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휘종(송) (문단 편집) === 반란과 몰락의 징조 === 결국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다 못한 민중들이 폭발하여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가장 대표적으로는 [[수호전]]의 주인공인 [[송강(수호전)|송강]]과 최종보스격인 [[방랍]]이 있다. [[방랍의 난]]이 점점 격화되고 방랍이 아예 독립 국가를 세우는 수준에 이르자 [[요나라]]를 상대하기 위해 조성하였던 군사들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토벌에 나섰다. 그 결과 반란을 진압할 수는 있었지만[* 다만 이때 송나라 군대는 심하게 약화된터라 방랍의 반군을 제대로 진압못하고 반군에게 패하고 말아서 다시 진압군을 보낸터라 진압하는데 많은 고생을 했다.], 송나라의 국력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방랍의 난이 일어나자 백성들 민심을 수습하고자 반란을 진압하는 동안 화석강 수집을 그만 두었으나, 방랍의 난이 진압된 지 두 달도 안 되어서 또 화석강 모으기를 시작하였다. 물론 많은 신하들이 이를 반대하고 백성들도 반발하였으나 송휘종은 암석 모으기를 반대하는 신하들을 파직하거나 유배 보내고 백성들 반발을 억눌렀다. 특히 송나라 관군이 진압 도중 남부의 백성들을 300만 명이나 학살했고 당연히 송의 남부지역은 송왕조와 조정에 반감이 심했다. 이는 정강의 변 이후 남송의 고종이 북벌하는데 간접적으로 방해요소가 된다. 불과 몇 년 전에 반란이 일어난 지역이라 언제 또 다른 반란이 일어날 수 있는 불안한 후방이었던 것. 오죽하면 악비를 죽인 권신 진회가 재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불안한 남부지역을 폭압적이기는 해도 안정시킨 공이 인정되기 때문일까?. 이 와중에 [[금나라]]가 건국되자 [[이이제이]]책으로 금나라와 협력하여 [[요나라]]를 박살낸 후에 또 요나라 패잔병들과 협력하여 금나라를 박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의 힘 및 자신의 세력의 규모 정도는 확인하고 이이제이를 해야 하는데 문제는 머리가 나쁜 휘종은 그런 건 관심이 없었고, 역시나 요나라 마지막 황제로 여기저기 도망치던 [[천조제]]가 결국 패하여 붙잡히면서 이런 진실이 드러나고 만다. 게다가 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비록 송왕조가 문치주의로 군사력이 약하기도 해도 황제가 있는 수도가 적들에게 두번이나 쉽게 점령될 정도는 아니었고 경제력도 풍부하였으나 송휘종의 실정으로 국경은 커녕 수도와 황궁을 지킬 군사력도 없었고 국가재정은 바닥이었기에 전쟁에 필요한 병력과 자원도 동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송휘종과 조정에 대한 민심이 최악이라서 의병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악비나 한세충 등 의병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도 송고종이 남송을 재건하면서 가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