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이족 (문단 편집) === 한족 외 다른 민족들과의 관계 === 같은 종교를 믿는 위구르족과도 사이가 애매하다. 그리고 만주족과 역사적으로 상당히 좋지 않은 관계이다. 신장 지역을 정복한 직후 청나라는 이슬람을 믿는 위구르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준가르족이 전멸하고 무주공산이 된 [[중가리아]] 등지에 후이족들을 정착시켰으나, 이들은 1862년 간쑤성, 산시성 회민 반란에 자극을 받아 위구르인들보다 앞서 청나라에 항거하여 봉기하였다. 위구르인 입장에서는 청나라 만주족의 통치가 [[준가르 칸국]]에 비하면 천국이었지만, 후이족들 입장에서 만주족 청나라는 역사 항목에서 상술한 이유로 원나라, 명나라와 다르게 후이족들을 탄압하는 왕조로 여겨져 증오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4년 봉기가 성공한 이후에는 신장에 독립왕국을 세운 [[야쿱 벡]]은 같은 무슬림인 후이족들과 권력 투쟁을 벌이며 많은 후이족을 죽였다. 심지어 청나라 [[좌종당]]군이 쳐들어오려 준비하는 와중에도 신장 북부의 후이족들과 싸우는데 정신이 없었을 정도니... 20세기 초반 신장 지역을 통치한 군벌 [[양쩡신]] 역시 청나라 만주족들과 마찬가지로 후이족들을 데려오면 현지 위구르인들과 안 싸울 줄 알고 자신의 고향 [[윈난성]]에서 회족 사병 2천여 명을 데려왔으나, 이들 중 일부가 위구르인들을 대상으로 폭정을 시행하기도 했다. 회족 군벌 [[마부팡]]이나 [[마중잉]]이 위구르족들을 탄압한 역사도 있었다. 마중잉의 경우 위구르인들의 요청으로 신장 지역으로 와서 [[진수런]] 정권의 폭정으로부터 위구르인들을 해방시켰으나 모종의 이유로 배신을 당하고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과 전쟁을 벌였었다. 11년 후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이 [[중가리아]]와 [[카슈가르지구|카슈가리아]] 등 신장 서부 전역을 장악하고 [[우루무치]]를 공격하자 [[중국 국민당]]은 [[마부팡]]의 후이족 기병 10만여 명을 파병하여 우루무치를 방어하였다. 이는 같은 무슬림끼리 대치하는 상황이 되면서 동튀르키스탄 군대의 전투 의욕이 꺾일 것을 노린 전략이기도 했다. >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 문화는 단일 민족의 문화가 아니라 두 민족의 혼합문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로 인해 신장의 위구르족 이슬람 문화는 모스크 건축, 종교의식, 언어 그리고 교육 등에서 회족 이슬람 문화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신장 지역의 이슬람 문화가 종교 분파뿐만 아니라 인종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의미이다. 위구르족 무슬림과 회족 무슬림 사이의 차이점은 모스크 형태 등 건축예술과 언어교육 문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목격되고 있다. > > 신장위구르 지역의 모스크 형태는 종교적 분파나 [[수피]] 종단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인종과 민족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모스크 형태를 살펴보면 크게 위구르족의 모스크와 회족의 모스크로 구분된다. 위구르족의 모스크는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역의 모스크 형태를 따르고 있지만, 회족의 모스크는 청나라 시기부터 중국 불교사원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역의 모스크 형태를 따르고 있는 위구르족의 모스크는 햇볕에 말려 만든 어도비 벽돌 외벽, 타일, [[돔]] 그리고 작지만 두드러진 [[미나렛|첨탑]] 등 전통적인 이슬람 모스크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회족은 위구르족의 모스크를 방문하지 않고, 위구르족은 회족의 모스크를 방문하지 않는다. 위구르족은 회족을 무슬림이라기보다는 중국인들이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회족은 위구르족을 후진적이고 봉건적인 사람들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 > ... > > (회족들은) 한족과 위구르족 사이에서 중간적․중재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위구르족은 회족을 타우즈(tawuz: 수박)라는 경멸적 용어로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회족은 어떤 문제에서는 한족의 편을 들고, 어떤 문제에서는 위구르족의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구르족은 회족이 겉으로는 무슬림(상징적으로 녹색)인 척하지만 속으로는 공산당원(상징적으로 홍색)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 실상을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일부 한족들은 회족이 무슬림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족을 배신하고 위구르족의 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구르족은 회족과 같은 무슬림이지만, 회족이 언젠가는 위구르족을 배신하고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한족의 편을 들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다. 위구르족과 회족 사이의 상호 불신과 경계심은 중국 정부가 원하는 회족의 중개자적 역할과 위구르족의 중국 문화로의 접변 또는 동화에 결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회족이 중국 한족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고 문화접변을 이루는 데는 약 700 내지 800년이 걸렸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감안할 때 위구르족의 한족 문화로의 접변과 동화는 더 오랜 기간이 걸리거나 아예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421811|KCI 등재 논문 : 위구르족, 회족 무슬림의 정체성과 문화접변 양상 연구]] 위구르인과 후이족 간의 민족 감정은 종교 교파의 차이는 아니다. 두 민족 모두 이슬람 순니파 중에서도 [[하나피파]] 마드하브를 따른다. 후이족들이 결국은 유교 경전을 배우거나 군대에서 활약하는 등 중국과 타협을 선택한 반면, 위구르인들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족들과 연대하면서 생겨난 차이다. 그러니까 종교만 같을 뿐, 혈통과 문화도 다르고 동질감도 적다.[* 러시아로 치면 볼가 [[타타르]]인과 [[체르케스인]]의 차이와도 비슷하다. 전자가 토착 러시아인들과의 타협을 선택한 반면, 후자는 러시아인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터키인]]들과 연대하려 하고 있다.] 하플로그룹 연구 조사 결과 후이족은 유전적으로 위구르인보다는 [[살라르족]], [[동향족]]과 더 가까운 것으로 나왔다. 민족감정을 배제한 종교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두 민족이 서로 교류하기도 한다. 일단 후이족과 위구르인은 서로 원수지간으로 알려졌으나 일방적인 원수지간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서로 어렵고 힘들 때 도와준 역사도 많다. 예를 들어 1915년 신장 [[카슈가르시]]에서 터키인/타타르인 교사들이 가르치는 신식 이슬람 학교들이 정부의 압력으로 폐교당할 위기에 처하자, 카슈가르의 후이족들이 위구르인들과 한족 군벌 사이를 중재하여 교과 과정에 중국어를 추가한다는 조건 하에 폐교를 막았던 적이 있었다. 이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서구 교과 과정에 중국어 수업 과정이 추가된 신식 이슬람 학교들이 위구르인들에게 널리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중국 이슬람 협회는 후이족과 위구르족, 그리고 그밖의 중앙아시아계 이슬람계 민족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중국 내에서는 위구르인의 성지 순례를 사실상 금지하다시피 하는데, 후이족들이 여기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얀마에 거주하는 중국계 무슬림인 판사이(Panthay)들은 같은 무슬림인 [[로힝야]]족과 원수 지간이다.[* 로힝야들이 판사이들의 역사를 도용했다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편이다. 그러나 미얀마 측에서 중국계 무슬림 소수민족에 해당하는 이들도 상당히 싫어하는 이유로 판사이들의 의견 역시 무시당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성향이 가장 강한 [[티베트]]인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두 민족이 함께 분포하는 [[칭하이성]]에서는 폭력사태가 자주 벌어질 정도이며, 2008년 티베트 봉기 당시 회족들도 한족과 마찬가지로 티베트인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278481.html|#]] 칭하이성에서 후이족 군벌 [[마부팡]]을 재평가하고 기념하는 움직임이 나오자 티베트인들이 대거 반발하고 나서기도 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08348888|#]] 물론 명과 암이 있다고, 많은 후이족들이 티베트와 칭하이성에서 티베트 불교 교리 때문에 도축업을 꺼리는 티베트인들을 대신해 도축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덕분에 [[티베트 요리]]에는 [[청진 요리]]의 영향이 강한 편이다. 칭하이성에는 티베트계 무슬림 마을이 있어서 중국 정부에서는 해당 지역 주민들을 회족으로 분류되지만 반대로 [[티베트 자치구]] [[라싸]]에 거주하는 티베트계 무슬림 [[까체족]]들은 후이족이 아니라 그냥 티베트인으로 분류된다.[* 여담으로 인도 [[라다크]]와 파키스탄의 [[길기트 발티스탄]]에 거주하는 티베트계 무슬림([[발티인]] 등등)들은 시아파 계열 수피가 많은데 비해 중국령 티베트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순니파이다. 칭하이성의 티베트 무슬림 마을은 [[살라르족]]의 영향으로 순니파 하나피파로 개종하였고, 라싸의 무슬림들은 근세 아팍 호자를 따라 라싸로 이주한 위구르인 후손으로 마찬가지로 순니파이다. 티베트인들은 무슬림들을 순니파 시아파 혹은 출신 가리지 않고 다 “까체”([[카슈미르인]])라고 부른다.] 라싸 내 까체족 무슬림들은 티베트 불교 교리와 이슬람 수피가 복합된 이중신앙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한국 내 체류 혹은 방문했던 후이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까체족들은 과거 [[달라이 라마]]에게 [[합장]]을 하면서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근현대 회족들이 반불교 성향이 상당히 강했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 현재 라싸에도 상당수의 후이족들이 이민 정착하였는데 까체족과 라싸 내 회족들과의 관계 역시 상술한 티베트인과 후이족 사이의 갈등에 끼인 이유로 복잡미묘할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중국의 몽골계 소수민족 중 하나인 [[보안족]]은 후이족의 영향으로 19세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고 한다. 홍콩의 경우 영국 식민 시절의 영향으로 인도/파키스탄계 무슬림들이 많은 편인데, 이들은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후이족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