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휘종(송) (문단 편집) === 채경의 만행 === 신종 사후 어린 철종을 대신해서 수렴청정을 했던 선인태후 고씨가 구법당을 복권시켰던 원우연간 시기와 철종 친정기인 소성,원부 연간의 기간 동안 [[장돈]] 등 신법당파가 집권한 이후 북송의 당쟁은 점점 심해져갔다. 따라서 철종 사후 휘종을 수렴청정한 상태후는 구법당과 신법당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구법당의 한충언, 신법당의 [[증포]]를 재상으로 하여 국정을 운영했다.[* 여담이지만 한충언은 키가 크고 증포는 키가 광장히 작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구도는 오래 가지 못하고 증포와의 대립 끝에 한충언이 사퇴하면서 증포가 모든 국정을 쥐게 된다. 그런데 상태후가 얼마 안 가 갑자기 죽고 채경이 등장하자 정국은 다시금 요동쳤다. 평소 그림 그리기와 회화첩을 좋아한 휘종에게 총애를 받은 환관 동관이 휘종의 명으로 항주로 가서 회화첩을 가지러 올 때마다 그 옆에서 비위를 잘 맞추던 채경은 신법당이었지만 장돈 등 당시 집권 대신들이 신용 없는 인사로 평가하여 파직되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휘종의 측근 환관인 동관의 추천과 평소 채경과 친했던 휘종의 후궁 유씨의 도움으로 채경이 다시금 중앙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이후 채경은 증포의 도움과 추천을 통해 대명부지사를 시작으로 계속 승진했으며 휘종의 신임을 얻어 재상이 되었다. 그리고 16년 동안 재상으로 권력을 쥐게 된 채경은 증포를 시작으로 자신에 반대된다면 '''구법당이고 신법당이고 모조리 몰아내버렸다.''' 증포를 탄핵할 때 채경은 재상 증포가 부정한 뇌물들을 받고 황제가 내려야 할 하사품 등을 마음대로 측근들에게 줬습니다.라고 휘종과 증포를 포함한 대신들 앞에서 대놓고 그의 부정을 폭로했다. 당연히 자신 면전 앞에서 모욕을 받고 탄핵당한 증포는 얼굴까지 빨개져 휘종 앞임에도 크게 화를 내며 이성마저 잃어가면서 채경을 논박하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대신들은 증포의 무례함을 지적했고, 휘종 역시 증포가 앞뒤 안 가라고 황제마저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당연히 증포는 조사를 받은 뒤 채경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나자 파면되어 지방으로 쫓겨났고 잠시 명예를 회복했으나 지방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윤주에서 사망했다. 이외에도 채경과 그를 따르는 이들은 자신들을 반대하면 신구법 인물에 상관없이 약 300여 명을 모조리 몰아내고 나아가 그 자손들까지 연좌제로 과거응시금지 등 불이익조치를 취하는 조치 등을 무기 삼아 반대파를 제거하여 조정 전체를 장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