 요양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1년]] 기준으로 나루히토 황태자를 제외한 4명의 남성 황족들이 40대 전후라서 그나마 무리 없이 자녀를 더 낳을 수 있는 연령대였음에도 이러한 상황이 펼쳐졌는데, 히사히토 이외의 남성황족이 존재하지 않는 시점에서 마사코 황후가 겪은 것 이상이 될 것이 뻔하다. 장래에 히사히토가 결혼할 때가 오면, 히사히토 또래의 딸을 둔 [[일본]] 고위층들 사이에서 히사히토와 결혼하'''지 않'''기 위한 일대 붐이 더욱 큰 규모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궁내청]]과 [[일본 황실]]은 여태껏 말이 [[평민]]이지 재벌가 영애였던 [[미치코 상황후|쇼다 미치코]], 아버지를 이어 [[외교관]]이 된 촉망받는 엘리트이자 [[상류층]] 집안 출신인 [[마사코 황후|오와다 마사코]], 현재까지 황실에 시집을 온 여성들 중에서 격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d_jisu&logNo=150135720042|세레브]]의 상징인 [[귀국자녀]]에다 800만 엔의 연봉을 받던 [[교수]]의 딸[* 시어머니 [[미치코 상황후|쇼다 미치코]]와 형님 [[마사코 황후|오와다 마사코]]처럼 [[상류층]] 집안은 아니였으나 [[가쿠슈인]]에 재학하면서 남편 [[후미히토]] 친왕의 고가큐우로 지냈다는 것은 아무리 못해도 집안 형편이 [[중산층]] 이상은 된다는 소리다.] [[가와시마 키코]]와 같은, 일명 오죠사마들과만 혼인을 시켰던 과거와는 달리 [[코무로 케이]][* 큰누나 마코의 남편.] 같은 진짜 [[서민|평범한 사람]]을 골라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히사히토가 맞이할 아내가 최소 2명 이상의 아들을 낳거나, 아들이 하나뿐이더라도 '''손자를 둘 이상'''은 두어야 적어도 황실이 끊기지 않을 상태이다.[* 물론 [[알바니아]]의 [[조구 1세]] 왕의 직계 자손이 전부 외동아들로 대를 잇고 있기는 하다.(레카 조구 - 레카 조구 2세) 다만 이 쪽은 공화정이라 [[왕위 요구자]]에 불과하니 크게 문제가 안 되는 것일 뿐. 만약 알바니아에서 [[왕정복고]]가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 될 것이다.] 즉, 늦으면 '''[[2060년대]]나 [[2070년대]]'''까지 [[일본 황실]]은 매우 불안한 상태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즉 히사히토의 손자, 손녀가 태어날 무렵을 예상했을 때. [[대한민국]]으로 치면 대통령이 열 번 이상 바뀌는, 약 '''31대~33대 대통령''' 취임 무렵까지 [[일본 황실]]은 불안정한 상황이 된다는 뜻이다. 그때까지 누가 그 많고 무거운 황실 공무 중 일부를 대신할지도 문제고.[* 만약 여성 천황 내지는 여계 천황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만일 히사히토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면 결국 천황, 나아가 황실의 혈통이 그대로 단절되어 버리는 결과가 도출됨으로써, 최종적으로 일본의 천황제는 완전히 폐지되고 [[국체]](国体)가 공화정으로 전환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여성 황족이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신적강하된 일본 황실 방계 후손들은 모조리 [[왕위 요구자|황위 요구자]]로 전락하는 격이다.][* 실제로 2019년쯤부터 일본 인터넷에서는 히사히토의 천황 승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나루히토]] 황태자의 직계 딸인 [[아이코 공주]]가 천황을 계속 이어갈 것이 아니면, 그냥 천황제를 폐지해 버리고 차라리 공화제를 도입하라"는 노골적인 의견도 상당히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그나마 이마저도 후계를 낳을 때까지 무사히 아무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성립되는 개념이다. 아무리 철저한 경호와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지만 사람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심지어 이 정도로 압박이 심하면 스트레스성 불임이라도 올 만하지 않느냐는 말도 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