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휘종(송) (문단 편집) ==== 도구도 ==== || [[파일:external/www9.wind.ne.jp/hato.jpg]] || || 휘종이 그린 도구도(桃鳩圖). [[복숭아]] 꽃과 [[비둘기]]를 그린 그림이다. || 화가로도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실제로 휘종이 그린 그림들을 보면 단순히 황제가 그려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게 아니라 '''진짜로 그림을 잘 그렸다.''' "답화귀거마제향 踏花歸去馬蹄香"(뜻: 꽃을 밟고 돌아가는데 말발굽에 향기난다)이라는 제목을 화제로 내걸었더니 다른 화가들이 모두 어리둥절할 때 한 화가가 나비떼가 말 꽁무니를 쫓아가는 그림을 그렸다는 유명한 일화도 이 시절 이야기. 이후 여인을 태운 말을 따르는 나비의 구도는 하나의 정형이 되었다. 문제는 '''그의 직업은 예술가가 아니라, 한 나라를 다스려야 할 [[황제]]였다는 것이다.''' 차라리 유능한 이를 등용해서 그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예술을 즐겼거나, 나라를 평안케 한 뒤에 노후에 소일거리로 즐기는 정도에서 끝냈다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휘종은 국정은 외면하고 예술활동에만 심취한 나머지 나라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게다가 그냥 예술활동에 심취하기만 했다면 모를까 저걸로 백성들 등골까지 빨아먹었다. 훗날 명나라의 [[천계제]]와 비견될 만한 행보이지만, 천계제는 목수질에만 심취했을 뿐 예술품 수집 등으로 사치를 부리지는 않았고,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변명이라도 가능하지 휘종은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 남당의 마지막 황제인 [[이욱]]도 예술에 심취한 망국의 군주였지만, 정치를 팽개친 휘종과는 달리 인재를 등용하고 조세 제도를 개편하며 법령을 개선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며 남당의 국체 유지를 위해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다. 때문에 그가 독살당하자 남당의 옛 백성들이 슬퍼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