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한 (문단 편집) == 황실의 붕괴 == [[십상시의 난]] 이후로 [[서량|양주]] 지역에서 이민족인 [[강족]]과 [[한족]]이 결합된 강력한 군세를 이끌던 [[동탁]]이 일전에 하진의 입경(入京) 요구에 호응하여 낙양 인근에 와있다가 난을 틈타 [[낙양]]에 입성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동탁은 오래지않아 [[정원(삼국지)|정원]]을 죽여 그의 병사를 흡수하여 군권을 장악하였고, 조정에서도 [[사공(관직)|사공]]이 되었다가 [[태위]]로 관직을 옮겼다. 그러고 나서 [[후소제(후한)|소제 유변]]과 [[영사황후 하씨|하태후]]를 살해하였고, [[왕미인]] 소생의 [[헌제]]를 옹립하여 명실공히 정권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세력이 [[반동탁연합]]을 결성하여 그와 대적하였고, 이에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기에 이른다. 장안 천도 이후 동탁이 살해되자 그 부관이었던 [[이각]]과 [[곽사]]가 [[삼보의 난|잠깐 정권을 잡았다가]], 마침내 [[조조]]가 정권을 잡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미 동탁이 정권을 휘두를 때부터 후한 황실은 그저 명목상의 존재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 협천자이령제후(挾天子以令諸侯 = [[천자]]를 끼고 그를 명분으로 삼아 [[제후]]들을 호령한다)이다. [[조조]]는 천자를 명분으로 삼아 각지의 [[군웅]]들을 차례차례 토벌하였지만, 각지의 [[군벌]]들은 오히려 조조가 천자를 위협하는 역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항하였다. 결국 [[조조]]가 지배한 [[중원]], [[유비]]가 지배한 [[사천]] 분지, [[손권]]이 지배한 [[강남(중국)|강남]] 일대 등 [[천하삼분지계|지배 영역이 셋으로 나뉜 상태로 고착되었다.]] 조조 지배 지역에서 식물 인간 상태에서 유지되는 후한 조정은 이 상황에서 전혀 영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허수아비 신세가 되었다. 결국 220년, [[헌제]]가 조조의 [[아들]]인 [[조비]]에게 제위를 [[선양]]으로 위장한 [[찬탈]]을 당하면서 [[역성혁명|붕괴되었다.]][* 사실상 [[동탁]]~[[이각]], [[곽사]] 집권때부터 후한은 국가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후 황실의 일원인 [[유비]]가 [[익주]]에서 황제로 즉위하여 [[촉한]]을 건국. 43년을 더 이어갔지만 결국 [[조위]]의 침략으로 멸망함으로써 완전히 사라졌다. 자세한 내용은 [[촉한]] 문서참고.[* [[촉한정통론]]에 입각한 시각에서는 촉한이 전한과 후한을 이은 마지막 한나라라는 뜻에서 계한(季漢)이라고도 하였다. <계한보신찬> 등 서적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