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삼국시대 (문단 편집) == 매체 == 드라마 [[태조 왕건]]의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 드라마, 소설, 게임 등으로 꾸미면 충분히 각광받을 만한 소재이다. 중국의 [[삼국지]][* 수많은 전국시대가 있었지만 한중일 삼국에서 가장 유명한 전국시대는 이 시기다.], 일본의 [[전국시대(일본)|센고쿠 시대]]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데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영웅들이 일어나고 끝났다는 것, 그 중에서 특출난 소수, 특히 세 명의 영웅[* 삼국지는 [[유비]]/[[조조]]/[[손권]], 센고쿠 시대는 [[전국 3영걸]], 후삼국시대는 [[왕건]]/[[궁예]]/[[견훤]].]이 나오고 그 셋을 위주로 역사가 흘러갔다는 것, 기존 정치세력[* 후한, 신라, [[무로마치 막부]]]이 유명무실화 되었지만 겉으로는 존중하고 이용해 먹는다는 것 등에서 공통점이 있다. 삼국시대가 너무 길다는 걸 생각하면 이 때만큼 화려하면서도 완결성 있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기가 한국사에는 없다시피하다. 그만큼 한반도는 내부보단 외부의 적과 싸웠다는 얘기지만. 예를 들면 * 난세를 초래하는 음탕한 여왕, [[진성여왕]][* 물론, 사서의 기록은 이렇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 신정국가를 건설한 버려진 왕자 출신의 사이비 종교 교주인 애꾸눈 승려, [[궁예]][* 자신을 신([[미륵]])과 동일시하고 [[관심법]] 같은 초능력까지 튀어나오는 이런 [[사이비 종교]] [[교주]] 유형의 군주는 한국사는 물론 동아시아에서 비슷한 경우도 거의 없다. 그나마 비슷한 예로는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장각]]이나 [[태평천국 운동]]을 일으킨 [[홍수전]]이 있는데 전자는 빨리 망했다. 굳이 비슷한 예가 있다면 [[태국]]의 딱신 대왕이 있긴 하다. [[미얀마]]의 침략으로 멸망한 [[아유타야 왕국|아유타야 왕조]]의 혼란을 수습하고 옛 영토를 거의 회복했으나 광증에 걸려 스스로 미륵이라고 칭하고 폭정을 하다가 동료 장군이었던 짜크리 장군에게 죽고 왕조도 바뀐다는 점에서 궁예와 매우 흡사하다.] * 자신이 죽인 자의 아들을 양아들로 삼았다가 그 아들에게 복수당한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왕봉규]] * 적이 코앞에 있는데 정신못차리고 한가하게 풍악을 울리다 사로잡혀서 비참히 자결하는 암군, [[경애왕]][* 진성여왕과 같이 반론도 있다.] * 아들을 버리고 적에게 간 아버지, [[아자개]][*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아자개와 견훤은 유사한 점이 꽤 된다.] * 한때는 패왕이었지만 아들에게 배신당하고 적에게로 가서 자신이 세운 나라를 자신이 선봉에 서서 멸망시킨 후 병의 악화와 노환으로 비극적으로 사망한 세계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후삼국시대의 주역 중 한명인 [[견훤]] * 아버지한테 인정받지 못하고 후계자에서 밀려나게 되자 결국 아버지를 유폐시키는 찬탈자이자 망국의 패배자, [[견신검]] * 신라의 존속을 주장하며 신라의 고려 흡수에 반대한 신라의 마지막 태자이자 은거자, [[마의태자]] *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출세하여 신하들 중 으뜸이었으나 타락한 왕을 몰아내어 새로이 나라를 세우고 인화와 친화력으로 사람들을 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한편 수십년의 후삼국시대 난세를 종결한 고려의 시조이자 정력왕, [[태조(고려)|왕건]][* [[왕순식]], [[대광현]], [[경순왕]]은 물론이고 적의 아버지인 [[아자개]], 적의 사위 [[박영규]], 그 적인 [[견훤]] 모두 그에게로 갔다. 부인과 자식들이 많은데 물론 정치적인 이유도 있지만 왕건 개인적인 성향도 보인다. 부인은 30명(6정실 24후궁)고 자녀는34명(25남 9녀)이다.] '''지도자급만 해도 이 정도다.''' [[궁예|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왕봉규|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자개|아버지가 아들을 배신하고,]] [[견신검|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고,]] [[견훤|건국자가 자신이 건국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그야말로 막장 패륜의 시대. 밑은 신하급의 인물들. * 주군을 4번이나 갈아치운 철새이며 결국 살아남은 불사조, [[공직(고려)|공직]] * 주인공의 스승이자 미래를 예언하는 신비의 도인, [[도선대사]] * 뱀/개구리/두꺼비/개미살까지 먹는 괴악한 식성을 가지고 있지만 능력만큼은 훌륭한 장군, [[박술희]] * 날아가는 기러기를 활로 쏘아 맞추는 명궁이면서 주군을 대신해서 죽은 충신, [[신숭겸]] * 백전백승 완전무결 불세출의 소드마스터, [[유금필]] * 19금 스토리, [[장화왕후 오씨]] * 후백제에 투신한 당대의 대학자, [[최승우]] * 사촌 형과는 다른 길을 걸은 유학자, [[최언위]] * 왕건이 궁예에게 의심 받아 죽을 고비를 겪자 붓을 떨어뜨려서 줍는 척하며 계책을 제시하는 인상적인 일화를 만든 신동이자 요절한 천재 [[최응]] * 멸망해가는 나라의 지성인, [[최치원]] * 후백제 왕실의 사위면서 고려 왕실의 국구라는 이색적인 삶을 살며 영달을 누리고 순천 박씨의 시조가 된 [[박영규]] 굳이 창작각색하려 하지 않아도 캐릭터성이 풍부하고 드라마가 될 만한 요소도 참 많다. 물론 그만큼 혼란스러운 시대였던 것임을 대변하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아직도 후삼국시대에 대한 [[인지도]]는 처참하다. 어쩔 수 없는 게 한국은 외국과의 전쟁에 큰 비중을 둬 왔다. [[고구려-수 전쟁|수]], [[고구려-당 전쟁|당과의 전쟁]], [[여요전쟁|거란]], [[고려의 여진 정벌|여진]], [[여몽전쟁|몽골과의 항쟁]], [[임진왜란|왜란]]과 [[정묘호란|호]][[병자호란|란]] 등이 그것인데, 오히려 이들과 비교하면 50년 정도인 후삼국시대는 부정적으로 볼 경우, [[내전]]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 다만 후삼국시대와 왕건의 통일은 외국과의 전쟁 못지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현대 한국에 주는 의의가 크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함으로써 이후 천년간 이어지는 한반도의 통일국가와 한민족 의식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왕건의 통일과 포용정책이 없었다면 한국이 현대까지 남북한뿐만이 아닌 여러개의 나라로 쪼개져 있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삼국의 유민의식이 계속 남아 있어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지역감정이 더욱 극심했을 수도 있다.] 또한 후삼국시대는 남북으로 분단된 오늘날의 한국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한국에 주는 의의는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 남북으로 두 개의 나라로 나뉘어졌다는 점에서는 [[남북국시대]]와도 연관이 되지만 현실적으로 발해와 신라 간의 동족의식이 없진 않았지만 애매한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삼국시대가 더 비슷하다.] 중국의 삼국시대와 일본의 전국시대가 이후 역사서로든 민간 전승으로든 극이나 소설의 형태로든 끊임 없이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 반대로 한국은 왜란, 호란 등에 대한 창작이 활발했으니… 또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중국의 삼국시대와 일본의 전국시대 또한 자료가 없고 사료검증을 하기에도 벅찬 점은 매한가지다. 후대의 끝없는 관심과 창착이 오늘날의 컨텐츠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는 [[삼한습유]]라는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있으니 후삼국시대도 관심을 갖고서 컨텐츠를 만들면 될 것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단편적인 자료가 실려 있지만, 나머지 자료는 오랜 기간 동안 소실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태조 왕건]]도 창작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고려가 통일 왕조를 이루었기 때문에 고려 시대에는 고려 태조가 주연급인 후삼국시대에 대한 자유로운 창작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는 후삼국시대의 기억이 잊힌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창작의 대상에서 소외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서진이 금방 망해버린 중국의 삼국시대나 후반을 제외하고는 도쿠가와 가문이 조연에 불과했던 일본의 전국시대와는 이 점에서 다르다. 역사의 승리자를 원탑 주인공으로 놓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좋은 창작물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삼국지를 사마 가문의 영웅서사시로 구성해야 했다면 과연 재미가 있었을까? [[대군사 사마의|21세기 와서야 피카레스크물로 겨우 만들어진 내용인데.]] 나관중은 삼국지연의 이외에도 수-당 교체기를 다룬 수당연의와 같은 작품들도 썼지만 삼국지연의보다 거의 인지도가 없다. 물론, [[초한지]]라는 걸출한 반례도 있기는 하지만, 전설적인 시조가 아닌 건국영웅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는 최초의 시기라는 점과 미약한 독립 세력으로 시작한 [[고제(전한)|한고제]]의 특별한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즉 초한지가 '동네 이장' 유방, '남의 가랑이 밑을 기던' 한신이 천하를 주름잡는 영웅으로 성장하는 스토리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면, 후삼국기(가칭)를 쓰자면 이미 패서 호족이라는 든든한 기반을 깔고 시작한 왕건을 입지전적 영웅으로 내밀기에는 뭔가 부족한 게 사실. 이런 면에서는 어쨌든 고향의 기반을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만리 타향에서 모든 걸 자기 손으로 일떠세운 견훤이나 궁예 쪽이 좀 더 주인공으로 적합하지만 상술했다시피 고려 시기에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뭔가를 쓴다는 건 곤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