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삼국시대 (문단 편집) === 후삼국 시대의 종식과 고려의 통일 (927년 ~ 936년)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나말여초(929).png|width=100%]]}}} || || '''{{{#fbe673 929년 후백제의 최대 판도 당시 한반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나말여초(936).png|width=100%]]}}} || || '''{{{#fbe673 936년 후백제 함락 직전 판도 }}}''' || 이후 후백제는 [[발해유민]]을 받아들이며 인력과 군사력을 크게 확충한 고려에게 점점 밀리게 된다. 또한 [[공직(고려)|공직]]의 항복이라는 악재가 겹치고야 말았는데(서기 932년), 일벌백계라고 남아있는 공직의 자식과 부인의 다리 힘줄을 지져서 걷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지만 대세는 역전시킬 도리가 없었다. 결국 [[고창 전투]]에서의 패배(930)로 후백제는 쇠퇴하기 시작하고, [[운주성 전투]]의 패배(934)로 결정타를 입게 된다. 이렇게 대세는 고려로 확실히 기울고, 운주 전투에서 패배한 후백제는 후계자 갈등이 일어나 견훤의 맏아들 [[견신검]]이 정변을 일으켜 견훤에게 총애받던 서자 [[금강(후백제)|견금강]]을 죽이고 아버지를 몰아내어 왕위에 오르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나 견신검에게 쫓겨난 견훤은 적국인 고려에 망명하게 되고, 왕건은 견훤에게 상보(尙父)라는 직위까지 내리며[* 한마디로 견훤을 아버지처럼 대한다는 것으로 이미 화평을 맺었을 때부터 이렇게 불렀다. 물론, 견훤이 연장자인 건 맞지만 왕건이 그렇게 부를 정도로 나이 차이가 많은 건(10살 차이) 아니었지만 후삼국통일 과정에서 견훤까지 포용하여 활용하기 위해 우대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견훤을 우대했다. 한편으로 고창 전투와 운주 전투에서 대세가 고려에게 기울어지자, 오랜 전쟁과 권력층의 부패로 황폐화된 신라는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여 신라를 고려에 바치는 고려와의 병합을 고려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와 김굉, 이순유, 이돈유 등은 항복에 반대하며 결사항전을 하거나 고려의 속국이 되어서라도 사직을 유지해볼 것을[* 하지만 이는 신라가 한반도 정통 왕조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와 체제를 갖춘 국가였지만 정통성 측면에서 취약했던 고려나 후백제의 입장에서는 신라를 필히 병합해서라도 정통성을 확립해야 했기에 사실상 불가능했다. 물론 이때는 아직 유교적 정통론이 일반화된 시대는 아니었고 또한 고려는 이미 다른 정통성으로 고구려 계승과 삼한통일을 내세운 데다가 실질적인 파워로도 압도적이었기에 왕실 하나 정도는 살려둘 수도 있지 않았겠냐 싶긴 하겠지만 신라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확산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보덕국]]을 아예 병합했듯이 아직 각지의 호족이 건재한 상황에서 수도 개경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경주에 신라 왕실을 계속 살려두는 건 차후에 이들을 이용한 반란의 큰 명분이 될 수가 있었다. 눌지마립간이 해냈던 것처럼 만약 반란이 꽤 성공해 이들이 소백산맥을 끼고 우주방어를 펼치기라도 한다면 고려 정부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골치 아프게 되는 게 당연지사. 그나마 경순왕은 항복 후 낙랑왕에 임명해 즉 '신라군왕'급의 제후왕 대우를 해주긴 한다.] 주장하며 아버지의 항복 시도에 맞섰지만 끝내 경순왕이 935년 고려에 항복해 신라가 고려에 흡수, 멸망함으로써 후삼국은 경순왕의 항복으로 신라를 흡수하여 영토를 경상도까지 확장한 고려와 내분으로 무너져 가는 후백제 2개국만 남게 된다. 한편, 고려에 항복한 견훤은 왕건에게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쫓아낸 신검을 응징해줄 것을 요청한다. 결국 왕건은 견훤의 의견을 반영, 936년에 전군을 동원해 후백제의 신검을 공격하면서 [[일리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고 결국 후백제는 일리천 전투에서 10만 대군과 전 후백제의 왕인 견훤을 앞세운 고려에 패배하며 멸망하고 만다. 이렇게 다시 삼국으로 나뉘었던 시대는 고려의 통일로 막을 내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