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말라야(영화) (문단 편집) === 실화와의 차이점 === [[계명대학교/사건사고#s-3.2|실화]]와는 약 60% 정도 차이가 난다는 말이 있다. 즉, 실화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60101.010420855210001|40%]], 각색 60% 정도. 영화의 주인공인 [[엄홍길]]과 [[박무택]]만 실명을 유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60101.010420855210001|기사]] 한국 배경은 [[계명대학교/사건사고#s-3.2|실화]]와 마찬가지로 [[대구광역시]]가 [[작품에 등장하는 실존 지명/한국|맞으나]], 각색을 했기 때문에 대학교 이름은 [[계명대학교]]가 아닌 대명대학교로 나온다.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60101.010420855210001|기사]] [[박무택]] 대장이 실종됐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에 도전하고 있던 오은선이 박무택의 시신을 처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234662|발견했다]]. 영화에서 [[박무택]]이 등산대장을 맡아 [[에베레스트]] 등반에 도전할 때 [[엄홍길]]은 발목이 안 좋아 등산을 포기하고 교수를 맡은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엄홍길은 2002년에 한국외대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080455|'''입학''']]해 당시 대학생이었다. 또한 2004년 5월 19일 박무택 등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240156|실종됐는데]], 같은달 5일 엄홍길은 얄룽캉 정상에 올라 세계 최초로 15좌 등반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4&aid=0000102250|성공했다]]. 여담이지만 [[박무택]] 대장의 시신을 수습한다는 취지의 휴먼 원정대 발족 당시 산악인들의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시체 찾으러 가다가 시체를 만들 생각[* 격려차 온 [[계명대학교|계명대]] 산악회 회장이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1025179?sid=102|고산병]]으로 죽었으니 결국 실제로 만들었다.][* 고산에서 시신은 눈과 얼음에 얼어붙어 100킬로그램을 훌쩍 넘게 되므로 발견해도 수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1990년대까지는 그걸 잘 몰라서 시신 수습하러 원정대가 가서 또 죽고 다치는 일이 있었다. 고산의 시신들이 괜히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 [[엄홍길]]의 시신 수습 원정대를 밀어부치는 행동은 심정적으로는 공감이 가지만, 현실을 무시한 위험하고 시대착오적인 행동이다. 동생을 [[히말라야산맥|히말라야]]에서 잃은 라인홀트 메스너조차 우려를 표했을 정도니.]이냐는 의견과 [[엄홍길]] 대장이 자신의 등반을 광고하려 한다는 우려도 나왔다고 하지만 진실은 본인만 알 뿐. 그러나 후자는 정상등정도 아니고 [[박무택|후배]] 시신수습으로 인한 방문인데 엄홍길 본인 목숨도 걸어야하는 상황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상황에서 광고일 가능성은 거의 없긴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