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이족 (문단 편집) == 냉담자 / 비무슬림 후이족 == || [[파일:9D00803A-67C9-4F7F-80C6-6E16264A9BDC.jpg|width=100%]] || || 취안저우의 마스지드 유적. 현재는 관광지화 되어 있다. || 청나라때 후이족이 상당한 탄압을 받았던데다가, 현대 중국은 강력한 세속국가이기 때문에 이슬람교를 떠난 후이족도 많다. 남부 해안지방(특히 [[푸젠성]]의 [[취안저우]], [[광둥성]]의 [[광저우]] 등)의 후이족들은 아랍계, 페르시아계 무슬림을 선조로 하는 족보도 가지고 있지만, 이슬람권인 중앙아시아와 접하고 있는 서북지역의 후이족들과는 달리 명대 이래로 서양세력이 해상교통로에서 우세해지면서 이슬람권과는 단절된 연유로 이 지역 후이족들은 현재는 [[냉담자]] 성향이거나 이슬람교를 버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서북의 회족들이 이들에게 다시 이슬람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이맘]]을 여러명 파견했지만 이들을 재이슬람화하는데 실패하고 돌아갔다고. 후이족의 기원과 관련한 후이족과 한족 양측의 구전 전승은 역사적으로는 상당히 부정확하지만, 후이족 일부가 이슬람을 버리고 완전히 한화한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해준다. 후이족 측 전승에 의하면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악한 정령들을 몰아내달라는 당나라 황제의 부탁을 받아 360명의 교우를 파견했으며, 중국에 도착한 무슬림들은 환영을 받으며 장안 근교에서 살게 되었다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자손이 점점 늘어나자 중국 황실은 불편함을 느끼고 이들을 변경 지대로 추방했다는 것이다. 정작 쿠란과 [[하디스]]에서는 중국에 대해 한 마디도 나오지 않으므로 해당 구전 전승은 이슬람계에서 가짜로 분류하고 있다. 즉 해당 구전 전승은 중국에 정착한 후이족 상당수가 자신들의 정확한 기원을 잊어버렸으며, 이슬람권에서 심각한 중죄에 해당하는 하디스 날조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 상당수가 이를 인지조차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족 측 전승에 의하면 수천여 명의 무슬림 군인들이 중국 황제의 요청으로 중국에 와서 반란군을 진압하였다 한다. 반란을 진압하고 임무를 완수한 이후 무슬림 군인들은 중국에서 돼지고기를 먹고 술을 마신 일이 알려져서 고향에 돌아가면 해코지를 당할까봐 두려워졌고, 결국 중국에 남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해당 구전 전승은 한족 입장에서 다소 희화화되어 왜곡된 묘사이긴 하지만 비무슬림 후이족들의 기원과 관련하여 정곡을 찌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단 이들은 민족상 후이족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다수민족인 한족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들은 민족 등록을 바꾸지 않고 있는데, 이는 소수민족이면 소수자 우대정책으로 여러 혜택(특히 대학입학 및 [[계획생육정책]] 면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1982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족이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면 후이족으로 민족을 바꿀 수 있었지만 이후 이런 혜택을 노린 개종이 늘어나자 법률이 개정되어 불가능해졌다. 중동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승도 있다. 한 무슬림 철학자가 공개적으로 [[무신론]]을 선언하면서 십자가형에 처할 위기에 처하자, 멀리 중국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벼슬을 받았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사대부들은 천국과 지옥 등을 불신하던 입장이었던 반면, 중세 유럽과 중동에서는 공개적으로 무신론자임을 천명했다가는 목숨이 위험했다.[* 서구 사회에서 무신론자들이 따로 제재받지 않기 시작한 시점은 근세 이후 서서히 종교의 자유 개념이 퍼지고 나서이다.] 송나라 역사를 기록한 [[송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된 것을 보면 당시 중동에서 송나라로 온 사람들 중 독실한 무슬림과는 반대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 > 대식국(大食國)은 본디 페르시아(波斯)의 별종이다. 수나라 양제 시절 페르시아에 걸힐(傑黠)한 자가 나타나 동굴에서 글자가 써 있는 돌을 찾아낸 다음 이를 길조라 여기고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재물의 약탈을 일삼다가 무리의 숫자가 점차 많아지자, 마침내 자립하여 왕이라 하고 페르시아의 서쪽 지역을 점거하였다.[[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20_0490_0050_0010#self|번역출처]] 전근대 무슬림 사회 출신 [[무신론자]], [[이신론자]], [[불가지론자]]들 입장에서는 중국으로 이민, 정착하는 게 매력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에 정착한 독실한 무슬림, 기독교인, 유대인 후손들 중에서도 냉담자 성향인 사람들은 하나둘씩 기존 종교를 버리고 그냥 이웃해 사는 여타 중국인처럼 살더라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었다. 현재 무신론자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불교로 개종한 후이족도 종종 보인다. 가장 유명한 사람이 중화민국 시절 장군이었던 [[백숭희]]의 아들인 백선용(바이셴융)[* 중화민국, 즉 [[대만]]국적이다.]은 나름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아버지와는 달리 불교를 믿는다.[* 바이충시는 술과 돼지고기를 대놓고 먹기는 했으나, 애국주의 성향의 후이족 이슬람 학자 후쑹산의 영향으로 중일전쟁을 일종의 [[지하드]]로 여기고 적극 헌신하던 사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이충시는 작전 지역에서 도교 사원과 절을 여러차례 파괴하고 다녔는데, 아들 바이셴융이 불교를 믿게 되었다...] 후이족 내부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후이족에서 제외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고, 중국 정부에서도 이슬람교를 떠난 자의 민족 분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한듯 하다. 하지만 "민족"을 종교가 아니라 혈통에 근거해 분류한 헌법문제가 얽혀있어서 일단 선대에 후이족이었으면 그 자손도 후이족이라고 분류하는 듯. 대만의 경우 국공내전 이후 피난 온 후이족과 위구르인 등의 후손 약 6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대다수가 완전히 세속화하고 상술한 것처럼 아예 다른 종교로 개종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대만의 후이족들은 오늘날 대만 내 인도네시아인 무슬림 이주노동자들[* [[인도네시아계 대만인]] 문서 참조]과 가깝고도 먼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