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에왕궁 (문단 편집) === 내정 ([[자금성]]) === || 사진 || 설명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aicungmon.png|width=100%]]}}} ||<^|1>'''대궁문(大宮門 Đại Cung môn)'''[br]왕궁의 내성이자 생활 공간인 자금성의 정문으로, [[민망 황제]] 시기에 처음으로 지어졌다. 황제의 격에 맞게 5칸의 문이었으며, 가운데의 문은 오직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 시기에 파괴되어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양 옆으로 연결된 회랑을 따라가면 '따부'와 '후부'라고 하여 예식을 준비하는 누각들로 향할 수 있었으며, 대궁문을 지나면 근정전으로 나올 수 있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avu1.jpg|width=100%]]}}} ||<^|1>'''좌무와 우무(左廡/右廡 Tả vu và Hữu vu)'''[br]근정전 바로 앞 마당 양 옆에 있는 2채의 건물로, 따부는 문관을 위한, 후부는 무관을 위한 건물이었다. 이 곳에서 신하들이 예식을 준비하거나 국사를 논의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전쟁으로 인하여 크게 반파된 것을 1980년대에 [[폴란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복원하였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iencanchanh.jpg|width=100%]]}}} ||<^|1>'''근정전(勤政殿 Điện Cần Chánh)'''[br]근정전은 후에 왕궁에서 가장 중요한 궁전들 중 하나로, 황제가 외교 사절들을 접견하거나 연회, 궁정 행사 등을 거행한 황제의 집무 궁전이었다. [[자롱 황제]] 3년인 1804년에 지어졌으며, 이후 여러 번에 걸쳐 개축과 보수 작업을 거쳤다. 자금성 내에서 가장 거대했던 건물로, 1m에 달하는 석조 기단 위에 지어져 있었으며 80개의 철목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고 정면 7칸, 양옆 2칸의 대규모 건축물이었다. 황금으로 만든 옥좌와 유리로 만든 베트남 지도 등 각종 보물들을 전시해 놓기도 하였다. 1947년에 완전히 폭파되어 사라졌으며, 현재까지도 복원되지 못하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iencanthanh1.jpg|width=100%]]}}} ||<^|1>'''건성전(乾成殿 Điện Càn Thành)'''[br]황제의 침전으로, 근정전 바로 뒤에 자리한 거대한 규모의 궁전이었다. 황제의 침전답게 1.5m 젇도의 석조 기단 위에 세워져 있었으며, 3개의 회랑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7개에 달하는 방을 가지고 있었다. 지붕은 황금빛 기와로 씌워져 있었으며, 문은 유리로 만들어져 왕궁 내부에서 가장 화려하였으며 뒤쪽으로 정원과 후궁들의 궁전으로 바로 갈 수 있게 기와 회랑이 만들어져 있었다고 전한다. 앞쪽으로는 물이 채워진 얕은 연못과 분수가 있었으며, 주변에 꽃을 심어 매우 다채로웠다고 한다. 1947년 2월 전소하여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ienkhonthai.png|width=100%]]}}} ||<^|1>'''곤태전(坤泰殿 Điện Khôn Thái)'''[br]건성전 바로 뒤에 위치한 거대한 궁전으로, 황후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1804년인 자롱 황제 3년에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전면 7칸, 양 옆 2칸의 규모였다고 전한다. 옆에 궁정 극장이 있어 황제가 황후와 함께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타 궁전과 비슷하게 황금빛 기와로 덮여 있었으며, 앞에는 정원과 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1947년 전투 도중 폭격을 맞아 사라져 현재에는 기단부만이 남아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ienkientrung.jpg|width=100%]]}}} ||<^|1>'''건중루(建中樓 Lầu Kiến Trung)'''[br]건중루는 자금성의 맨 후방에 자리했던 궁전으로, [[카이딘 황제]]가 19세기 후반에 유럽 양식을 섞어 만든 생활용 궁전이다. 처음에는 황제의 집무실 용도로 건축되었으나, 시간이 흐르자 황실 가족들의 생활 장소로 용도가 바뀌었다. 프랑스 양식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 베트남 전통 양식이 섞인 2층 건물로, 중간부에 문이 5개, 양 옆으로 문이 2개씩 더 있었다. 지붕은 전통식 황와로 덮었으며, 앞에는 유럽식으로 조경된 정원이 있었다. 1925년 카이딘 황제가 승하한 곳이기도 하며,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는 거의 이 곳에서 살았다. 1946년에 베트남 공산군의 공격으로 인하여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아직까지 복구되지 못하다가 2018년부터 복원을 개시했다. 하지만 복원이 고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2023년 쯤에 완료될 것으로 보고 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haibinhlau.jpg|width=100%]]}}} ||<^|1>'''태평루(太平樓 Thái Bình lâu)'''[br]근정전 주위에 위치한 2층짜리 누각으로, 1919년 [[카이딘 황제]]가 건설하였으며 1921년에 완공되었다. 보통 황제가 책을 읽는 등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높이는 9.55m, 노란 기와로 덮여 있고 장수를 기원하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또한 용마루에는 봉황과 용 등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현재 건물은 베트남 전쟁 시기에 한 번 파괴된 것을 1990년대에 들어서 다시 복원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