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추 (문단 편집) ==== 중세 시대의 가격 분쟁 ==== 후추가 온갖 요리에 많이 응용된만큼 그 수요도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홍해의 무역선단을 통제했던 로마 시대와는 다르게 홍해 무역의 교두보인 이집트 지역이 [[이슬람 제국|이슬람 세계]]로 넘어간 이후, 후추를 파는 이슬람 상인과 후추를 운반하는 유럽 상인[* 대개 [[베네치아]]와 [[아말피]], [[제노바]] 같은 도시국가의 상인들이었다.]간의 알력싸움은 그칠 줄을 몰랐다. 가격을 올려 팔고자 하는 이슬람 상인들의 열정은 실로 대단하였는데,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나 나올 법한 뜬소문과 [[신비주의]] 마케팅 전략을 동원했다. 이를테면 수백년 전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에서 언급된 계피 새(Cinnamologus) 이야기를 들먹이기도 하였는데, 정리하자면 이렇다. >(중략)[[성경]]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계피]]에 대해,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실론]] 계피를 아랍 지방에 있던 불사조(계피 새)의 둥지에서 발견했다고 적고 있다. 불사조의 둥지는 매우 가파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놀라운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짐승]]을 큰 조각으로 잘라 불사조의 둥지 근처에 흩어 놓았다. 불사조들은 둥지에서 내려와 이 고기 조각을 물고 다시 둥지로 갔다. 결국 둥지는 [[고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계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계피 새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서 그 실재에 대해 회의적인 언급을 하였고, 플리니우스도 향료상들이 가격을 올리기 위해 생긴 뜬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계피 새의 일부 전승(계피 가루같은 향신료들을 둥지삼아 부활한다는 등)은 이후 [[불사조]] 설화의 원전이 된다. 불사조가 '불'과 연관을 갖게 되는 것도 계피 새의 이야기와 융화되었기 때문.] 제정 로마 초기에 반박된 허황된 이야기를 중세 시대의 사람들이 믿을 리 없었지만, 서방 상인들 또한 이런 이야기를 자신들의 판매처인 유럽 지방에 널리 퍼뜨리며 가격을 올려 파는데 톡톡히 써먹었다.[* 후술하겠지만, 이로 인해 중세 시기의 후추가 어마무시한 가격이었다는 오해가 퍼지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