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훈족 (문단 편집) === 붕괴 === 비록 두 번의 서로마 원정에서 실패했다곤 해도, 아틸라는 뛰어난 장악력과 군사적 능력을 갖춘, 불안한 구조의 훈족 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의 사후 세 아들 엘라크, 뎅기지크, 에르나크가 왕위를 놓고 다투기 시작했는데, 이 틈을 타 게피드족이 훈족에게 반기를 들자 엘라크는 반란을 진압하려 했지만 전사했다. 처절한 전투 끝에 게피드족은 독립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다른 게르만 부족들도 반란을 일으키며 훈족의 게르만 지배는 무너져갔다. 훈족 지배하에서 기존 체제를 유지한 정도에 따라 독자세력화에 걸린 시간이 달랐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초로 조직적인 반란을 일으킨 게피다이족은 세력을 결집한 데 걸린 시간으로 보아 훈족 통치하에서도 나름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오도아케르]]의 출신 부족으로 유명한 스키리족의 경우 독립 과정에서 내세운 왕이 스키리족 혈통조차 아니었던 것으로 보아 아틸라 사후의 혼란기에 내부를 개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헝가리 지역의 상황은 훈족 잔당과 아직까지 독립하지 못한 게르만족 + 독립한 여러 게르만족이 투쟁을 벌이고, 독립을 얻은, 혹은 시도하는 게르만족 내에서도 대대적인 정치적 격변이 벌어지는 난세 그 자체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이 자세하게 남지 않아 완벽한 전말은 알 수 없다. 아틸라의 살아남은 두 아들 뎅기지크, 에르나크가 이끄는 훈족 잔당은 한동안 여전히 일정 수준의 세력을 유지하면서 떨어져나간 게르만족들과 치고받고 싸웠지만, 패권을 잡은 동고트족에게 참패한 끝에 동로마 영토로 도망쳤다. 이들은 훈족이 전성기에 동로마와 맺은 조약을 근거로 교역권 등을 요구했으나 동로마는 이를 거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