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희천시 (문단 편집) == 역사 == [[고구려]]·[[발해]] 멸망 이후 한동안 [[여진족]]의 땅이었다가 [[고려]] 초에 청새진(淸塞鎭)을 두었다. 이후 [[거란 유민들의 고려 침공]] 당시 [[김취려]]가 이곳에서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다는 공로로 위주(威州)로 승격되었다가 [[여몽전쟁]] 당시 고려를 배반하고 몽골에 항복하였다는 이유에서 [[동녕부]] 반환 이후 희주로 개칭되어 [[개천군]]에 예속되어 강등당했다. [[조선]] 초기인 1396년 희주군으로 독립하였고, 1413년 희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1939년 만포선이 개통되었고 1941년 희천면이 희천읍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49년 희천군은 북한 당국이 신설한 [[자강도]]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1950년 10월 북진하던 유엔군이 희천군을 일시적으로 수복하였다. 그러나.. >'''"희천 시가지를 보고 놀랐다. 도로와 2층 건물로 이뤄진 도시가 사라졌다. 건물은 공터 아니면 돌무더기만 남았다.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가 텅 빈 껍데기로 변했다"''' >---- >- 미 24사단장 딘 장군의 회고록 중에서 - 유엔군이 북한 지역에서 후퇴한 이후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의 주요 보급로였던 [[만포선]] 상에 위치한고로 유엔군 공군의 주요 폭격 목표가 되었고 그 결과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 지금의 시가지는 전후 북한 치하에서 재건된 것이다. 1952년 [[동신군]]을 분리시켜 면적과 인구가 상당히 축소되었지만 평양과 강계를 잇는 [[만포선]]의 중앙에 위치해 교통의 요지로써 성장한 희천은 [[1967년]] 시로 승격되었다. 사실 지형상으로는 [[청천강]] 유역이고 강계 방향으로는 험난한 고개들이 위치하기 때문에 [[평안북도]] 산하인 것이 더욱 타당해 보이지만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자강도로 들어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