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바우두 (문단 편집) === [[콩라인]] === 흔히들 [[미하엘 발락|발락]]을 '''콩락'''이라 부르며 축구계 2인자의 대명사로 칭하는데, 이 사람 역시 [[콩라인]]으로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뭐 결국 둘 다 축구로 정점 찍은 사람들이니 우스개소리긴 하지만. 히바우두의 경우 브라질의 10번으로 1998년 월드컵 준우승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우승에 기여했고 99년 한 해는 독보적인 에이스였다.[* 오죽하면 당시에는 이 사람의 어시 덕분에 '호나우두가 주워먹기를 했네, 황제소리 들었네'라는 풍문이 있었을 정도였다. '''호나우두가 1인자였을 시기에도 그랬다!'''] 그리고 발락은 히바우두가 팀 내 2인자 이미지가 컸던 것에 반해 독일의 에이스로서 여러 차례 독일 올해의 선수 수상을 했지만 아무래도 국대가 준우승에 머물렀던 점, 팀 우승도 첼시 시절 한 번을 제외하면 왠지 당연해 보이는 뮌헨 시절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있다. 히바우두는 놀라운 공격 포인트에 비해 전성기가 짧은게 옥의 티라면 옥의 티였다. 1996년 올림픽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1997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도 출전했지만 그 때는 아직까지 [[호마리우]]가 건재했던 시기였고 호마리우가 은퇴한 때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약 5년 간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줬지만 아쉽게도 한일 월드컵 이후로는 국대에 선발되지 않은 점이 그를 콩라인 반열에 들게 한 큰 이유일지도. 이런 점에서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였던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약간 비슷한 신세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 [[FC 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를 완전히 휘어잡았던 왼발신이었음에도 네임밸류가 잘 알려져있지 않은 편인데, 다른 건 둘째치고 '''소속팀에서 에이스로 군림했음에도 불구하고 팀 동료와 스포트라이트를 나눠갖는 상황'''이 커리어 내내 지속되었다. 히바우두가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네임밸류도 피구보다 앞섰다. 혹자는 피구가 3년 연속으로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을 받은거를 근거로 드나 피구가 드리블과 플레이메이킹 등으로 평점은 더 높았기 때문에 당시 평점으로 주던 돈 발롱 MVP를 가져간 것이지 명실상부 에이스는 히바우두였다. 다만, 혼자 누렸어야할 스포트라이트를 분명히 피구 등 다른 선수들과 나누어 갖는 상황이 벌어졌던건 사실이고 일개인 득점랭킹 또한 1997-98, 2000-01 시즌 리그 득점랭킹 2위를 차지했다. 특히 00-01 시즌의 활약은 정말 눈부신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골 차로 2위였다. 브라질 국가대표에서도 다를 건 없다. '''기세등등하게 국가대표에 승선했을 때는 [[호마리우|밤새 술마시며 클럽을 전전하면서도 미친 듯이 골 넣어대는 어떤 아저씨]]가 버티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한물 가자 이번에는 [[호나우두|페노메노]]라는 양반이 등장했고, 가뜩이나 늙어가는 처지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웬 [[호나우지뉴|외계인]] 및 [[카카|엄친아]]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아드리아누|괴물]]까지 나왔다.'''[* 그러나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호나우지뉴와 카카는 스트라이커 내지는 공격수인 히바우두와 포지션이 약간 달라 히바우두에 명성에 누가 갔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사람들의 주목도를 얘기하는 것이니까. 사실은 같은 피지컬 괴물 계열인 탕아, 아드리아누에게 밀렸다고 봐야 한다.] 1998 월드컵에서는 '''3골 2어시스트''', 2002 월드컵에서는 '''5골 1어시스트'''를 찍는 활약을 펼쳤음에도 그 어떤 스포트라이트도 그에게 오지 않았다.[* [[호나우두|에이스]]가 스포트라이트를 죄다 가져가버렸고, 오히려 사람들은 터키전에서 그가 잠시 보여줬던 할리우드 액션만 기억해줄 뿐이었다.][* 2002 월드컵 결승전에서 호나우두의 2골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던 장면만 보더라도 기록된 공격 포인트 이상의 기여도가 있었다는걸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한때 브라질이 바그너 로베같이 선배들의 위엄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수준의 선수를 주전 스트라이커로 쓰던 시절엔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내가 아무리 리그에서 잘해도 그리스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대표에 발도 못 붙였다.' 며 한탄한 적도 있다. 그러나 브라질이 원래 그런 동네고 자기 자신 역시 다른 동네 같았으면 국대 붙박이였을 사람들 앞길 막은 건 마찬가지이다. 당장 [[베베투]]만 해도 노구를 이끌고 참가한 98년 거의 경기마다 교체당했으면서도 히바우두와 같은 수의 득점을 올렸다. 자르데우, [[지오반니 에우베르]], [[마르시오 아모로소]], [[아이우통]] 같은 유럽 4대 리그 득점왕들조차 히바우두와 전성기가 겹쳐서 쓸쓸한 국대생활을 보냈다. 이들보다 한 끗발 떨어지는 선수들이 국가대표를 노리기는 거의 언감생심에 가까웠으니[* 루이장 에디우송처럼 국대 승선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남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는 히바우두도 남의 앞길 많이 막은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