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브리어 (문단 편집) == 역사 == 고전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는 가나안어파에 속한 언어로서 한때 원시 가나안어로 같은 언어였으며, 이와 같은 이유로 매우 비슷한 언어이다. 지금이야 페니키아와 이스라엘에서 별 연관성을 못 느낄 수 있어도, 당대인들은 티로·시돈·예루살렘 등지의 사람들을 통틀어서 가나안 사람이라고 불렸다. 물론 일신교를 믿는 이스라엘과[* 일신교로 강하게 규범화되었다기보다는, 고대 이스라엘의 영역 안에서도 다신교 주민과 일신교 주민들이 공존했다. 성경에서 [[바알]]이나 [[암몬]] 숭배를 시도 때도 없이 비난하는 구절은 바로 이를 반영한 것이다.] 페니키아계 도시국가들은 어느 정도 서로를 구분한 것으로 보이나, 언어와 문자 등을 공유했다. 이러한 특징으로 고전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는 혈통적으로도 가까운 언어일 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문화적 교류를 통해서도 비슷해졌기 때문에 방언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다. 이러한 이유로 구약성서학 연구자들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씩은 페니키아어 지식을 갖추었다. 히브리어가 죽은 말이 됨은 오래 전 일이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수]] 시대에 [[아람어]]가 들어오면서 유대 민중들은 아람어를 입말로 사용했다. 종교적으로는 히브리어를 사용했지만, 민중들에게는 그것을 아람어로 번역해서 가르쳐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구약성경의 '타르굼 역본'이다. 그 후로도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더 많이 사용했고, [[예수]]조차도 입말이 아람어였다. 근대 전까지 기껏해야 종교의례용으로 쓰이지 살아있는 언어로 쓰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근대 이후 유럽에서는 [[민족주의]]의 바람이 몰아쳤고 유대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시기 유럽에서 민족정체성을 구분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모어]]였기 때문에 각지에 흩어져 각기 다른 언어(예를 들어 [[이디시어]])를 구사하던 유대인들 역시 자신들의 모어를 정립하고자 한다. 그 결과 [[벨라루스]] 태생의 [[언어학자]] 엘리에제르 벤예후다[*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이지만, 이디시어 지지자들에게는 이디시어 말살의 원흉으로 지목된다. 집안에서도 가족들에게 히브리어만 쓰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가 사어화된 히브리어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후 많은 이스라엘인이 히브리어를 필수 공부 요소로 집어넣어야 한다는 시위를 하여 필수요소로 집어넣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스라엘인이 구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인구의 15% 정도인 아랍계 중에는 히브리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이미 수천 년 전에 더이상 사용하지 않다가 부활한 언어이기 때문에 [[탈무드]]나 [[성경]] 같은 문헌자료 외에는 히브리어 어휘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모음표기법조차 제대로 통일되지 않아서 같은 [[셈어파]]의 언어인 [[아랍어]]에서 상당한 단어들을 빌려와야 했다. 구약시대에는 전등이라든가, 텔레비전이라든가, 자동차 같은 단어가 없었으니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